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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헤수스 Jul 30. 2024

분갈이와 새식구

포인세티아와 바질 키우기

"포인세티아에 이름을 붙이고, 분갈이를 해주자"

"갑자기?"

"설거지를 할 때 보고 있으면 괜히 마음이 편안해진단 말이야. 초록이 주는 힘같아"

"그래"

-


포인세티아를 설명하자면, 지난 해 크리스마스를 앞둔 3일전(대략) 쯤 여자친구는 회사에서 진행하는 원데이 클래스 '꽃꽂이반'에서 나눠준 화분을 들고왔다. - 화분을 들고 온 이유는 '꽃꽂이를 해서 가져오면 금방 시들지만 그래도 화분은 조금 더 오래가니까 크리스마스 기분을 오래 낼 수 있을 것 같아'라는 이유에서였다. - 지난 12월 겨울 집에 들였을 때, 손바닥만한 플라스틱 화분에서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듯 빨간 빛을 띄었던 잎들이 떨어지고 전부 초록으로 바뀌어도 시들지 않고 계속 조금씩 자라는게 내 눈에는 보였다. 


예전에도 화분을 집에 들인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대충 물만 주다가 비쩍 말라붙어서 결국에는 죽고 말았다. 금사철이라는 종류였고 이름은 '금사철씨'라고 불렀었다.

- 금사철씨는 죽어서도 우리에게 좋은 에피소드를 하나 만들어 주었는데, 창가 밖 선반에 놓여있던 금사철씨는 뿌리가 화분을 벗어난 채로 던져져 있었고 한참을 방치하던 후 덩그러니 남아있던 이 잔해를 보고서는 "새가 선반에 새집을 지었어!" 라고 소리쳤으나 "저거 그냥 금사철씨 뿌리 같은데" 라고 재미있는 오해의 에피소드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


"뭔가에 이름을 붙여주는 것은 그만큼이라도 애정을 담는 일이니까"

"의미부여하는 것을 좋아하는구나"

"살아간다는 건 뭔가 의미를 계속 찾기 위해서라고"

-


지난 12월부터 지금까지 그러니까, 대략 8개월을 넘는 시간 동안 물만 대충 줘도 초록초록하게 살아있는 포인세티아를 보자 그 생명력과 초록이 주는 안정감에 나는 분갈이를 주장했다. 우리는 집 근처에 있는 다이소에 가서 새로운 화분과 아주 소량의 흙 그리고 괜히 건강해질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영양제를 구매했다. 그 때, 다이소에서 내 눈에 들어온 건 간단한 화분에서 식물을 키우는 키트 같은 거였는데 이것저것 보다가 바질을 하나 들어 올렸다. 


"얘는 이제부터 바군이야"

"바구니?"

"아니 바! 군! 일본에서 누구누구 군이라고 부를 때처럼 얘는 바질이니까 바질의 바를 따서 바군이야"



그렇게 바군과 갈아줄 새로운 화분과 흙을 사들고 집에 와서는 재료들을 모두 내팽개쳤다. - 너무 더워서 밖에 나갔다 오면 아무것도 할 힘이 남아있지 않는다. -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우리는 분갈이에 돌입했다.


화분을 갈고 바질을 심으면서 누군가의 각질 혹은 눈꼽보다도 작은 바질의 씨앗을 심고, 포인세티아의 화분을 갈아주었다. 생각보다 더 간단해서 10분도 채 걸리지 않아 모든 작업이 끝이 났다.


작년에 들어온 SETI와 이번에 들어온 바군


그리고 계속 경쟁했던 단 둘만의 네이밍 대회에서 별 다른 이견 없이 나의 주장에 따라 포인세티아는 이름을 따서 세티가 되었고 바질은 바군 (혹은 바쿤!)이 되었다. 그렇게 물을 주고 하루를 기다렸다가 화분에 서로의 이름을 붙여주었다.


SETI & PARK HOON 

포인세티아의 SETI와 함께 있는 박훈 어쩌다 보니 바군(혹은 바!쿤!)은 박훈씨가 되었다.

24년 7월 28일 일요일의 아침이었다. 초록초록하게 자라서 꼭 바질을 먹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바질페스토를 좋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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