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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시영 Oct 27. 2024

0. 씨 뿌리기

프롤로그

 딸깍.. 딸깍.. 희고 삭막한 공간 속을 규칙적인 볼펜 소리가 차근차근 채워나간다. 일정한 진동 사이, 여러 컴퓨터의 타자 소리들이 그 공간들을 빈틈없이 메꾼다. 한 평범한 날에 서울 어딘가의 평범한 한 회사는 이런 소리들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 소리들 사이 어딘가에서 유성은 손에 볼펜 하나를 돌리며 컴퓨터 화면 앞에서 넋을 놓고 있다. 초점 잃은 눈으로 엑셀 화면을 바라보는 유성의 모습은 반복적으로 돌아가는 볼펜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멈춰있는 듯하다. 그의 뇌도, 혈관도, 심장까지도.


 그의 두 눈 안에는 삶이 있다. 서울에서의 삶. 구름을 가장한 매연들로 가득한 도시의 삶. 유성뿐만이 아닌 회사의 사람들이 초점이 없는 눈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 매연들이 시야를 흐리기 때문일 것이다. 타자를 내려칠 때마다 영혼의 조각들이 하나하나 떨어져 나간다. 그는 지쳐있는 듯하다. 그게 아니면 지루한 것일 수도 있다. 오히려 게으른 것일 수도 있다. 아니, 게으른 것은 아니다. 이렇게 보여도 그날 하루 할 일은 항상 퇴근시간 전에 다 끝내놓고 칼퇴근을 일상으로 하는 유성이다. 할 일이 적은 것 아니냐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도 않다. 애초에 한국의 회사들은 회사원들을 쥐불놀이를 하듯 굴린다. 야근은 기본이다. 기계의 과로에는 과열과 고장이라는 결과가 따르듯이, 인간은 냉각과 수리로는 고칠 수 없는 결과들을 초래시키기 마련이다. 그러나 한국의 회사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 자리를 메꿀 톱니바퀴는 차고 넘쳤기 때문이다. 유성의 자리가 대체할 수 없는 자리였다면 이미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 해외로 떠버릴 것처럼 회사를 협박했을 것이다. 대충대충 하루를 날린 것도 아니었는데 다음날까지 일이 밀려 야근이 강제되는 일과가 매일같이 주어진다. 그렇게 하루를 죽도록 일하게 하는 살인적인 시스템을 자랑하는 한국의, 어쩌면 세계 전체의 회사들이다. 시스템 속의 인간들은 그 역할에 맞게 작동한다. 회사도 그 자리에 맞게 움직이기를 바랄 것이다. 너무 느리면 전체 기계의 속도를 늦추고, 너무 튀면 그 부품은 곧 엇나가버린다. 톱니바퀴로서의 역할을 너무나 잘 수행하고 있다 자부하는 유성은 잘릴 걱정은 전혀 없다. 하지만 그것만이 없는 것이 아니라, 조금은 무엇이든 있기를 바라는 그이다.


 유성은 외형으로 보았을 때는 티가 나지 않지만 그와 한 번이라도 대화해 본 사람이라면 유성이 시골 출신이라는 것을 알게 될 수밖에 없다. 단정한 용모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들여다볼 수 있는 큰 두 눈, 오밀조밀 자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코와 입과 함께 얇게 내려오는 목부터, 그보다 더 얇은 팔과 다리를 엿볼 수 있다. 나름 본인이 노력해서 성장시킨 결과물이다. 몸뿐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숨긴다고 숨긴 서울말 뒤에 빼꼼하고 삐져나오는 사투리는 모두의 앞에서 그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물론, 유성 본인은 자신의 억양이 이제는 완전한 서울말이라고 확신한다. 그런 당당한 유성을 위해 우선은 묻어두고 모른척하기로 한다. 커피 한 잔을 옆에 두고 금요일을 기다리는 그의 볼펜은 멈출 겨를 없이 돌아간다. 금요일이 오기 위해서는 점심시간이 끝나야 한다. 시간은 부지런히 이를 수행한다. 시간이 조금이라도 나른해지도록 시계를 보며 반 박자씩 늦게 초를 세던 유성은 그의 핸드폰이 울리는 진동에 화들짝 놀란다. 다행히 진동으로 해놓아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은 것에 안도한다. 그것이 그의 첫 번째 반응이었다. 그다음으로는 빠르게 핸드폰을 챙기고 비상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동하며 확인해 보니 고모부로부터 온 전화다. 이쯤 되면 올 때가 되었다며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인 유성은 엘리베이터를 지나 비상구의 문을 열며 전화를 받았다.


 - 여보세요.


 - 어 그래, 유성아. 나다. 이번에도 올 수 있지?


 - 네 괜찮아요. 날짜 알려주시면 맞춰서 가겠습니다.


 - 그려. 그때 보자, 그럼. 또 오랜만에 보겠네, 우리 유성이.


 짧은 인사와 함께 전화는 끊겼다. 얼마 안 있다 진동이 울리며 바로 날짜가 적힌 문자가 한 통 왔다. 자리로 돌아오고 난 후, 문자를 확인하기 전부터 유성의 시선은 곧장 컴퓨터로 가 있다. 화면 속의 홈페이지 가장 위에는 큼지막한 글씨로 '휴가 신청'이라고 쓰여 있다. 그는 문자를 확인한 후, 빈칸들을 채워나간다. 그와 함께 다른 것 또한 채워진다. 없는 것들 가운데 있는 것들이 피어나며 순간 유성의 눈의 안개가 걷히는 듯하다. 어떤 직장인이든 휴가를 신청할 때만큼은 회사가 아닌 다른 곳으로 잠시 떠나 있는다. 아무리 몸이 회사에 묶여 있더라도 이는 모든 휴가예비자들에게 해당된다. 그 안에 또 다른 세상이 채워진 것이다. 세상이 '있는' 것이다. 그곳에 잠시 떠났다가 희망과 함께 돌아와 남은 기간을 버티며 일할 것이다, 그 세상에 있는 나로 있을 것이다 생각했다. 버틴다기보다는 기다릴 것이다. 휴가를 이토록 직장인들이 사랑하는 것은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말 그대로 휴가, 쉬기 위함이 대부분일 것이다. 쉼이 있다는 것은 안식할 수 있다는 말과 같다. 편히 쉬며 이전의 일을 비워내는 것과 동시에 다음의 일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갖는 회복과 충전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일정한 루틴 속에서 유성은 충전의 필요성을 느낀다. 더 잘 작동하기 위한 연료의 충전만은 아닐 것이다. 톱니바퀴만이 그의 역할은 아니다. 그의 마음에도 삶이 있다. 보이는 것과는 다른 삶, 마음에만 있던 것이 때로는 뇌로 올라오는 삶. 그것은 점심시간이 진즉에 끝난 그에게 빨리 빈칸을 채우라고 강요했다. 그 안에 또 다른 세상이 채워진다. 다음 주 그가 있게 될 곳의 세상, 지금과는 다른 소리들로 가득할 세상. 그는 창가에 있는 화분을 한 번 보고는 완성된 형식을 제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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