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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시영 Oct 27. 2024

1. 또 하나의 기차가 본인이 내려왔음을 알린다

 여름이 찾아왔다. 모든 생명이 갈증 하는 태양의 계절. 무의식이 휴식을 강요하는 그늘의 계절. 대개 그 무의식을 핑계 삼아 여행을 떠나거나, 나른하게 시간의 흐름이 이동하는 것을 유심한 척 관찰한다. 어떤 사람은 이를 틈타 동네 앞에서 아이스크림 장사를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잘되던 레스토랑에서 원치 않던 여유를 마주한다. 유성도 계절의 변화로 일상에서 벗어날 기회가 또 생겼다. 지난주 직장에 3일의 휴가를 신청하며 오늘을 상상해 보았던 기억을 떠올린다. 모든 직장인들이 그러하듯 유성도 그 상상으로 일주일을 버텼을 것이다. 평소에는 못할 늦장을 부리며 준비한 후 문을 열고 집에서 나오니 그때의 머릿속 그림과 모든 것이 들어맞지만 머릿속의 날씨를 몸으로 느끼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이미 집 안에서도 창문을 통해 예상했지만, 밖에 나와보니 더더욱 거칠게 피부의 통각들을 깨워주는 태양. 유성은 찌푸려지는 미간과 함께 기차역으로 향한다. 검은 그림자를 드리운 고층 건물들 덕에 그는 중간중간 더위로부터 몸을 이리저리 숨기며 역에 다다를 수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함께 넓은 전광판이 유성을 맞이했다. 아직 아침이라 살인적으로 더운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실내의 서린 공기는 짜릿한 쾌감을 선사한다. 기분이 좋아진 유성은 전광판을 바라본다. 전국 곳곳으로 뻗어나가는 아침 기차들이 줄을 서 본인의 위치를 알린다. 위에서부터 눈을 내리며 유성은 본인이 탈 기차를 확인하고 매표소를 찾으러 역 안을 살핀다. 평소 탈 일이 없어 무심코 스쳐 지나갔던 기차역은 주말을 앞둔 데다 출근 시간이어서 그런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매표소를 찾은 유성은 사람들 틈을 비집으며 여수행 기차표를 하나 끊었다.


 서울에서의 삶을 살다 보면 자주 시골이 그립다. 상경한 지 벌써 5년은 지난 유성이지만 치열한 서울 생활은 좀처럼 적응하기가 쉽지가 않다. 처음엔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했다. 높은 건물들과 빠른 걸음걸이로 가득한 수많은 사람들. 저마다의 목표를 가지고 부지런하게 하루를 보내는 그야말로 꿈의 도시. 왁자지껄한 도시의 밤 때문에 잠 못 들던 순간마저도 신기하고 즐거웠었다. ‘상경’의 이름에 걸맞은 서울의 모습은 들뜬 그의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그러나 너무나도 당연하게 꿈을 이루는 것이 일반적인 부지런함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빽빽한 사람들이 사실은 모두 경쟁자이고 서울에서 먹고살려면 그 사람들보다 뛰어난 무언가가 있어야 했다. 유성은 지극히 평범한 상경인들 중 하나였고 딱히 내세울 만한 특출남도 없었기에 서울 사람들이 생각하는 평범함에 도달하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흔히 생각하는 집 하나에 차 하나 있고 먹을 걱정 없고 무엇보다 빚 없는 그런 삶 말이다. 그런 부단함 속에서 오래 지내다 보니 문득 시골의 고요함이 그리워지는 유성이었다.


 기차표를 확인한 후 전광판으로 미리 확인했던 승강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여전히 사람은 많아 직진만 하기에는 쉽지가 않다. 여행을 위해 형형색색의 캐리어 하나씩을 발 앞에 두고 화장실 간 친구를 목 빠지게 기다리는 고등학교 학생들, 아빠가 매표소에서 사람들 틈바구니에 시달리는지도 모른 채 엄마 품에서 곤히 잠든 아이, 또 출장을 가는 것인지 사무용 가방 하나와 윗 단추 하나를 푼 반팔셔츠에, 딱딱거리며 주변을 울리는 검은 구두를 신은 중년의 남성이 의자에 앉아 역 방송을 기다리는 모습도 보인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 시간이면 전국 각지로 흩어진다는 흥미로운 생각이 유성의 머리를 스치는 찰나 방송이 울린다.


 - 지금 여수행, 여수행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승객 여러분들께서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주시기를 바랍니다.


 유성의 기차다. 사실 기차가 도착한다고 해도 바로 출발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부터 걸어가도 충분히 기차에 탈 수 있는, 타고도 남을 시간이긴 하지만 왠지 몰라도 방송은 사람의 마음을 분주케 하는 마법이 있다. 마법과도 같은 방송을 듣고는 그는 발걸음의 속도를 높였다. 승강장에 도착하니 역시나 기차는 꿈쩍도 않고 서있다. 기차에 올라타 자리를 잡고 창밖을 바라본다. 언제 구름들이 모였는지 하늘의 푸른빛은 자취를 감췄다. 높은 건물들 사이로 보이는 잿빛 하늘과 잠시 떨어질 생각에 안도하며 눈을 감고 그가 갈 시골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사실은 그곳으로 내려가는 다른 이유도 있다. 유성의 고모와 고모부는 여름과 같은 일손이 많이 필요한 계절마다 그를 찾는다. 그래서 그의 핸드폰엔 항상 무더워질 때쯤 지역번호로 시작하는 번호로 부재중이 찍혀있다. 고모와 고모부가 시골에서 하는 일은 꽃밭을 가꾸는 일이다. 꽃들을 키우며 새 꽃을 심고, 시들한 꽃들을 살리고, 만개한 꽃들을 수확해서 파는 일. 유성도 그곳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 꽃밭에 대한 기억이 선명하다. 꽃밭엔 그 두 분뿐만 아닌 정말 많은 원예가들이 있었다. 아마 그들이 꽃들에게 쏟는 애정과 사랑이 유성에게도 흘러넘치도록 쏟았을 것이다. 물론 유성도 상경을 위해 청소년기를 바쳤지만 그들의 애정과 사랑이 가장 큰 몫을 했다는 말은 유성이 느끼기에도 전혀 거짓이 아니다. 그래서 그는 서울에서 어느 정도 자리 잡고 나서는 여름과 겨울마다 시골에 내려가 꽃밭을 가꾸는 일을 돕곤 한다. 방학 기간 동안 잠깐 꽃밭을 담당하는, 어떻게 보면 소작농과도 같다. 하지만 그도 그곳에서 일하면서 꽃이 자라고 만개하는 모습을 보고는 감격하며 이 일을 방학마다 꾸준히 하게 된 것이다. 친척들의 사랑에 대한 보답의 마음과 자신에게 주는 기분전환의 마음을 가지고 기차는 출발한다.


 회상을 멈추니 주위가 보이기 시작했다. 유성은 자신의 대각선 방향으로 자신보다 1, 2살쯤 어려 보이는 남자를 보았다. 귀에 이어폰을 끼고 노트북으로 영화인지 드라마인지 모를 것을 보고 있었다. 반쯤 열려 있는 가방에는 전공 책처럼 보이는 책들이 가득했다. 일부러 본 것은 아니었으나 책 옆면에는 남자가 다니는 듯한 대학교 이름이 적혀 있었다. 유성도 익히 들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대학이었다. 매년 졸업식이 되면 학교 정문 플래카드 가장 높은 곳에 이름이 적히고 공부를 꽤 한다는 친구들 모두 목표로 삼는 대학이었다. 부러움과 씁쓸함.. 한때 유성도 가고 싶었으나 학년이 올라가면서 포기하게 된 학교이기도 했다. 나이 차이는 얼마 나지 않았지만 자신과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은 그 남자애가 신기해 유성은 기차가 움직이는 내내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그러다 결국 눈이 마주치는 바람에 민망한 나머지 얼굴을 붉히며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차창 밖은 조금씩 밝아지고 있었다. 태양이 오르며 기차 안까지 영역 표시를 했고 유성의 얼굴부터 허벅지까지 그 영역 안에서 빛을 받았다. 유성뿐만이 아니었다. 창 밖의 건물들부터 자연들까지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는지 낱낱이 밝게 보이고 있었다. 밝은 빛에 유성은 멍을 때리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 얼른 창을 커튼으로 가린 후, 눈을 감고 잠을 청한다. 덜컹거리는 기차에 몸을 맡기고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다 보면 어느 순간 시간을 초월하여 몇 시간을 훌쩍 뛰었다. 반면 기차는 부지런히 나아갔다.


 한적한 어느 시골의 역 앞, 또 하나의 기차가 본인이 내려왔음을 알린다. 잠에서 깬 지 좀 된 유성은 다리를 쭉 뻗어 기지개를 켜고 나갈 채비를 한다. 뭔가 기분 좋은 꿈을 꾼 것 같지만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조금 젖은 등을 털던 중 기차에서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 이번 역은 율촌역, 율촌역입니다. 내리시는 승객 여러분들께서는 놓고 내리시는 물건이 없는지 확인하신 후 하차해 주시기 바랍니다.


 일어나 주변을 보니 유성밖에 나갈 채비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 남자애도 잠을 자고 있었다. 하긴 이런 시골에 내릴 사람이 몇 없는 것은 당연했다. 서울, 부산과 같은 대도시들부터 시작하여 도시화가 가속화됨에 따라 희뿌연 연기가 닿지 않는 곳은 이제 몇 남지 않았다. 유성이 도착한 이 율촌도 그중 하나이다. 청년들은 도시의 고도화와 첨단화에 매료되어 서울로 모여들었고 이제는 그 청년들이 장년이 되어 도시의 아이들을 키우는 세대에 이르렀다. 도시의 자본은 교육, 행정, 복지, 의식주 등 모든 방면에서 다른 지역들과의 격차를 벌렸다. 어느샌가 서울은 청년들의 필수 조건이 되었다. 유성도 그래서 당연하게 서울로 떠났다. 도심에서도 잘 적응했다. 어릴 때부터 부모와 친척들의 돌봄과 교육 속에 자라며 도시에서 잘 살기 위한 조건들을 갖출 수 있었다. 평범했어도 열심히 노력하여 대학도 가고 졸업 이후 바로 취업도 바로 하게 되어 이제 경력을 쌓아 더 좋은 곳으로 가게 되면 서울에서 나름 괜찮게 사는 편에 속할 것이다. 물론 이것이 유성에게 즐겁거나 행복을 주진 않았다. 오히려 매 순간 치열하게 다른 청년들과 경쟁하며 다투어야 했고 그의 일 년간의 기록은 추억보다는 성적으로 기억되었다. 이런 삶에 지쳐 고모부의 부름에 방학마다 간간히 내려온 것일 수도 있다.


 더 좋은 곳으로 가기 위한 그의 준비는 이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다. 유성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현재 일터에 뼈를 묻을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 이후를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지금에 만족하려고 그가 서울로 올라온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단지 평범하기 위해 하루를 투자하는 이런 삶을 살기를 원치 않았다. 평범에 도달한 후 그 너머에 더 큰 무엇인가를 향해 나아가고 싶었다. 보이지 않는 그것도 아마 유성 속에서 그것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해 종종 그의 가슴을 먹먹하게 두드렸을 것이다. 출근하는 지하철 안 어깨를 늘어뜨린 사람들 사이 어딘가에서, 회사 옥상 난간의 그의 녹록지 않음을 비치던 맞은편 고층 빌딩의 유리창에서,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며 그의 시선이 닿던 석양의 주변 어스름에서. 그는 직장에서 일을 하며 틈틈이 퇴근 후 저녁, 자격증을 위해 공부하며 현재보다 나은 이곳저곳을 알아보았다. 당연히 더 좋은 곳은 더 좋은 것들을 요구하였다. 좋은 곳에 대한 합당한 대가를 위해 유성은 쉬지 않고 본인을 더 좋은 것으로 빚어갔다. 겉을 빚는 일은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이었다. 자격증은 마음만 있다면 언젠가는 딸 것들이었고 그 마음은 그의 속에 가득 채워져 있었다. 하루의 일과를 꼭 다 끝내고 빠르게 회사를 나왔던 그의 칼퇴근들은 어쩌면 그의 신경이 이곳에 온통 자리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짐을 들고 기차에서 내린다. 기차의 에어컨이 오는 동안 잘 작동하고 있었다는 것을 새삼 느끼는 유성이다. 온몸을 뒤덮는 습기가 가장 먼저 유성을 환영했기 때문이다. 그다음은 또 누가 있을까 하지만 아무도 없다. 서울에서부터 달려온 이 기간제 소작농을 맞이하는 환영인사는 찾아볼 수 없다. 아마도 가장 바쁠 시기라 고모와 고모부는 이미 밭에 나가있는 모양이다. 애초에 넓은 땅에 비해 사람이 많이 없기도 하고 유성만이 여기 꽃밭 일을 도와주는 것은 아니다. 이곳저곳에서 방학 시즌이 되면 봉사자들이 모여든다. 유성처럼 꽃밭을 운영하는 분들의 가족이나 그 친우의 가족들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모여 꽃들을 피우고는 다시 각자의 위치로 원위치한다. 그곳에 몇 달 눌러살며 다음 계절, 그다음 계절까지도 꽃을 키우는 사람들도 여럿 있다. 유성은 당연히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습기에 늘어지는 피부를 부여잡고 역 밖으로 나선다. 역시나 한 사람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러나 그가 역의 그림자를 벗어나 내리쬐는 햇살을 마주하는 순간, 모든 곳에 존재하는 그의 환영인사들을 발견한다. 눈에 들어오는 새파란 하늘과 푸른 산이 유성을 맞이하는 듯 자연의 내음과 색채를 뿜어낸다. 지도 앱을 켜고 꽃밭까지의 경로를 검색한다. 경로 주변은 당연히 모두 초록빛이다. 길을 따라 조금만 걷다 보면 생녹의 풀들도 오랜만에 돌아온 도시인을 반갑게 맞이하며 살랑거릴 것이다. 유성은 그동안 잊은 듯했던 파란 하늘을 올려다본다. 솜뭉치 같은 구름들과 그들을 흘러 보내는 푸른 물결의 하늘. 그는 숨을 한 번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어보고는 짐을 챙겨 꽃밭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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