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시영 Oct 27. 2024

7. 어떠한 의미도 남지 않을 그런 시간이다

 기억은 강렬했다. 기억을 지우는 일은 오히려 그것을 머릿속에 더 번지게 했다. 유성은 일 생각만 하길 부단히 애썼다. 그가 목표로 삼았던 집과 차를 포함한 이것저것을 위해 오늘 하루를 살아내는 데에만 집중하려 노력했다. 퇴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석양을 바라보며 잠시 궁상을 떨곤 했지만, 다음 날을 위해 씻고 바로 잠에 드는 것, 아침에 하루 견과와 요구르트 하나씩을 먹고 출근을 하며, 점심시간의 커피 한 잔으로 오후 시간을 버티는 것. 그 모든 것들이 유성의 붓칠들이었다. 무언가를 잊으려고 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생각이 들지도 않을 만큼 바쁘게 사는 것이라고 유성은 생각했다. 헤어진 연인들이 일을 늘리고, 일부러 바쁘게 자신을 굴리기를 바라는 일도 그 이유로 여럿 볼 수 있다. 그렇게 시간이라는 약을 조금이라도 빠르게 소화시키는 것이 그에게는 좋겠다 판단했다. 그렇게 계속 지우다 보면 결국에는 사라질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기억 저 편으로 보내질 것이었다. 유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지금 이 시기를 잘 버텨야 한다고 다짐한다. 잘 버텨서 목표에 도달한 후 여유롭게 내가 꿈꾸던 밭일을 하는 것이다, 그는 나름 원대하게 꿈을 그리며 자신을 위로하고 채찍질한다. 삭막하기만 한 사무실은 그의 다짐을 베일 듯한 침묵으로 응원한다. 우리의 생명이 담겨있다는 말도 안 되는 세뇌로 가득한 상사들의 지시는 당연히 이 업무들이 나의 그 무엇에도 생기를 불어넣어 주지 못한다는 것을 유성은 안다. 그는 그래서 그 덜떨어진 상사들의 지시들을 유성에게 맞추어 교정하고 납득가능하게 수정한 후, 자신을 그것에 팔아버린다. 지금 그에게 이 회사의 어떠한 것도, 어쩌면 지금뿐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그의 심장을 뛰게 할 수 없기에 그것에 투자한 셈이다. 심장을 회수할 때는 미지수다. 그 때면 적어도, 그의 눈에 내려앉을 인내의 그림자의 크기와 생기가 빠져 말라비틀어져 있을 유성의 속보다, 풍족하게 늘어나 있을 그의 모든 부가 유성이 바라던 것이었는지 확인하는 순간일 것이다. 


 도시의 새벽은 무심하게 빛을 쏟아냈다. 어둠과 빛이 만나 하늘을 희미하게 채색하는 그 순간, 건물 숲 사이로 묶인 나무들의 흔들림이 보이지 않는 바람 속에서 몸을 떨었다. 유성은 한숨을 몰아쉬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어제와 같고, 그제와 같고, 그 이전의 모든 날과 같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것은 똑같은 회색 빛의 아파트들, 길게 늘어선 도로, 붉은 신호등의 무언의 경고. 그 모든 것이 마치 강철로 만들어진 세상처럼 움직이지 않는 듯 보였다. 유성의 마음은 그 풍경 안에서 어디에도 자리 잡지 못했다. 사막에 버려진 나무처럼 그는 뿌리내리지 못한 채 바람에 휘둘리고 있었다. 마음 한 구석엔 아직 칠하지 못한 푸른 숲이 있었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나뭇잎과 맑은 공기가 부드럽게 가슴을 파고드는 그 숲은 유성이 어릴 적 꿈꿨던, 자유로웠던 자신이 있었다. 그 숲 속에서는 유성은 달리기도 했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무수한 별들을 헤아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 숲은 이제 너무 멀리, 너무 흐릿하게 변해버렸다. '나'라는 존재는 그 숲과 이 도시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라지고 있었다.


 꽃밭에 다녀온 이후로 유성이 회사에 다니며 하나 알게 된 사실이 있다. 회사 곳곳에도 생각보다 많은 식물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중 가장 많은 것은 단연코 난이다. 사무실 구석과 임원들의 방에는 기본적으로 거대한 동양란이 하나씩은 자리 잡고 있고, 나름 관리도 잘 받고 있다. 그는 꽤 자주 물티슈로 난을 닦고 흙에 물을 주는 관리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난들은 아마 오래오래 이곳에서 살게 될 것이다. 여름에도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이 공간에서 오래오래 살게 되겠지. 괜히 난들이 아니꼬워졌다. 이들이 그 땡볕에서의 처절한 사투를 알까. 깊은 어둠 열대야 아래에서 8~9시간을 홀로 버텨야 하는 그 고통을 알까. 내리쬐는 햇빛이 나를 살게 한다는 사실을 망각할 만큼 강렬하게 작열하는 빛에 몸을 맡기긴 해봤을까. 온실 속의 화초가 바로 여기에 있구나. 바로 여기에, 서울의 모든 사무실마다 존재하는구나. 꽃들은 잘 자라고 있을까. 또 하나의 꽃들이 유성의 머릿속에 번졌다. 여름도 스스로 문을 닫아가고 있으니 조금만 더 버티면 가을이 들어오겠지. 그때에는 뿌리부터 줄기까지 단단한, 하나의 어엿한 꽃으로 자라 어딘가에 이들보다 더한 값에 팔릴 것이다.


 눈을 돌리니 회사 창가에도 화분들이 여럿 있었다. 가끔은 직원들의 책상에도 자그마한 허브가 그 크기에 맞는 아담한 화분 위에 살포시 내려앉은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씨앗부터 이곳에서 자란 친구들은 난들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오히려 관리인처럼 꾸준히 잘 챙겨주지 않는 주인의 모습에 짜증 내고 있을 녀석들도 더러는 있을 것이다. 에어컨 바람을 쐬며 물 주는 시간 10분 늦는 것에 불평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이 온실 속의 화초들. 인간도 그렇듯 항상 무언가 개선되기를 바라고 조금이라도 본인이 누렸던 것들이 삐걱거리면 곧바로 인상부터 찌푸리는 잡초들. 이 놈들이 잡초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자세인지 마음인지 불편해진 유성은 의자를 당기고 몸을 고쳐 앉는다. 물론 다른 곳에서 싹을 뻗고 자라나 꽃을 피우게 된 놈들도 있을 것이다. 고진감래의 순간을 이 사무실 안에서 만끽하고 있을 녀석들은 유성도 인정하는 바이다. 그들은 스스로 취한 것이다. 그들의 몸을 태양빛에 불사르며 따낸 노력의 자리이다. 그런 꽃들만이 이런 호사를 누릴 자격이 있다고 유성은 생각한다. 그래도 꽃 좀 키워봤다 자부하던 그는 창가에 나란히 놓여있는 화분들을 비교하며 누가 우여곡절을 겪은 녀석인지 골똘히 그들을 번갈아본다.


 회전으로 설정해 놓은 에어컨 바람이 유성의 머리칼과 안면을 쓸어내린다. 창 밖 햇살에서 벗어난 서늘한 공간 속에서, 유성은 거짓된 잡초들을 구분해 본다. 진짜 고생한 꽃들은 줄기에 달린 잎이나 꽃잎들이 일정하지 않다. 아니 일정하지 못하다. 그들은 꽃의 모양이나 외모를 신경 쓸 겨를이 전혀 없다. 생존을 위해 한시라도 빨리 잎을 뻗고 꽃을 피워내야 한다. 외모는 그다음이다. 안정되고 여유가 생기는 시점부터의 새롭게 생기는 과제인 것이다. 생존이라는 일생일대의 목표에 비하면 이것들은 너무나 하찮은 것들이다. 생존에 대해 무감각해지고 바로 내일이 아닌 몇 주 후를 바라보고 몇 달 후를 바라볼 여유가 생길 때, 문화라는 것이 발달하고 예술이라는 것이 향유된다. 그 평화 가운데에서, 한 번이라도 죽음의 최전선에 갔다 온 이들은 내가 내일이 아닌 모레를 상상한다는 것. 다음 주에 친구와 술약속을 잡는다는 것. 내년 어머니의 생신에는 무엇을 해드릴까 고민해 보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살갗으로부터 진동하며 느낀다. 그들은 생명과 날마다 마주했고 이를 악착같이 지켰다. 그들 속에 일어나는 분노에는 삶이 있다. 문화와 예술 같은, 인간이라는 동물로부터 무지하게 하는 것들, 그것들을 경험하며 한 층 더 뛰어난 존재들이 된 것 마냥 고급진 단어를 골라 떠들어대는 교만한 저능아들이 쏟아져 나오는 그런 것들과는 다르단 말이다. 그들은 생명을 마주하지 않는다. 다른 이에게 이를 떠넘긴다. 삶이 망가질 때, 사실 망가지는 것도 아닌 살짝 금만 가더라도 남을 탓한다. 삶이 끝나가는 마지막까지도 자신의 회사의 감금과 의사의 무관심을 탓할 것이다. 저 온실 속의 화초들. 온실에 구멍 하나 생겼다고 제 주인을 흉볼 작자들. 군대 시절, 고장 난 건조기 하나에 집단 항의까지 한 나의 선임들. 그들이 대표적이다. 불현듯 다음 주에 그들과 만나기로 한 것이 떠올랐다. 일정하게 자란 그들과 시시콜콜 과거의 온실에 대해 이야기하겠지. 중간중간 생겼던 작은 구멍에 대해 쏟아내겠지. 그 구멍을 막느라 본인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자랑스럽게 떠들어대겠지. 내가 그 앞에서 웃을 수 있을까. 사실 그들과 함께 한다는 것 자체가 나도 다를 바 없다는 것 아닐까. 내가 생존과 사투해 보았나. 처절했던 적이 있었나. 저 화분들과 다를 바 없는 나는 다음 주를 너무나도 평안히 생각하는구나. 내가 뭐라고, 1년에 두 번 생명의 분투 근처에서 깔짝대는 내가 뭐라고 이들에게 자격을 부여할까. 결국 나도 전쟁 없는 평화 속에서 자갈 하나 없는 보도블록을 걸어온 것이다. 아니다. 차라리 잘된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이것은 신이 주신 기회일 수도 있다. 이미 자유를 맛본 자에게 주어진 기회. 자유로부터 해방될 기회. 이대로 이곳 서울에 자리 잡아 온실 안에서의 자유로만 만족할 수 있는 기회. 이들은 모르는 것이다. 진정한 자유를 겪어보지 않은 것이다. 이 사무실 안에서의 평안과 자유가 이들이 누린 최대의 삶인 것이다. 내가 그리는 삶, 내가 지금 아등바등하며 머릿속 꽃밭 위를 덧칠하며 완성하려는 그림이 바로 이것이었다. 이 삶을 나도 살 수 있다. 나도 이들과 같다. 애초에 아등바등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금단 현상이 오는 금연자들이 손을 떨며 버틸 이유는 금연을 하기 위함일 것이다. 나는 그들과 다르다. 담배 연기 속에서 폐가 썩어가는 느낌을 온몸으로 들이마시고 머릿속 매연과 함께 내뿜으며 이 흡연 부스 안에서 오래오래 살 것이다. 이 정도까지 독한 삶은 아닐 것이지만 어쨌든 이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자유를 맛보았지만 이들과 다르지 않고, 내가 꿈꾸는 서울에서의 삶은 자유과 병행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결국엔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눈을 감는 쪽으로 선택할 것이다. 이것은 도망이지만 도피성으로의 도주다. 한 폭의 안정된 그림을 위한 인내의 시간이자 또 다른 밀물을 위한 썰물의 시간이다. 한참을 그렇게 화분들을 보던 유성의 눈에 그제야 창가 위에 있는 시계가 들어온다. 삶과 죽음을 떠돌던 유성의 머릿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간은 야속하게도 30분이 채 지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들을까 한숨을 얕게 내쉬고는 책상 아래에 있던 손을 키보드 위에 올리는 그이다. 달력에 약속날짜를 표시해 놓고는 다시 거짓된 생명이 달린 일에 집중해 본다.


 다른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바쁘게 일주일을 사는 것은 꽤나 쉬운 일이었다. 이 나라의 사회와 회사들이 너무나도 적극적으로 그것을 도와주었다. 2분이 되지 않는 시간마다 밀려들어오고 나가는 지하철의 사람들이며, 한 가지 일이 끝나기도 전에 다음 그다음 일이 이미 예정되어 있는 회사며, 다음 날 9시까지 출근할 것을 생각해 밤에 궁상떨 것을 포기하고 강제적인 수면에 들게 하는 인간이며, 일주일 동안 유성은 하나의 톱니바퀴로 그들과 연합하여 과제를 잘 수행했다. 기다려지지는 않는 약속이었지만, 그것이 다가왔을 때의 상황을 상상해 보니 시간은 더 빠르게 상상의 순간을 앞당겨왔다. 그에게 맘에 드는 상상은 없었다. 일 얘기나 옛날 얘기나 할 것이 너무나 분명했다. 재미는 있을 것이다. 관심사를 나누는 것은 꽤나 유쾌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일은 자신의 씨앗을 두른 껍질이 가장 관심 있어하는 부분이다. 설령 그 내면이 죽을만치 싫어하더라도, 그 주위로 거대한 벽을 세운 유성과 그의 선임들은 그들의 눈과 뇌와 손 끝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 이야기에 불을 켜고 달려들 것이다. 일 얘기는 자신을 나타내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어찌 보면 노예시장 무대에 나와 자신의 능력을 뽐내는 것과도 같다. 나의 회사에서의 성과를 좋은 부분만 골라 자랑하기도 하고, 지금 증시가 어떠하고 추세가 어떨 것이고 하며 자신의 지식을 은근스레 까놓기도 할 것이다. 같은 자리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는 없지만 괜스레 서로 앞다투어 이런 것을 드러내는 것은 기분을 탓하기에는 이미 알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이러한 일 얘기만큼 또 재밌는 것이 추억을 공유하는 대화다. 시공간을 초월하여 같은 기억의 순간으로 떠나는 여행에 동반자들이 있는 것은 특별한 일이다. 그 순간들이 깨어져 참혹했다면, 그것으로부터 회복된 현재 그 기억들은 조각조각 더 찬란히 빛난다. 같은 중고등학교를 나온 친구들, 재수학원에 함께 다녔던 동기들, 그리고 유성과 그의 선임들처럼 함께 군대생활을 지낸 사이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공동의 일기장들을 넘길 것이다. 그러나 그뿐이다. 그 어떤 현재와의 연관성이나 생산적인 무언가가 존재하지는 않는다. 폐급이었던 후임과 우리들을 괴롭히던 선임, 답답하던 상사들은 한 페이지만을 차지할 뿐 지금도 곁에서 고통을 주진 않는다. 그들은 이제 신화가 되었고, 교훈 정도 얻어갈 우화가 되었다. 약속 당일은 눈 깜빡하니 도달해 있었다. 타자를 두드리던 유성은 책상 위에 놓인 회사 ID 카드에 손을 뻗었다. 그 플라스틱 조각은 그가 속박된 도시의 이름표였다. 그 순간, 몸속 깊은 곳에서 이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마치 자신의 가죽을 벗어던지고 나서도 또다시 새로 입은 껍질 속에 갇혀 있는 기분. 그들과 함께 하는 게 맞나. 이 물음은 수백 번 넘게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러나 유성은 답을 찾지 못했다. 대신 또다시 책상에 앉아, 같은 루틴을 반복하며 어제와 똑같은 서류를 처리할 뿐이었다.


 회사 밖을 빠져나오며 유성은 굳이 가야 하나 또 고민한다. 맘에 드는 것 하나 없는 상상을 현실로 맞이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인가. 지하철 역 계단을 내려가 교통카드를 찍고 역내로 들어가 열차 입구 앞에 서서 열차가 오기를 기다리기까지, 그 모임에 그래도 존재할 향기들을 생각해 보았지만 그에게 예정된 것들은 먼지와 악취 밖에 없었다. 매일 아침과 저녁마다 듣는 익숙한 멜로디와 함께 지하철이 곧 온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우측으로부터 희미하게 빛이 비치기 시작하며 점점 강해진다. 검은 벽면뿐이던 유성의 정면에 곧 빛과, 수많은 문과 사람들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그에게는 지금 가는 그 모임이 이와 같다. 안에 사람들이 있고 입구와 출구가 있고 시작과 끝이 있지만 그렇게 한 순간에 지나갈, 어떠한 의미도 남지 않을 그런 시간이다. 열차는 속도를 줄이고서 정차한다. 유성 앞에도 문 하나가 멈추었다. 문이 열린다. 서늘한 공기가 유성을 안으로 끌어들인다. 밝게 흰 지하철의 내부와 그를 지나쳐 열차에 탑승하는 직장인들을 바라보는 유성은 좀처럼 발을 떼지 못한다. 이 열차에 들어가는 순간 그들과 같음을 온몸으로 인정하는 것과 같았다. 기억 저 편으로 떨어지는 낭떠러지에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던 자아를 놓는 것과 같았다. 역시나 기다려주지 않는 열차는 문을 닫는다. 그리고는 빠르게 유성의 혼란 밖으로 벗어난다. 유성은 조금 더 오래 자리를 지키다 이내 몸을 돌린다. 계단을 올라 반대편으로 넘어가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탄다. 그렇게 집까지 오는 길 내내 그는 확신한다. 이렇게 사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니라고. 일주일도 버티지 못하고 다시 이 기로에 빠졌다는 죄책감보다는 변화의 필요에 대한 대단한 열망이 그를 차지한다.  

이전 07화 6. 누군가는 설레고, 누군가는 울적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