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깊이
소리는, 모든 공간을 차지하는 독재자들이다.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도, 가는 곳마다 흔적을 남긴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공기 속을 흐르며 무언가를 명령하고, 그 명령에 따라 모든 것이 움직인다. 차갑고, 뜨겁고, 시끄럽고, 조용한 그들의 목소리는 심지어 공기 속의 작은 입자들마저도 순응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들이 꼭 착취를 하거나 우리들의 존재를 음(音)의 노예로 탈바꿈시키지는 않는다. 대표적인 것이 음악이다. 서울 어느 거리를 나가더라도 내딛는 열 걸음마다 새로운 노래들이 귀를 강타한다. 취향과 맞지 않아 그저 소음으로 취급하는 것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지나가는 시간의 흐름에 놔둬도 괜찮은 소리들이다. 꼭 강제적인 점유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원하는 곡들을 플레이리스트에 담아 자기만의 공간을 창조하기도 한다. 어디에 있든 에어팟을 두 귀에 꽂기만 하면 현실과의 황홀한 단절을 즐길 수 있다. 나도 그것을 누리는 사람 중 하나였다. 이것이 과거가 된 것은 음악을 들을 시간마저 구하기 어려워진 최근의 나의 삶이 이유였다.
이런 미적인 것을 추구하는 욕구는 듣는 것에서 직접 하는 것으로 옮겨갔다. 인간의 욕심을 어느 정도 고려해 보면, 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이미 오래전부터 싹트고 개화해 있던 것이었다. 시작은 평범한 피아노 학원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당시, 주변의 모든 나의 또래들은 피아노, 태권도, 검도 중 하나는 꼭 했었다. 부모들이 혹시나 하며 예체능의 자질을 검토하는 시험대일 수 있겠지만 대부분은 또래들과의 단체생활에 참여시키려는 파도에 휩쓸린 마음들이다. 구기종목을 제외한 다른 운동에는 관심이 없던 나는 이 세 가지 중 피아노를 택했다. 음악을 좋아해서도 있었다. 어릴 적부터 다닌 교회에서 흘러나오던 찬송가들은 곡(曲)이 주는 선율의 미를 남들보다 일찍 깨우치게 했다. 흥얼거리기도 하고, 어른들에게 잘 보이고자 고래고래 따라 부리기도 하며 자연스럽게 음정과 박자는 훈련되었다. 그래서인지 무용수가 유려하게 춤을 추듯 나의 건반 실력은 빠르게 매끄러워졌고 부드러워진 손가락들의 움직임은 내 안의 각진 것들마저도 다듬는 듯했다.
친구들보다 잘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은 꽤 들뜨는 일이었다. 계속해서 다음 단계를 밟으며 그 격차를 더 벌리려는 욕망도 마음 한편에 자리 잡았다. 부모님을 졸라 집에도 피아노를 한 대 놓았다. 악기를 잘 다루는 법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결국엔 꾸준히 연주하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었다. 그리고 교회는 이 쪽으로도 상당한 강점이 있었다. 일요일마다 반주를 하는 것. 설령 그것이 베토벤이나 쇼팽보다는 단순할 종교음악이더라도 매주 피아노를 친다는 꾸준함을 유지하기에 너무나 좋은 환경이었다. 안타까운 것은 나는 그 기회를 잡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유도 다른 이유가 아닌 흥미를 잃어서였다. 지금에 와서는 많은 후회가 생기는 순간이지만 그때의 나는 음악에 대해 어떤 책임도 지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욕망과 책임은 융합되기보다는 충돌하여 모두 산산조각이 났다. 그렇게 악기와 거리를 두고 집에 있던 피아노에는 점점 먼지가 쌓여갔다.
나와 같이 좋은 환경에서 훈련받으며 악기를 잘 다루게 된 사람들은 교회에 넘쳐났다. 나 하나 연주하지 않는 것이 아무런 타격이 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게 나와는 달리 반주자의 자리에서 오랜 기간 봉사한 여러 친구들은 청년이 된 지금까지도 그 자리에서 묵묵히 건반을 치고 있다. 현재의 실력으로는 그들과 절대로 비빌 수 없는 사실도 매주 귀를 통해 전해진다. 물론 나와 같이 처음부터 참여하지 않은 친구들도 있고, 조금 하다 그만둔 친구들도 여럿 있었다. 최근 스무 살이 되어 반주자를 그만둔 친구와 대화할 기회가 생겼다. 그녀도 책임의 무게를 언급했지만 나와 다른 점은 그것을 부수지 않고 들고 버텨왔던 것이었다. 그녀를 보며 조금의 부러움과 많은 걱정이 찾아들었다. 어린 반주자는 많이 지쳐 보였다. 그녀도 처음에는 설렘이 있었을 것이다. 나도 느꼈던 욕망의 충족과 음률이 주는 아름다움에 대한 자발적인 나아감을 그녀도 행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어느 순간 수동적으로 바뀌고 쌓여있던 욕구들이 사라지게 되면 설렘은 고통이 되고 봉사는 노동이 된다.
능동적인 것과 수동적인 것은 본인이 자원하는 마음의 정도의 차이로 구분된다. 하지만 그런 자발적인 마음의 차이는 쉽게 정의 내리지 못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인지 억지로 하는 것인지 섣불리 판단을 할 수 없다. 깊은 고민 끝에 두 가지 정도의 이유를 찾아볼 수 있었다. 첫 번째는 대부분의 말이나 행동이 능동성과 수동성이 공존하는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학생 시절 모두가 본인이 원하는 대학에 가고 싶은 본인의 마음으로 강제로 공부하는 것이나, 양질의 삶을 살기 위한 마음으로 참고 참으며 일이나 알바를 하고 있는 것이나, 거의 대부분의 선택들이 모두 본인이 원하는 어떠한 모습이나 결과를 위해 능동적으로 자신을 수동적인 틀 속에 밀어 넣는다는 것이다.
둘째로는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이 갈대와 같아서 순간순간마다 자원하는 마음이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생긴다는 것이다. 정말 본인이 원해서 공부를 하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단 하나의 자발성 없는 마음으로 욕을 하며 공부를 하는 순간이 있다. 회사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며 일하다가도, 중요한 프로젝트가 주어졌을 때 왠지 모를 책임감에 마음을 다해 열의를 불태우기도 한다. 이 마음가짐은 하루에도 몇 번이고 마음속에서 왔다 갔다 한다. 그렇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능동적이고 수동적인 마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해진다.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냐보다는 무엇에 더 집중해야 할까를 더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 능동과 수동의 굴레 속에서 변하지 않는 목표의식. 그것이 본질이다. 무엇을 위해 자발적으로든 수동적으로든 본인이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다만 이 목표의식만큼은 자발적이어야 한다. 그것만 뚜렷하다면 이 박쥐 같은 나나 우리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내가 최근 다시 악기를 잡은 것도 내가 고민없이 바라볼 곳이 생겨서였다. 그녀도 내년이 되면 다시 반주를 할 것 같다는 이야기에 어느 정도의 자발성이 들어있는지는 파악할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녀의 마음에 욕망을 뛰어넘는 빛나는 목표가 있었으면, 그리고 그녀가 걷는 길에 무엇이 오더라도 끝을 보며 흔들리지 않았으면 하는 나의 바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