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깊이
그것은 아침에 눈을 뜨기 전부터 시작된다. 시각과 청각이 서로 하루의 시작을 쟁취하려 다투지만, 매번 포근한 이불의 감촉이 부드러운 승리를 거머쥔다. 어쩌면 그것은 그 싸움이 인식되기 이전부터 이미 시작되었을 것이다. 계획의 실행은 당일이 도래하기 전부터 이루어진다. 우리는 전날 알람시간을 맞추며, 머릿속으로 다음날을 구상하며, 만나기로 한 친구와 약속시간을 한 번 더 상기시키며 하루를 계획한다. 그리고는 눈을 감는 것으로 계획의 실천을 시작한다.
계획대로 사는 것은 나와는 정말 먼 이야기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항상 노력의 문제라는 생각을 가지며 살아왔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존재적으로 지키지 못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것은 나의 능력 밖의 일이라 확신할 수밖에 없다. 어릴 적 등교시간, 여유롭게 집에서 나온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위의 말을 반박할 거리가 전혀 없었다. 알람 소리를 듣고도 일어나기보다는 항상 알람을 끄고 생각에 잠겼다. 나의 몸이 출력할 수 있는 최대의 움직임. 그것을 활용한 기적의 시간 계산을 통해 게으른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10분 정도 더 잘 수 있다는 결론을 도출해 내고야 말았다.
나의 고질적인 게으름은 대학생 시절 특별히 나를 매일같이 붙잡았다. 등교나 시험이나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 문제와 가장 직결되었던 것은 과제였다. 과제는 단순한 학문적 의무를 넘어, 나 자신을 탐구하고 성장하는 기회가 된다. 과제를 통해 얻은 지식과 경험은 나의 사고의 지평을 넓히고, 미래를 향한 발걸음을 더욱 단단히 다져준다. 그러나 당시의 나에게 그것은 그저 학점을 위해 제출해야 할 숙제 정도였다. 심지어 매우 귀찮은. 1학년 1학기 당시 전공 강의로 경제수학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그 강의는 영어 강의였는데, 진행하셨던 여자 교수님께서 영어 발음이 특이하셨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 수업의 또 다른 특징은 매주 과제를 내주는 것이었다. Problem Set이라고 하는 수학 문제들을 풀고, 풀이 과정과 함께 적어오는 것이었는데 당시에 상당히 고통스러웠던 감정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때의 나는 그렇게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는 것이다. 선배들이나 동기들의 힘을 빌려 과제를 해치우고는 그 시간을 노는 데에 쏟았다. 아마도 과제의 어려움이나 난이도는 가라앉고 단어 자체가 주는 압박감만이 얕게 남아있나 보다.
그러던 중 마감 하루를 두고 어떠한 도움도 받지 못한 상황에 놓인 적이 있었다. 과제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까먹은 것이었다. 강의 전날 밤 평화롭게 시간표를 보다 머릿속을 스친 그 아찔했던 무지는 나의 심장을 덜컥 내려앉게 했다. 내려앉은 심장을 제자리에 놓을 새 없이 바로 노트북을 켜고 노트를 펼쳤다. 과제 파일을 열고, 펜을 집었다. 바깥의 소음은 나를 방해하지 않고, 오히려 나의 집중력을 더욱 끌어올렸다. 온 신경을 곤두세워 종이 위에 펼쳐진 수식과 그래프를 응시했다. 내 머릿속은 마치 복잡한 기계처럼 돌아가기 시작했다. 하나의 문제를 푸는 순간, 이전에 쌓아왔던 지식과 경험들이 서로 연결되며 새로운 통찰이 떠올랐다. 때로는 답이 눈앞에 보이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그런 순간일수록 더 깊이 고민하게 됐다. 시간이 흐르면서 주변의 모든 것이 사라졌다. 나는 오직 문제 풀이에만 몰입했고, 그 안에서 느끼는 긴장감과 희열은 내 마음을 가득 채웠다. 결국, 마침내 과제를 해결했을 때의 그 상쾌한 느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상이었다. 그렇게 2-3일 정도가 걸리는 과제를 5시간에 끝내는 기적과도 같은 일을 해낸 순간이 있다.
이후 들었던 생각은 이런 집중력이 평상시에는 절대로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직 위기일 때에만 끓어오르는 초인적인 힘으로 우리는 위기를 탈출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힘을 나의 힘으로 인식하게 되는 순간, 우리는 더 안일해지고 더 큰 위기가 오기까지 기다리게 된다는 것이다. 과제를 성공적으로 제출한 나는 그 이후부터 꼭 수업 하루 전 날 과제를 했다. 처음에는 저녁 8시 정도에 시작했지만 그 시간은 점점 늦어졌다. 더 급박한 상황으로 나를 몰아넣으며 빠르게 할 일을 해치웠다. 그러다 그 시간은 수업 당일 새벽까지 갔다. 그리고 당연히 실패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너무나 말도 안 되는 발상이었다. 2-3 일용 과제를 수업 당일 아침에 하려고 한다니. 당시에도 무리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후로도 이런 일은 반복되었다. 적당한 실패는 인간의 심연까지 닿지 않았다.
사람은 위기일 때 기지를 발휘한다. 어쩌면 사람은 위기여야만 초인적인 힘이 발현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평소에는 누구보다 연약하고 나약한 인간이지만 극한의 상황에 치닫게 되었을 때 그제야 위기를 기회로 바꾸도록 모여 힘쓰고 기적을 써 내려간다. 그러나 요즘 위기란 가벼운 위기가 아니다. 인간 역사상 최대 풍요의 시대에 평범한 위기로는 일말의 위기의식조차 들지 않는다.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고 모든 것은 지나가는 것이라는 요즘 많은 인간들의 모토는 위기의식을 더욱 흐릿하게 번져놓는다. 정말로 극한의 극한까지 상황이 치닫아야 기지를 발휘하는 인간은 그전까지는 베짱이와도 같은 삶에 고의적으로 패배한다. 아직은 위기가 아니니까라는 알량한 생각이 절벽을 붙잡고 있는 손가락을 하나씩 떼게 한다. 아직 네 손가락 남았으니까. 아직 세 손가락이나 남았으니까. 그러다 한 손가락까지 가게 되면 그때는 이미 위기 절정까지도 넘어선 결말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