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깊이
20대의 가장 큰 장점이자 특징 중 하나는 그들이 탐구의 열망을 가졌다는 것이다. 어떠한 것이든 더 알기를 원하고 열정을 가지고 파보려는 것. 막 청년이 되었을 때 열정 빼면 시체라는 이야기를 귀에 피가 나도록 들을 때마다, 싫으면서도 어느 정도는 맞는 말임을 인정했다. 그것은 진로가 될 수도 있고, 취미가 될 수도 있다. 연애가 될 수도 있고 여행이 될 수도 있다. 그들이 열정을 쏟는 일에는 꼭 아름다운 것만이 있는 것은 아니긴 하다. 그들이 뜨겁게 타오르는 것에는 쾌락도 존재한다. 그들이 탐구하는 것에는 가난도 있고 이별도 있다. 외로움과 고독이며, 자아이자 세계 또한 존재한다. 그들은 또 현재 자신에게 주어진 문제에 대한 뜨거운 고뇌와 침묵의 열정을 쏟는다. 변화무쌍한 20대에는 다양하고 많은 고민거리들이 눈앞에 닥친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크게 진로의 문제, 관계의 문제, 그리고 존재의 문제로 묶어볼 수 있다.
진로의 문제는 20대라면 누구나 고민하고 있을 문제고, 대학이라는 더 큰 우물로 이동하고 결국 사회라는 우물 밖까지 진출하게 되는 시기에 인간관계는 언제나 걸림돌이 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존재의 문제는 형이상학적인 것에 시선을 둘 수준에 도달한 20대에 접어들면 언제나 머리를 내밀고는 그들을 사유하게 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들이 사실은, 우리의 인생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큰 일은 아니라는 점이다. 20대 중후반만 되더라도 대학의 이름이 현재와 미래의 결과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안다. 인간관계를 붙잡고 씨름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이제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철학적인 문제들이 사실은 현실과 많이 동떨어져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무엇보다도 결국 이 모든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나의 자아를 결코 해칠 수 없는 것들임을 안다. 이것을 우리는 시간이 지나 진정한 어른이 되어가며 깨닫는다. 우리의 어른들은 이미 그것을 알고 있다. 우리의 선생들도 이것을 알고 있고 우리의 어머니와 아버지도 이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어머니는 나를 많이 답답해했다. 여자친구와 싸우고 방에서 우울하게 있을 때에도, 학교 시험을 망치고 삶을 포기하려 할 때에도, 종교의 민낯에 분노하며 어머니에게 공감을 요구할 때에도 어머니는 항상 다 부질없는 것들이라고, 그 시간에 책 한 권이라도 더 읽으라며 나를 다그쳤다. 당시에는 엄마는 공감할 줄 모르는 기계라며 짜증을 냈었다. 나의 삶이 무너져가고 있는데, 꿈꾸던 미래는 사라지고 어둠이 그 공간을 차지해가고 있는데, 그녀는 계속 괜찮다고 하는 것이 누구를 위한 말인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이 맞는 말이라는 것을 안다. 나는 여전히 굳건히 살고 있고 그것들은 시간 지나면 웃고 넘길 수 있는 경험들이라는 것. 오히려 이런 시련들이 나를 성장시키는 언덕이 되고, 내 속의 더 깊은 나와 대면하여 그와 토론하는 만남의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안다. 몇 년이 지나고 20대 후반에 위치한 지금, 20살 친구들과 학생들을 보며 턱끝까지 잔소리가 차오르는 것을 요즘 자주 경험한다. 그런 것에 얽매일 시간에 너 자신을 가꾸라는 현실적인 조언이 가슴을 강타하며 솟아오르려 한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추스르고는 그럴 수 있다는 말을 건네며 그를 위로했다. 그 여러 시련들을 지나오며 마음속에 자리 잡은 또 한 가지가 있다. 현재의 나는, 부질없던 그것들을 삶의 죽고 사는 문제인 것처럼 온 열정을 쏟아 아파함이 만든 산물이라는 확신이었다.
삶의 이유와 존재의 이유를 찾는 것은 아까운 시간낭비일까. 고뇌의 시간 없이 얻게 되는 답은 쉽게 잊히기 마련이다. 그것은 나의 답이 아니다. 내가 고뇌하며 매일매일 앓다가 마침내 도달하게 되는 해답은 언제도록 인생길에 함께할 것이다. 어른들이 쓸데없이 여기는 20대의 고민들. 정말 쓸데없는 것인지 생각해 보면 전혀 아닐 것이다. 그런 고민의 시간과 경험이 쌓였을 때 비로소 어른의 답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지, 20대 때부터 그저 답만을 주입하게 되면 전혀 와닿지 않고 그것이야말로 그 나이에 느껴야 할 것들을 느끼지 못하고 인생을 ’ 낭비‘하는 것이다. 어머니는 그것마저 알고 있었는지 말을 거두고는 나를 그 상황에 그대로 두었다. 변해 있을 현재의 나를 바라보며 생각 그만하고 밥이나 먹으라며 잔소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