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자>
기본 정보
장르 모험, 액션, 드라마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20분
감독 봉준호
출연 틸다 스윈튼, 폴 다노, 안서현
시놉시스
강원도 산골 소녀 ‘미자’(안서현)에게 옥자는 10년간 함께 자란 둘도 없는 친구이자 소중한 가족이다. 자연 속에서 평화롭게 지내던 어느 날, 글로벌 기업 ‘미란도’가 나타나 갑자기 옥자를 뉴욕으로 끌고 가고, 할아버지(변희봉)의 만류에도 미자는 무작정 옥자를 구하기 위해 위험천만한 여정에 나선다. 극비리에 옥자를 활용한 ‘슈퍼 돼지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미란도 코퍼레이션’의 CEO ‘루시 미란도’(틸다 스윈튼), 옥자를 이용해 제2의 전성기를 꿈꾸는 동물학자 ‘죠니’(제이크 질렌할), 옥자를 앞세워 또 다른 작전을 수행하려는 비밀 동물 보호 단체 ALF까지. 각자의 이권을 둘러싸고 옥자를 차지하려는 탐욕스러운 세상에 맞서, 옥자를 구출하려는 미자의 여정은 더욱 험난해져 간다.
줄거리 요약(*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국적 식품기업 미란도는 식량 문제 해결을 위해 슈퍼 돼지를 유전 공학으로 만들어낸다. 그리고 세계 곳곳에 슈퍼 돼지를 보내 각 지역에서 10년간 키우게 한다. 한국 산골에서는 소녀 미자가 슈퍼 돼지 옥자를 가족처럼 키운다. 10년 후, 미란도는 옥자를 회수해 뉴욕에서 열리는 홍보 행사에 이용하려 한다. 옥자가 납치되자 미자는 서울과 뉴욕을 오가며 옥자를 구하려 한다. 도중에 동물 해방 전선(ALF)의 도움을 받아 옥자를 되찾지만, 기업의 폭력과 자본의 벽은 높다. 결국 옥자는 도살장에 끌려가고, 미자는 옥자의 생명을 돈으로 사서 가까스로 구출한다. 미자는 옥자와 함께 한국의 산골로 돌아가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슈퍼 돼지들이 희생되는 현실을 목격한다.
<옥자>는 봉준호 감독이 처음으로 넷플릭스와 손잡고 제작한 글로벌 프로젝트다. 한국 배우들과 틸다 스윈튼, 제이크 질렌할 등 할리우드 스타가 함께 등장하며 영어, 한국어, 심지어 스페인어가 뒤섞인 다국적 구성이 특징이다. 이는 옥자라는 존재가 국경을 넘는 자본과 폭력의 상징임을 암시한다.
영화는 사랑하니까 놓아줄 수 없는 존재인 옥자를 통해, 인간의 이기심과 사랑이 어떻게 충돌하는지 집요하게 그린다. 도심에서 벌어지는 추격전은 다소 유쾌하지만, 그 끝은 불편하고 잔인하다. 사랑하면 지켜야 한다는 메시지가 점차 사랑해도 구할 수 없는 존재들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영화는 유전자 조작, 대량 사육, 도살 시스템의 비윤리성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도살장 시퀀스는 봉준호 감독 영화 중 가장 불쾌한 장면 중 하나로, 현실의 육식 문화에 강한 질문을 던진다. 동물도 상품인가라는 질문은 채식이나 동물 보호를 넘어 인간의 삶과 소비 구조를 근본적으로 되돌아보게 만든다.
옥자를 도살장에서 극적으로 구출하는 장면은 구원의 가능성이 철저히 자본 논리에 종속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미자는 옥자를 구하지만, 그것은 돈을 지불했기 때문이다. 감정도, 정의도 통하지 않는 시스템 안에서 생명은 돈으로 거래되는 상품에 불과하다. 옥자의 구출은 승리가 아니라 씁쓸한 타협이다.
도살장은 자본주의 식품 산업 전체를 상징하며, 미자가 지불한 금액은 인간이 동물을 사랑하는 감정조차도 결국 소비로 환원된다는 구조적 무기력을 상징한다.
도살장 안에서 슈퍼 돼지들이 아이를 몰래 내보내는 장면에서 우리는 동물의 본능적인 연대와 감정을 볼 수 있다. 대사가 없었지만, 부모 돼지가 아이를 구해달라는 눈빛으로 옥자를 바라보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이 장면을 통해 관객은 동물도 고통을 알고, 감정을 나눈다는 사실을 체험하게 된다.
이때 몰래 내보낸 아이는 희망의 상징이다. 완전한 구원은 불가능하지만, 작은 탈출은 가능하다는 메시지이며, 동물들이 인간처럼 공감하고 행동할 수 있는 존재라는 윤리적 인식으로 작용한다.
낸시는 기업의 이미지를 꾸미는 마케팅형 인물이고, 루시는 돈과 효율이 전부인 냉혹한 자본가이다. 결국 루시가 경영권을 장악하면서 기업의 본질은 더러운 얼굴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낸시의 이상주의는 허울에 불과했고, 루시가 보여준 냉정한 계산이 진짜 현실이었다.
쌍둥이 자매는 자본주의의 이중 얼굴을 의미한다. 포장된 윤리와 냉정한 이익, 그 두 얼굴이 사실 하나의 시스템 안에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이는 좋은 기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구조적 회의이기도 하다.
ALF는 정의로운 신념을 갖고 행동하지만, 내부 분열과 모순이 존재한다. 케이는 작전을 위해 미자를 속이고 옥자를 희생시켰으며, 리더 격인 제이 역시 옳음과 폭력 사이에서 갈등한다. 이들은 체제를 바꾸려 하지만, 시스템 밖에서만 움직이는 방식은 비현실적이다.
ALF는 윤리적 행동주의의 한계를 드러낸다. 이상은 있으나 실천은 어렵고, 대중적 설득력이 부족하다. 즉, 구조를 비판하는 데에는 성공하지만, 현실을 바꾸는 데에는 실패하는 현실적인 사회운동의 딜레마를 상징한다.
미자는 옥자를 키우면서 살아 있는 물고기를 잡아먹는다. 이 이중성은 인간이 사랑하는 동물은 지키지만, 그렇지 않은 동물은 먹는 육식의 모순을 상기시킨다. 영화 초반부터 등장하는 이 설정은 "우리는 왜 돼지는 먹고 개는 키우는가?"라는 질문을 정면으로 던지는 장치다.
옥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풍자 위에 서 있는 영화다. 착한 주인공, 나쁜 기업, 정의로운 활동가, 잔인한 도살장... 어느 누구 하나 온전히 순수하지도, 절대적으로 악하지도 않다. 이 영화는 선과 악의 대립구도를 빌리지만, 그 대립마저 비웃는다. 산골 소녀 미자는 착한 인간의 대표처럼 보이지만, 그녀가 옥자를 되찾는 방식은 결국 돈이다. 인간의 정의로움조차 자본주의에서 허락된 범위 내에 머문다. 다국적기업 미란도는 친환경과 지속 가능성을 말하지만, 마케팅 언어일 뿐이다. 쌍둥이 자매 설정은 윤리적 자본주의라는 허구를 풍자한다. 동물 해방 전선은 이상을 외치지만, 내부적으로는 위선과 모순을 안고 있다. 선한 목적을 위한 거짓말, 폭력의 정당화. 그들의 혼란은 바로 우리 사회 진보 담론의 혼란과 닮아있다. 도살장 장면은 잔혹하지만, 그마저도 체계화되어 있고, 무미건조하게 반복된다. 극도의 현실감은 오히려 블랙코미디처럼 느껴지며, 지옥이 일상화된 시스템 자체를 풍자한다. 옥자라는 동물은 구원의 상징이자 상품의 은유다. 고기가 되기 전의 눈빛, 감정을 나누는 능력, 인간보다 인간적인 침묵... 그 존재 자체가 인간 중심 세계에 대한 가장 명확한 반론이다.
<옥자>는 누가 옳고 그른지를 묻지 않는다.
대신, 그 모든 입장과 존재가
얼마나 기만적인지,
얼마나 체계 속에 무력한지를
풍자라는 거울에 비춰 보여준다.
<옥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