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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여백 3집 17화

거미집, 창작의 고통 고뇌의 연속

영화 <거미집> 리뷰

by 그린
기본 정보

장르 드라마, 코미디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32분

감독 김지운

출연 송강호, 임수정, 오정세, 전여빈, 크리스탈, 박정수, 장영남

시놉시스

“결말만 바꾸면 걸작이 된다, 딱 이틀이면 돼!” 1970년대 꿈도 예술도 검열당하던 시대 성공적이었던 데뷔작 이후, 악평과 조롱에 시달리던 김감독(송강호)은 촬영이 끝난 영화 ‘거미집’의 새로운 결말에 대한 영감을 주는 꿈을 며칠째 꾸고 있다. 그대로만 찍으면 틀림없이 걸작이 된다는 예감, 그는 딱 이틀 간의 추가 촬영을 꿈꾼다. 그러나 대본은 심의에 걸리고, 제작자 백회장(장영남)은 촬영을 반대한다. 제작사 후계자인 신미도(전여빈)를 설득한 김감독은 베테랑 배우 이민자(임수정), 톱스타 강호세(오정세), 떠오르는 스타 한유림(정수정)까지 불러 모아 촬영을 강행하지만, 스케줄 꼬인 배우들은 불만투성이다. 설상가상 출장 갔던 제작자와 검열 담당자까지 들이닥치면서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는데… 과연 ‘거미집’은 세기의 걸작으로 완성될 수 있을까?




관람 포인트

영화가 영화를 찍는다, 메타 영화

<거미집>은 영화가 영화를 찍는 이야기다. 이중 구조 안에서 우리는 허구를 만드는 현실과, 현실을 잠식하는 허구 사이를 유영하게 된다. 그 거미줄에 걸려드는 순간이 이 영화의 매혹 포인트다.


송강호 감독

송강호는 이번엔 배우가 아니라, ‘영화감독’을 연기한다. 그런데 그 감독은 배우들을 통제하면서도, 결국 자신이 만든 환상에 통제당한다. 한 장면, 한 컷에 집착하는 그의 눈빛은 웃기면서도 서글프다. 무너져가는 창작의 집 안에서 홀로 버티는 인물의 얼굴이다.


현실을 반영한 픽션

영화는 1970년대 검열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예술을 통제하려는 권력과 진짜를 찍고 싶다는 욕망이 충돌하는 장면은 지금의 현실과도 겹쳐진다.




시사 포인트

거미줄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거미줄은 영화 전체를 덮고 있는 정서적 그물이다. 영화 속 영화에서 등장하는 실내 구조, 조명 속 그림자는 현실과 허구가 엉켜 있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암시한다. 감독 ‘김열’이 다시 짜려는 결말 역시, 이미 찍어둔 현실을 되감고 싶은 욕망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거미줄이다. 누군가는 그 안에서 몸부림치고, 누군가는 자신이 거미인 줄 착각한 채 거미줄을 짜고 있다. 결국 아무도 빠져나오지 못한 채, 영화도, 감독도, 배우도, 제작자도 그물 속에서 버둥댈 뿐이다.


예술가가 미쳐가는 과정

김열은 “더 나은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모든 것을 거스른다. 이미 끝난 영화에 손을 대고, 배우들을 불러들이고, 검열관과 제작사를 설득하며, 결국 자신이 만든 허구에 스스로 갇혀버린다. 그 모습은 우스꽝스럽고, 동시에 비극적이다. 그는 진심으로 ‘좋은 예술’을 꿈꾼다. 하지만 창작자의 진심이, 언제나 결과로 보장되는 건 아니다. 때로 진심은 폭력으로, 완벽주의는 강박으로, 창작은 파괴로 변한다. 김열은 그런 예술가의 내면을 끝까지 밀어붙여 보여주는 인물이다.


시네마 천국?

<거미집>의 마지막 시퀀스는 어딘가 익숙하다. 감독 김열과 배우들이 함께 완성된 영화를 바라보는 그 구도의 배치는, 자연스럽게 <시네마 천국>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스크린을 마주하고 앉아, 스쳐 지나가는 순간들을 바라보는 자리.

<시네마 천국>의 마지막은 기억과 사랑, 필름에 새겨진 애틋함의 정조였다면, <거미집>은 다르다.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김열은, 창작의 고통을 통과한 뒤에도 여전히 만족하지 못하는 창작자 자신의 잔상이다. 환희와 비탄, 자괴가 뒤섞인 그 침묵. 김지운 감독은 오마주의 형식을 빌리되, 감정을 완전히 뒤집는다. 스크린 앞에 앉은 이는 관객이 아니라 감독이다. <시네마 천국>의 재편.




창작의 고통을 통과한 뒤에도

여전히 만족하지 못하는 예술가의 잔상

<거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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