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님과의 옷장 수업>

서먹하기만 했던 시어머님과의 사이, 옷장 수업으로 변화가 찾아왔다.

by 지나킴 마케터

<마음의 거리>


시어머님과의 관계가 처음부터 편안했던 건 아니었다. 오히려 신혼 초, 시댁에 가끔 들르는 일조차 나에겐 조금은 불편하게 느껴졌다. 대부분의 며느리들이 이 시기엔 시댁에서 잘 보이려 애쓰고, 눈치를 보며 예의를 다하곤 한다. 그런데 나는 그런 시간에, 시댁에 가서 대화를 나누기보다 낮잠을 청하곤 했다.


당시엔 일이 한창 바쁠 때였고, 주말마다 시댁에 들를 땐 정말 눈을 뜨기 어려울 만큼 피곤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모습이 무례하게 비쳤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님은 단 한 번도 뭐라 하신 적이 없었다. 오히려 내가 깰까 봐 조심스럽게 방문을 닫아주시곤 했고, 지금도 그 장면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나는 거리를 두고 있었지만, 어머님은 까탈스럽고 깍쟁이 같았던 나를 묵묵히 기다려주고 계셨던 것 같다.


<예기치 않게 다가온 대화의 시간>


그렇게 서먹했던 사이에 변화가 찾아온 건, 내가 퇴사 후 시댁 근처로 이사 오게 되면서부터였다. 바쁘게 살던 시절과는 달리 시간이 넘쳐나기 시작했고, 일하느라 바쁜 친구들과의 만남도 줄어들며 자연스럽게 어머님 댁을 자주 찾게 되었다.


어머님은 미대를 전공하셨고, 손수 옷을 만들어 입으실 만큼 탁월한 미적 감각과 솜씨를 지닌 분이다. 처음엔 그저 옷에 대한 대화를 나누던 것이, 점차 취향과 가치관, 삶을 바라보는 태도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색감, 소재, 실루엣 같은 가벼운 이야기에서 시작한 대화는 어머님의 젊은 시절 이야기와 삶의 철학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나 역시 조금씩 마음을 열고 내 이야기를 털어놓게 되었다. 어머님은 언제나 진심으로 귀 기울여 들어주셨다. 말하는 걸 좋아하는 나는, 그 따뜻한 반응에 신이 나서 더 열심히 이야기를 나눴다.


대화를 나누며 알게 된 건, 어머님 역시 성인이 된 이후 수많은 역경과 시련을 겪으셨다는 사실이었다.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콩쥐 팥쥐’ 현실판 같은 이야기, 장녀로서 형제들을 엄마처럼 돌봐야 했던 어린 시절까지. 그 삶은 헤아릴 수 없는 무게의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모든 시간을 지나 지금의 어머님이 계신 것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자, 내가 마음속에 쌓아두었던 오해의 벽이 하나둘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때로는 강인하고 권위적으로만 보였던 어머님의 모습도, 사실은 혹독한 환경 속에서 스스로를 다잡으며 살아온 세월의 흔적이었다. 사람은 그 삶의 이야기를 들어야 비로소 이해하게 되고, 공감이 쌓이면서 상대와의 거리가 조금씩 좁혀진다. 그런데 솔직히 돌아보면, 나는 ‘시댁’이라는 이유 하나로 어머님의 이야기에 마음을 열어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던 건 아닐까—그런 생각에 뒤늦은 미안함이 밀려왔다.


그때 나는 시험관 시술을 준비하고 있었다. 심리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지쳐 있던 시기였다. 아이를 간절히 기다리며 결국 퇴사까지 하게 된 상황, 낮아진 자존감, 사회적 타이틀을 잃은 듯한 허전함 속에서, 나는 종종 나 자신마저 잃어버린 것 같은 공허한 감정에 빠져들곤 했다. 그때 어머님과 나눈 대화는 마치 인생 선배에게서 받는 따뜻한 햇살 같은 위로로 가슴에 스며들었다. 어머님은 자신의 아픈 시절을 회상하시며, 내 현재의 어려움에도 기도와 따뜻한 말을 아끼지 않으셨다.


최근에는 개인적인 수술로 인해 한 달간 어머님 댁에 머물게 되었는데, 어머님은 마치 친딸처럼 나를 돌봐주셨다. 두 살배기 아이의 육아까지 도맡아 주시며, 칠순의 몸으로 나를 정성껏 간호해 주셨다.


남편을 만나 결혼한 것보다 어쩌면 그보다 더 큰 선물은 어머님을 가족으로 만난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남편은 내가 직접 선택한 사람이지만, 그의 가족은 선택할 수 없는 인연이다. 그래서 더 어렵고, 더 조심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님은, 내가 마음을 열 준비가 될 때까지 조급해하지 않고 묵묵히 기다려주셨다.


<옷장 수업, 인생 수업>


그런 어머님께 나는 ‘옷장 수업’을 받았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것은 단순한 스타일링의 수업이 아니라, 어머님의 인생을 배우며 나의 인생 또한 뒤돌아보는 인생 수업이기도 했다.


뛰어난 미적 감각을 지닌 어머님의 조언은 하나하나 귀하고도 인상 깊었다. 그 이야기들을 나만 알고 있기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문득 글로 하나둘 옮겨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글들을 다시 들여다볼수록, 그 시간들이 단순한 스타일링 팁의 나열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어머님과 나, 둘 사이의 대화가 얼마나 깊고 따뜻했는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서로 가까워질 수 없을 것 같던 관계는, 시간이 흐르며 점점 다정한 이해의 시간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이어진 ‘옷장 수업’은 내게 그 어떤 수업보다 특별하고, 의미 있는 수업으로 남았다.


어머님의 옷장 수업을 통해 달라진 것은 단지 나의 옷차림만이 아니었다.
어쩌면 더 근본적인 변화는, 가족과의 관계였는지도 모른다.


처음엔 거리감만 느끼던 사이였지만, 지금은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으며
진심으로 이해하고 존중하는, 진짜 가족이 되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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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킴 마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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