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일 수도 있어요?”
“그럼요.”
그의 능숙하지 못한 대화법이 삶에 대한 나의 사고방식을 그전과 후로 갈라놓았다.
암 얘기는 그가 먼저 꺼냈다. 폐 근처에 아주 심한 통증이 발생해서 병원을 찾았을 때였다. 숨을 크게 쉬어도 아프고 기침을 하면 거의 데굴데굴 구를 지경이었다. 몸살기로 시작해 소염제 정도로 해결되려니 하고 며칠을 보내다가 나타난 증상이었다.
그때까지 감기 몸살로 병원에 간 기억은 없었다. 며칠이 지나면 늘 회복됐으니 며칠이 나에게는 특효약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몸살이 폐 부분의 통증으로 연결되더니 그 정도가 급하게 심해졌다. 어쩔 수 없이 병원에 갔고 CT를 찍게 됐다. 통증으로 인한 걱정은 있었지만 의사의 입에서 ‘암 얘기’가 나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처음부터 콕 찍어서 암을 얘기한 것은 아니다. 진료실에서 나를 맞이한 그는 검사 후 전송된 나의 CT 사진을 보며 말했다. 폐에 종기 같은 조직이 생겨 통증이 유발됐다고 설명하면서 자신의 단말기 화면을 돌려서 보여주었다. 흑백사진에는 폐에 붙어 돌출해 있는 이상 조직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그는 아래쪽에 이상 조직이 생긴 것이, 위치가 썩 좋지 않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 증상의 몇 가지 가능한 원인을 설명하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암을 포함시켰다. 그는 두어 가지를 함께 얘기했지만 나에게는 암이라는 말만 귀에 덜컥하고 걸렸다.
나는 그의 말을 급하게 끊고 물어보았다.
“암일 수도 있어요?”
그는 지극히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그렇다고 했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 쉽게...’
난데없이 벼락을 맞은 것 같은 상황에서 잠시 숨을 고른 나는 다시 물었다.
“암일 가능성이 있는 거예요?”
희망의 여지를 확보하고 싶어 내가 황급하게 한 발 물러섰다. ‘가능성’에 아닐 수도 있다는 의미를 있는 힘껏 담았다.
“그럴 수 있지요.”
그는 나의 기대와 달리 순간의 주저함도 없이 대답을 했다. 그 작은 표현의 차이에 간절한 희망이 대롱대롱 매달렸으나 그는 그 말이 그 말 아니냐는 표정으로 싹둑 끊어 버렸다. 희망이 바닥으로 나뒹구는 순간 마치 자동 반사처럼 헛웃음이 픽 나왔는데 그 상황에서 그 생리적인 현상이 무슨 의미인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처방은 일단 강한 항생제를 쓰는 것으로 나왔다. 몇 가지 이유로 종기처럼 보이는 것이 고름집일 가능성이 높아서 항생제로 다스려 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암일 가능성도 경계해야 하기 때문에 경과를 주시하며 대응하는 것으로 대략 정리가 됐다. 치료 방향은 이렇게 정해졌지만 진료가 끝날 무렵까지 나는 아직도 ‘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그 가능성이 충분히 그럴듯하게 거론된 상태에서 항생제가 장차 이 상황을 무난하게 정리해 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진료가 마무리될 때 나는 다시 얘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재차 물어보는 것이 면구스럽고 또 냉정한 대답을 듣기가 겁나기도 했다.
“내가 마음이 약해서 그렇다.”고 둘러대며 궁색한 상황을 조금이라도 무마하면서 말을 꺼냈다.
“암일 가능성이 높은 것인가요?”
이번에는 상황을 극단화시키는 도박을 걸었다. 그가 '그렇다.'고 말하면 나는 더 이상 할 말을 찾을 수 없게 된다. 말하자면 거기서 끝이다. 그렇지만 이미 거기까지 간 상황에서는 그렇게 밖에는 희망의 여지를 찾을 방법이 없었을지 모른다. 모든 것이 불분명한 진단 초기에 단정적으로 결론을 내려 보라고 다그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내 표정에 묻어 있는 불안과 간절함을 그가 읽은 모양이었다. 그는 그제야 어조를 바꾸었다.
“아, 가능성이 높은 것은 아니고요, 그러나 경계는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순간 최악을 벗어나는 듯한 약간의 안도가 찾아왔다. ‘가능성이 높은 것은 아니’라는 언급까지 끌어냈으니 그 말은 그 상황에서 내가 그로부터 들을 수 있는 최대치였던 것 같다. 아무리 내 표정이 엉망으로 구겨져있다 한들 ‘조금 전 내 얘기는 완전히 틀렸습니다. 거기서 암은 절대로 빠져야 합니다.’라고 그가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더 이상 들을 수 있는 얘기는 없었다.
해소된 것은 아니지만 잠시 마음을 돌려놓은 정도의 기분으로 약국에서 약을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약을 먹고 얼마 되지 않아서 가슴의 통증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항생제가 그렇게 신통한지는 몰랐다. 가루로 녹아내린 항생제가 온몸을 타고 돌며 거침없이 통증을 먹어치우는 것 같았다.
‘항생제가 이렇게 잘 듣는다는 것은 지금의 증상이 암과는 그만큼 관계가 없다는 뜻이겠지.’
생각은 여전히 암 언저리에 맴돌고 있었고 어떻게든 떨어내 보려 애를 쓰고 있었다. 그러나 그도 잠시, 맨 앞의 고통이 사라지자 그 뒤의 걱정이 생각의 자리를 온통 차지하고 말았다.
‘가능성은 모두 열려 있다는 것 아닌가?’
순간순간 시시각각 생각은 요동을 쳤다.
‘나는 이미 암의 사정권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은 아닌가?’
진단 과정이나 치료 과정 모두가 마땅치 않은 데다 주변의 권유도 있고 해서 결국 대학병원에 입원을 하게 됐다. 몸살기가 돌기 시작한 때부터 따지면 거의 2주 정도 후에, 말하자면 초기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본격적인 치료 단계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진료 기록을 모두 가지고 간 터라 상황 파악은 충분히 됐을 법한데 대학병원에서도 신중하게 접근했다. 대부분의 검사를 다시 했고 입원 3일 후에 검사 결과를 듣게 됐다. 담당 의사는 감염 가능성이 유력하다는 의료진의 판단을 전해 주었다. 그렇다고 ‘안 좋은 경우’는 절대 아니라는 확언을 하지도 않았다. 다만 여러 과의 전문가들이 협의한 결과 ‘안 좋은 경우’에 대한 염려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고 판단 과정을 상세하게 말해주며 안심을 권유했다. 좀 더 시간을 두고 보자고 했다.
‘아, 다행이다.’
상황은 적어도 호전된 것이다.
그렇지만 이미 심리적 사정권 안에 들어가 버린 나는 그 정도로 빠져나오지 못했다. 시간을 앞질러 누구도 말해 줄 수 없지만, 확신을 주는 단언 없이 나 스스로 그물에서 빠져나올 방법은 없었다.
그런데 그때 만일 누군가 무리해서 확언을 해주었으면 개운하게 해소됐을까?
아마 나는 ‘어떻게 그가 시간을 건너뛰어 그렇게 단정할 수 있을까.’
이유를 찾아 다시 의심했을지 모른다. 이미 뚜껑이 열리며 쏟아져 나온 걱정을 제자리로 욱여넣고 다시 뚜껑을 닫는 것은 불가능했다.
치료 방향은 이미 시작된 항생제 치료를 강도 높게 진행하면서 경과를 보는 것으로 정해졌다. 그로부터 다시 10 여일 이상 지속된 나의 입원 생활이 시작됐다. 아침저녁으로 손바닥만 한 비닐봉지에 담긴 약물이 대롱에 매달려 중력의 힘으로만 피 속으로 들어왔다. 통증은 어느 정도 가셨고 몸에 익숙한 중력만 작용하고 있으니 약의 유입을 느끼지는 못했다. 비닐봉지가 줄어드는 것으로 약이 들어오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게 자극 없는 시간이, 주사 맞고 밥 먹고, 주사 맞고 밥 먹고를 단순 반복하는 시간이 하릴없이 흘렀다. 내 몸인데 그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른 채 시간이 어디로 끌고 가는지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이 지속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