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IDST THE SNOW -단편집 미히버스(MIHIVERSE) 수록작
아이는 아침 내내 부산했다.
학교에서 리폼 수업이 있다고, 옷장을 뒤지며 안 입는 옷을 찾고 있었다.
“엄마, 이 옷 써도 돼?”
아이가 흔든 옷을 보고 나는 잠시 멈칫했다. 그 옷은 오래전, 아버지가 사주었던 옷이었다.
“어… 그래, 써도 돼.”
남편이 옷을 든 아이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내가 아이 데려다줄게.”
남편과 아이가 나가자 집에 혼자 남았지만, 오후 내내 도무지 집안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마음이 복잡했다. 나는 겉옷을 챙겨 입고 거리로 나섰다.
아버지가 그 옷을 사주었던 날이 떠올랐다. 내가 꼭 사고 싶다며 조르자, 아버지는 흔쾌히 그 옷을 사주겠다고 했었다.
이 거리를 지나가면서 아버지는 말했었다.
“내가 너를 꼭 잡아야 해.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네가 내 손을 잡으면 놓칠지 모르니까.”
우리는 백화점에 들어갔다.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며, 나는 근처 카페에 들어갔다. 창가에 앉아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그 날의 기억은 여전히 선명했다.
아버지는 나에게 빨간 티셔츠를 사주었다.
나는 기뻐했다.
아버지는 기뻐하는 내 모습을 보더니 활짝 웃었다.
그 순간, 갑작스레 백화점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붕괴하는 건물 안에서 나는 순식간에 아버지와 떨어졌다.
어두운 잔해 속 빈 공간에서 나는 아버지를 애타게 불렀다.
'아빠, 어디 있어요?'
하지만 어디에서도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그 때, 아들에게서 문자가 왔다.
‘엄마, 학교 끝났는데 어디 있어?’
‘엄마 카페에 있어, 여기로 와.’
나는 지도를 함께 보냈다.
연기와 불길이 퍼지는 혼란 속에서, 소방관이 나타나 내 손을 이끌었다.
그 날 이후 나는 평생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살았다.
이후, 거리에서 불량배들을 만났을 때 내 손을 잡고 이끌어주었던 소년이 있었고,
몇 년 후, 결혼식장에서 내 손을 잡고 있던 삼촌은 나의 손을 그에게 건네주었다.
이듬 해, 아이가 태어났고, 갓 태어난 아이의 작은 손이 내 손가락을 움켜쥐었다.
길 건너에서 학교를 마치고, 아들이 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 아이가 이렇게 자랐는데, 이 모습을 아빠가 봤으면 좋아했을거야.’
나는 조용히 카페 밖으로 나와, 문 앞에 서있었다.
차가운 겨울 공기가 얼굴을 스쳤다.
나는 아이가 가져간 옷을 생각했다.
백화점이 붕괴한 날, 아버지가 사주었던 옷.
몇 년 동안 입지도, 버리지도 못했던 옷.
아이가 그 옷을 가져간다고 했을 때 나는 묘한 감정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시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섭섭했다.
아버지를 원망하던 마음이 조금씩 차올랐다.
나를 꼭 잡아준다면서, 먼저 떠나버린 그 사람을.
“엄마!”
아들은 환하게 웃으며 내게 달려와 안겼다.
“오늘 이거 만들었어!”
아이는 자랑스럽게 장갑을 내밀었다.
“손이 언제나 차갑지 않게.”
아이는 내 왼손에 빨간 장갑을 씌워주고는, 활짝 웃었다.
나는 아이의 눈을 쳐다보았다.
아이와 닮은 한 사람이 떠올랐다.
항상 내 손을 꼭 잡아주겠다고 말했던 사람.
나에게 선물을 주고 환하게 웃어주었던 그 사람.
그리고, 한 줄기 뜨거운 눈물이 얼어있던 내 뺨을 녹였다.
작가의 말
세대를 이어 전해지는 따뜻한 마음은 우리에게 희망과 위로를 선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