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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아 Nov 08. 2024

세상의 마지막 첫사랑 2

내 친구 나연이


 첫눈에 반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23년을 살면서 직접 경험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물론, 길을 걷다가 또는 지하철역에서 아니면 대학교 캠퍼스 안에서 젊고 잘생긴 남자들은 간혹 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 사람들에게 반하지는 않았다.

 '아, 잘 생겼다!'

 이걸로 끝이었다.

 

 TV에서 연예인을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키는 훤칠하고 얼굴은 주먹만 하고 이목구비 뚜렷한 천상계 미남들을 보아도 '잘 생겼네.' 또는 '멋있다.' 정도의 느낌만 들었고 그냥 그걸로 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딱 그런 생각만 들었다. 그들을 보면서 내 안의 어떤 감정의 동요도 일지 않았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었던 나는 취업을 위해 막 준비를 시작하던 학생이었다. 재수 끝에 수능에서 꽤 고득점을 얻게 되었는데 그 당시 딱히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하고 싶은 것도 없었기에  전적으로 부모님의 뜻에 따라 영문과에 진학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타인에 의해 - 비록 부모님은 가장 가까운 타인이기는 하지만 - 전공을 정하다 보니 정작 내 삶의 주체가 되어야 할 나 자신은 존재하지 않게 되어 스스로를 찾기 위해 대학 시절 내내 엄청난 혼란과 갈등을 겪게 된다.


 고등학생 때는 무작정 입시 공부만 하느라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어 하는 것, 즉 진로에 대한 고민과 탐구가 부족했던 것이다. 좋은 대학만 가면 꿈같은 인생이 펼쳐질 줄 알았다.


 

 그러나 막상 대학에 들어가자 나는 왜 살고 있는 것이며,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그런 고민들이 들었다. 그때부터 나의 방황이 시작되었다. 학창 시절에도 오지 않았던 사춘기가 대학 때 오게 된 것이다.



 공부 잘하는 문과 전공 여자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학과는 영문과. 아버지의 결론이었다. 그리고 어렸을 적부터 한 번도 속 썩인 적 없었던 착하고 모범생이던 딸. 지방에서 서울로 유학 보낸 그 딸은 아버지의 자부심이기도 했다. 내가 대학을 가던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지방광역시에서 서울로 딸을 유학 보내는 일은 그리 흔한 일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때 공부를 잘한다 하던 여학생들도 문과에서는 영어교육과나 국어교육과 등 대부분 지거국(지방거점국립대) 사범대로 진학했고 이과에서는 지거국 의대나 약대를 많이 가던 시절이었다.



 지방광역시에 작은 개인 병원을 운영하시던 아버지 덕분으로 부유하게 자란 나는 어릴 적부터 어머니의 뜨거운 교육열에 힘입어 어릴 적부터 원어민 영어회화 과외를 비롯해 피아노, 미술, 수영 등 꽤 다양한 사교육을 받을 수 있었으며 학교에서는 반장과 부반장도 두루 맡아 주목받는 삶을 살아왔다. 어디를 가던지 주류에 끼었으며 항상 대접받고 사는 삶에 익숙해져 있었다.


 집에는 일해 주시는 도우미 이모님이 계셨으며 공부 이외에는 딱히 내가 신경 쓸 게 없는 그런 편안한 생활이었다. 그저 부모님이 정해주시는 대로, 또 점수에 맞춰서 명문대 영문과를 갔으니 이제 내 할 일은 다했다고 생각했다.



 부모님 또한 나의 입시 결과에 매우 흡족해하셨으므로 앞으로 대학생활을 하는 동안 불편함 없이 생활할 수 있도록 학교 근처에 꽤 좋은 복층 오피스텔을 얻어 주셨고 용돈도 부족함이 없도록 '아빠 카드'까지 제공해 주셨다.



 그러나 공부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줄도 모르고 해 본 적도 없는 20대 초반의 백지상태의 어린 여자가 서울에서 혼자 살게 됐으니 얼마나 외롭고 방황했겠는가. 1학년 때부터 3학년 때까지 학교 수업도 빼먹으며 나를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시절을 함께 보낸 친한 친구가 있었으니... 바로 재수시절 인연을 맺게 되어 지금까지도 베스트 프렌드로 지내고 있는 친구 진나연이다. 나연이와는 재수 학원에서 만나 가까워지게 되었는데 그녀도 나처럼 지방에서 올라왔기 때문에 우리는 주말에 함께 독서실에서 시간을 보내며 밥도 같이 먹고 그렇게 친해지게 되었다.  



 나연이는 4명의 언니들 틈에서 컸기 때문에 또래보다 아는 것이 많았고 성숙한 학생이었다. 그 친구와 있으면 편의점에서 작은 물건 고르는 것까지도 배울 점이 있을 정도로 나에게 많은 영감을 주는 친구였다. 나와 함께 재수 종합반을 졸업하며 우린 함께 인근 대학교로 진학하게 되었다.  나연이도 내가 가기로 한 학교 바로 근처의 대학에 합격하게 되어서 그때부터 우리는 마치 친자매처럼 더더욱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



  부모님이 얻어주신 복층 오피스텔보다 그 친구의 자취방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나의 대학 시절은 나연이 없이는 얘기할 수 없을 정도로 그녀는 내 삶에 여러 영향을 미친 중요한 사람이었다. 나와 달리 뚜렷하게 하고 싶은 일이 있었던 나연이는 오로지 본인의 의지로 대학과 전공을 선택했다. 그녀는 좋은 작가가 되고 싶어 했고 항상 엄청난 양의 독서를 했다.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책을 독파하는 친구를 보면서 나도 나 자신을 찾기 위해 나연이와 함께 도서관에서 지내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게 되었다.


 그때 접했던 책들 중 문학의 세계에 빠지게 되었고 특히, 여류작가들의 시선, 문체 그리고 섬세함에 반하게 된다. 특히 영어 전공이었던 나는 영미 문학에 매료되었는데 제인 오스틴, 브론테 자매들의 작품들은 마치 교과서를 읽듯이 수십 번 반복해서 읽어 구문을 외울 정도로 읽고 또 읽었다. 남성 작가들과의 미묘한 차이가 느껴지는 여류작가들의 섬세한 문체가 내 마음을 후벼 팠다.


 한국 작가들 중에서는 지금은 고인이 되신 서강대 영문과 교수 장영희 작가와 박완서 작가를 좋아했다. 남녀를 구분 짓은 것은 아니지만 여성 특유의 부드러움과 사람을 보는 따뜻한 시선이 좋았다.

 


 나연이는 자취방에서 음식도 잘해 먹었다. 결혼을 일찍 한 언니들의 영향으로 요리도 수준급이었으며 고등학교 시절부터 자취를 해서 그런지 청소도 깔끔하게 잘해서 그녀의 방은 크진 않았지만 늘 단정하고 깨끗했다. 부모님 곁을 떠나 처음으로 자취를 시작한 나와는 천지차이였다.



 그렇게 나의 대학 생활은 나연이에게 의지해서 3년을 그럭저럭 보내게 되었는데 어느 날 나연이에게 남자친구가 생겨버렸다. 그건 나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절망적인 소식이었다. 나연이는 남자친구와 제일 친밀한 사이가 되어서 이제 나와 만나는 횟수가 현저하게 줄게 되었고 나는 외로워지기 시작했다.

 


 "은수야. 너도 남자친구 사귀어 봐. 동성 친구랑은 정말 달라."

 어느 날, 남자친구와의 약속이 펑크가 났다며 연락이 온 나연이와 잠깐 만났다. 난 그때 요즘 너랑 연락이 잘 안 된다며 그녀에게 살짝 서운함을 비쳤는데 저런 대답이 돌아왔다.

 "마음에 드는 남자가 있어야 사귀지. 아무나 사귀냐?"

 난 퉁명스럽게 내뱉듯 대답했다.

 "에이, 은수 너 너무 까다롭게 그러지 말고 마음을 좀 열어봐. 적당히 맞추면서 만나는 거지, 뭐. 연애도 해봐야 진정한 20대인 거 아니겠어?"

 나연이는 현실적인 조언을 계속해서 해줬다. 그렇지만 많은 문학 작품 속에서의 운명적인 사랑을 믿었던 나는 확고했다.

 "아니, 나연아. 난 반드시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과 사귈 거야. 그게 진정한 사랑이지."

 사랑을 글로 배운 가장 나다운 대답이었다.



  그때까지 가볍게 미팅이며 소개팅은 몇 번 해봤는데 애프터 신청은 받았지만 마음에 드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두 어번 더 만나다 모두 흐지부지 되었다. 학교 도서관에서 만나보고 싶다는 쪽지를 받는다던가 남자사람 친구에게서 사귀어 보고 싶다는 제안도 받아봤지만 모두 거절했다. 사귈 만큼 이성으로서의 호감이 전혀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연이와 항상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냈었기 때문에 굳이 남자친구를 사귈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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