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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설아 Aug 27. 2024

안전의 역설

아이의 첫걸음과 가드의 함정

아이가 처음으로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그 무엇보다 아이의 안전을 생각했다. 집안의 모든 구석을 점검하고, 날카로운 모서리를 부드럽게 감싸는 보호대를 설치했다. 계단과 문에는 튼튼한 안전가드를 설치했고, 아이가 다칠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나는 안심했다. 이제 이 집은 완벽하게 안전하다고, 아이가 자유롭게 탐험하며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러나 어느 날, 그 안심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아이가 점점 걷는 데 익숙해지면서, 집안 구석구석을 탐험하기 시작했다. 호기심 많고 활기 넘치는 그 작은 발걸음들은 하루가 다르게 더 빨라지고, 더 대담해졌다. 그날도 아이는 평소처럼 집안을 활보하고 있었다. 나는 거실에서 아이를 지켜보며, 그저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눈앞에서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아이가 안전가드 근처로 다가가더니, 갑자기 그 작은 다리로 안전가드를 넘으려는 시도를 한 것이다. 나는 순간적으로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안 돼!" 하는 외마디 비명이 내 입에서 튀어나왔지만, 너무 늦었다. 아이는 안전가드에 걸려 앞으로 고꾸라졌고, 머리가 바닥에 부딪혔다.


“쿵!” 그 소리는 나의 심장을 철렁 이게 했다. 아이는 바닥에 부딪힌 충격에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머리가 하얘진 채로 아이를 안아 올렸다. 그의 작은 머리에 이미 커다란 혹이 생기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안전하게 보호하려고 설치했던 그 가드가 오히려 아이에게 위험을 초래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죄책감에 휩싸여 서둘러 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에 도착해서도 내 손은 떨리고 있었다. 아이를 부드럽게 안은 채, 의사의 진찰을 기다리며 머릿속에서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의사는 아이를 살펴보고 큰 부상은 아니라고 했지만, 나는 여전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어떻게 내가 이렇게 중요한 것을 놓쳤을까? 안전을 위해 마련한 장치들이 오히려 아이를 다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집으로 돌아온 후, 나는 그날의 장면을 잊을 수가 없었다. 아이의 울음소리, 바닥에 부딪히던 그 둔탁한 소리, 그리고 그 작은 머리에 생긴 혹까지. 그 모든 것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내가 그토록 신경 써서 준비한 안전장치들이 오히려 아이에게 위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그날 이후, 나는 집안의 모든 안전장치를 다시 점검했다. 안전가드는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지만, 아이의 성장에 따라 그 위험성도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의 성장은 빠르고, 그에 따라 안전의 기준도 계속해서 변해야 한다는 사실을 몸소 깨닫게 되었다. 아이가 한 발 한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그 발걸음을 보호하는 일은 한순간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임을 절실히 느꼈다.


이 경험은 나에게 부모로서의 큰 교훈을 남겼다. 안전장치 하나를 설치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성장을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그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아이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일은 단순히 장치를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이고 점검하는 긴 여정임을 다시금 깨닫게 된 것이다.


아이의 첫걸음은 내게 기쁨과 동시에 커다란 책임을 안겨주었다. 그 책임의 무게를 다시금 느끼며, 나는 오늘도 아이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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