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의 겨울밤은 매섭게 춥고 어두웠다. 1977년 1월 3일 오후 11시 30분, 미나토구의 작은 식당에서 여섯 명의 종업원들이 퇴근길에 올랐다. 추위를 피해 그들은 발걸음을 재촉했고, 시나가와역 근처의 불빛 아래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어? 저기 봐봐."
스물셋의 마사키(가명)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공중전화 부스 옆에 놓인 코카콜라 한 병. 아직 개봉되지 않은 채 반짝이는 유리병이 그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
"누가 놓고 갔나 보네."
가장 연장자인 타나카(가명)가 말했다.
"이 시간에 전화하다가 깜빡한 걸까?"
또 다른 직원이 중얼거렸다.
그들은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밤중의 거리는 텅 비어 있었고, 찬바람만이 휘몰아쳤다.
"야, 이거 막내 줄까? 오늘 진짜 열심히 일했잖아."
열여섯 살의 켄지(가명)는 수줍게 웃었다. 그의 첫 아르바이트였다.
식당 일은 힘들었지만, 선배들이 늘 챙겨주었다.
"정말... 받아도 될까요?"
"당연하지! 우리 막내가 오늘 접시 한 개도 안 깼잖아."
웃음소리가 밤거리에 퍼졌다.
그들은 그것이 마지막 웃음이 될 줄 몰랐다.
새벽 1시, 숙소에서 켄지(가명)는 마침내 콜라를 열었다.
하루 종일 일하느라 목이 말랐다. 첫 모금을 들이키는 순간,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상해... 뭔가..."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었다.
병원으로 실려가는 구급차 안에서 켄지(가명)의 심장은 멈췄다.
청산가리.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넣은 독이 그의 어린 생명을 앗아갔다.
그리고 공포는 시작되었다.
같은 날 아침 8시 15분, 첫 사건 현장에서 600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고속도로에서 또 다른 비극이 발견됐다. 46세의 야마모토가(가명) 입에 거품을 문 채 쓰러져 있었다.
그의 손에는 텅 빈 콜라병이 들려있었다.
같은 수법, 같은 독, 다른 피해자.
경찰이 현장을 수색하는 동안, 근처 상점의 15살 소년이 또 다른 콜라를 발견했다.
그는 운 좋게도 그것을 마시지 않았다. 나중의 조사 결과, 그 병에는 치사량의 60배에 달하는 청산가리가 들어있었다.
6주 후, 오사카에서 세 번째 피해자가 발생했다.
39세의 회사원 타케우치(가명)는 출근길에 공중전화 부스에서 발견한 콜라를 마셨다.
그는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지만, 살아남은 것이 더 큰 고통이 되었다.
"버려진 콜라를 마시지 말라고... 내가 그렇게 말했는데..."
퇴원 다음날, 그는 자택에서 가스를 틀어놓은 채 발견되었다. 유서는 없었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말은 깊은 자책감을 담고 있었다.
"도쿄 사건을 알면서도... 이런 실수를... 가족들에게 면목이 없습니다."
2월이 되자 범인은 수법을 바꿨다. 도쿄역에서는 청산가리가 든 초콜릿이 발견되었다.
상자에는 섬뜩한 메시지가 찍혀있었다.
"교만하고 꼴보기 싫은 일본인들에게 천벌을 내린다."
연쇄 독살 사건은 일본 전역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길거리의 음료수를 집어들지 않았다. 자판기 앞에서도 두 번 세 번 생각했다.
하지만 범인은 끝내 잡히지 않았다.
1992년, 공소시효가 만료되면서 이 사건은 영원한 미스터리가 되었다. 그러나 그 여파는 컸다.
음료수 병의 형태가 바뀌었고, 사람들의 일상적인 신뢰도 바뀌었다.
시나가와역의 그 공중전화 부스는 이제 없다. 하지만 그 날의 이야기는 여전히 살아있다.
한밤중에 발견된 무심한 콜라 한 병이, 어떻게 수많은 생명과 일본 사회의 결백을 앗아갔는지 증언하듯이.
가끔 도쿄의 밤거리를 걷다 보면, 사람들은 아직도 버려진 음료수를 보면 발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생각한다. 때로는 가장 무해해 보이는 것이, 가장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의 일상적 신뢰가 얼마나 쉽게 깨질 수 있는지를.
켄지(가명)의 어머니는 아들의 제사상에 아직도 콜라를 올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녀에게 콜라병은 여전히 아들을 앗아간 죽음의 유혹이다.
그리고 그 유혹의 배후에 숨은 정체불명의 살인자는, 47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림자 속에 숨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