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플래너앤라이터 Aug 22. 2024

과거까지 안을 수 있어야 사랑이다



수요일은 재활용 분리수거 날이다. 평소 보다 맥주캔이 유난히 많다. 내가 마신 기억은 없다. 분명 아내가 마신 건데 마시는 걸 본 적이 없다. 내가 잠든 후에 마셨다는 얘긴데 아내가 걱정됐다. 혼자 마시기에 버거운 양이다. 아내에게 걱정거리가 생긴 게 분명하다. 힘든 자신을 몰라보고 눈치 없이 잠든 내가 얼마나 야속했을까!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아내가 마신 맥주캔을 보니 새벽 독서 중 메모한 내용이 오버랩 된다. 레프 톨스토이 <부활>에 나오는 내용인데, 부유한 공작이 미시라는 여자와의 결혼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미시와 결혼하기를 꺼리는 이유는 첫째, 미시보다 훨씬 더 많은 자질을 갖춘, 따라서 자신에게 더 잘 어울리는 여자를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고, 둘째, 그녀의 나이가 벌써 스물일곱 살이니 분명 몇 번의 연애 경험이 있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바로 이 생각이 그를 괴롭혔다. 비록 과거의 일이라 해도 그녀가 자기 외의 남자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물론 미래에 그를 만나게 될 줄 몰랐겠지만, 그는 그녀가 전에 누군가를 사랑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모욕감을 느꼈다.


무엇이 맥주캔과 연결된다는 말인가? 소설 속 공작은 상대에 대한 사랑이 없다. 자신의 관점에서 이해타산을 따진다. 사랑은 나의 관점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상대의 입장이 될 수 있을 때 사랑이 생긴다. 나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이타심이 필요하다. 아내의 입장이 될 수 없었다면 맥주캔은 단지 쓰레기일 뿐이다. 아내를 늘 마음에 품고 있기에 맥주캔은 걱정거리로 떠오른 것이다. 사랑은 상대의 모든 것을 품을 때 시작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진짜 무서운 사람은 따로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