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 보다는 분홍
파랑 보다는 하늘
초록 보다는 연두
나는 색깔도 중간색이 좋고
단맛 짠맛 매운맛보다 중간 맛이 좋은데
딱히 무어라 이름 붙일 수 없는
그런 것들에 더 맘이 가는데
세상은 자꾸만
양(兩)쪽 극단에 서라 한다.
유명한 작가의 책이나
번호표 뽑아 줄을 서는 음식점,
세상은 내게 자꾸 분명한 쪽으로 줄을 서라 한다.
수수하고 조금 흐릿하고 약간 애매한 것들
나는 그런 희끄무레한 게 더 좋은데
중간쯤만 가도 괜찮은데
나는 중간이 딱 좋은데
내가 먼저 성을 내면
퍽!
빗물이 튀어 올라
바짓가랑이 다 버린다.
내가 먼저 조심하면
사알짝!
빗물도 미안해하며
신발 끝 조금 적시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