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용뿐인 말들
우수가 지나니 해가 길어진 게 느껴진다. 아침 이슬은 더욱 빨리 맺히고, 밤은 점점 빨리 밝아온다.
오늘은 분명 좋은 날이었을 텐데, 서로 눈이 따가울 정도로 울어서 솔직하게 말하자면 여러모로 결코 즐겁지만 않았던 날이다. 그래도 울기에는 좋은 날이었을까? 당신이 준 연분홍색 장미꽃,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오렌지빛 노을, 그런 것들로 세상이 이루어져 있었다면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우느라 하루종일 경황이 없을 테다. 내가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은 수도 없이 많겠지만, 그래서 더욱 무엇이 더 중요한 건지 알 수 없게 돼 버리고, 정작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은 못 하게 되어버렸다.
어쨌든, 당신이 남은 생일을 잘 즐겼길 바라며 밤편지를 쓴다.
당신이 준 분홍색 장미 꽃다발과 꽃병. 꽃다발의 리본을 조심스레 풀어 꽃병에 옮기니 어쩜 그리 예쁠 수가 없었다. 그 꽃병에 닿아보았다. 그 진동은 확실히 느껴졌다. 내 눈에는 여전히 남은 사랑이 흘러내렸고, 당신은 말버릇처럼 '내일은 중요한 날이니까 일찍 잠에 들 거야.'라고 말했다.
"충분하지 않은 거야, 사랑이."
이것도 운명이라면 운명인 걸까? 당신의 생일 때 나는 우리가 몇 퍼센트의 확률로 이 나라에서 태어나 만나게 된 것 등등.
당신이 좋아하는 과일이 두리안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당신은 봄에는 딸기, 여름에는 복숭아, 가을에는 배, 겨울에는 또, 다시 딸기를 좋아했다. 이것도 신기록이라면 신기록일까? 그날 밤, 나는 집에 남아있던 제철 딸기를 전부 먹어치웠다.
"해가 뜨면 사랑이 끝난다."
지금 내 심정이 그렇다.
나는 한 달만 더 일찍 태어났어야 됐다. 아니, 당신은 한 달만 더 늦게 태어났어야 됐다. 너무 불공평하다. 당신의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듣지 못하는 봄은 너무나도 고요하고 가증스러웠다.
당신의 손에는 항상 많은 풍선들이 들려 있었다. 내 손에는 너 하나 뿐인데.
끊임없는 자기혐오와 자기연민, 그런 것들로 사유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저녁이나 밤에는 애써 당신의 웃는 모습을 보지 않았다. 새벽에는 당신이 보냈을 편지(안 보냈을 수도 있겠지만)를 보지 않기로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보기로 했지만, 그것조차도 극히 나중에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