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이를 보러 가요
마지막 낙엽도 떨어져 가는 쓸쓸한 날에 문득 어린 시절 생각이 났다.
할머니댁은 전남 고흥에 있는 장담리라는 마을이었는데, 작은 저수지와 논밭 빼고는 정말 아무것도 없는 곳이었다. 나는 동생과 함께 방아깨비나 올챙이 따위를 잡으러 하루종일 논두렁을 따라 뛰어다녔다. 저녁이 되면 집집마다 저녁밥을 짓는 연기가 올라오고, 골목길을 따라 올라서면 불이 켜져 있는 주방에서 나는 고소한 국냄새가 온 동네에 퍼져가는 것만 같았다.
할머니는 밭일을 끝내고 오시면서, 집에 불이 켜져 있는 걸 보고, 멀리서부터 웃으시며 집으로 돌아오셨다.
시끌벅적하게 저녁을 먹고 나면, 우리는 다 같이 저수지를 따라 산책을 나갔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곳에서 은하수를 봤다. 밤이면 가로등도 없는 시골은 말 그대로 까마득하게 어두웠는데, 별이 하늘에서 쏟아지는 것만 같은 착각이 일었다. 별이 정말로 강물 흐르듯 이어지는 풍경에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하늘을 바라봤다. 달빛에 의존해서 길을 걷다가 논에서 빛이 날아다니고 있는 걸 보고 놀랐는데, 우리는 꼭 동화 속에 들어와 요정을 만난 것만 같았다. 아빠는 반딧불이를 잡아 내 손에 조심스럽게 넘겨주었는데 , 스스로 빛을 내는 곤충이 너무 신기해서 한참을 바라봤다.
할머니는 쌀이며 나물이며 모든 것을 밭에서 키워서 드셨다. 우리는 가을이 오면 할머니댁에 가서 고구마, 감자, 고추, 쌀 등등을 수확했다. 수확한 곡물을 경운기에 가득 채우면 할아버지는 우리를 뒤에 태우고선 마을 한 바퀴를 돌아 집으로 갔다. 호박, 유자, 감을 따는 건 대부분 우리의 몫이었는데 할머니는 일부러 수확시기가 지났어도 우리를 위해 남겨두셨다. 나와 동생은 마른 대나무가지를 들고 터져가는 홍시를 따고다녔다.
가을은 아름답고, 바쁘고, 북적북적한 시간이었다.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 장담리는 조용해졌다. 아직도 벼가 익어가는 때가 오면 황금빛으로 물들지만, 더 이상 저녁밥 짓는 냄새는 나지 않는다. 아빠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이후 대문 앞에서 절을 하고 뒤돌아보지 않고 나오셨다. 설날이든 추석이든 묘지는 가도 절대 집을 보러 가지는 않으신다. 나는 거의 십 년 넘게 멀리서만 바라보다 올해 오랜만에 다시 할머니댁에 들어가 보았다. 무너진 지붕, 반으로 쪼개진 절구를 보니 아빠가 왜 오지 않으시려고 하는지 알 것만 같았다. 크게만 느껴졌던 집은 누가 살았던 것 같지도 않게 망가져있었다. 나는 집안을 둘러보다가 '고마웠어, 안녕' 하고 씁쓸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그 이후로 반딧불이를 보지 못했다. 쏟아질 것 같던 그 은하수도 볼 수 없었다. 가을이 끝나갈 때쯤이면 항상 그 시절이 생각난다. 단조롭고 평화로웠던 시간들. 바람이 불어서 낙엽이 부서질 때면 저 멀리서 추억이 반짝이며 날아가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