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태어나면 시기마다 달성해야하는 퀘스트 같은 것들이 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 입시라는 막중한 임무를 성취하고 나면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취업이라는 거대한 관문을 맞닥뜨린다.(남자라면 취업 이전 군대도 있다.)
이후 결혼, 출산, 임신, 출산, 육아, 노후대비까지.
이번 사태로 지난 인생을 돌아보니 나의 퀘스트는 대부분 내 통제 하에 이루어졌다.
내가 원하는 자유로운 분위기를 좇아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는 대안 고등학교에 합격하였고,
내가 되고 싶은 직업을 갖기 위한 대학교와 학과에 초수 합격하였다. 이후 직업자격을 얻는 고시에서도 초수 합격, 경쟁률 20대1이 넘어가는 의무경찰 추첨에서도 한번에 합격하였다.
이는 내가 잘난 척을 하고 싶다거나 난 행운의 사나이라며 우쭐대고 싶은 것이 아니다. 인간은 살아가며 각종 시련과 역경을 겪기 마련인데 이러한 나의 삶은 온실 속의 화초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갓난아기들은 걷다가 계속 넘어져 무릎이 까지기도 하고 벽에 부딪히기도 한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 그렇게 걸음마를 배운다. 넘어짐이 없으면 발전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난 넘어져본 적이 없었다. 이번 사태로 맛본 좌절감과 절망감은 극도의 불안과 막막함을 경험하게 했지만 어쩌면 돈으로는 살수 없는 배움도 가져다주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이 배움에 대한 것은 다음에 꼭 다룰 것이다.) 여러 번의 실패라는 마취가 있었다면 지금의 아픔이 덜하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온실임을 깨닫게 해준 것에 매우 감사해야겠다.
여하튼 아래를 보지 못하고 위로만을 바라보며 끊임없이 오르려는 과정에서 주변과 나 자신을 온전히 바라볼 여유는 없었다. 아니 나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주변에 신경을 꺼도 괜찮다는 명분을 합리화하며 나의 생각에 당위성을 부여했다. 부모님과의 연락을 소홀히 했고 다른 사람을 만날 때에도 계산적으로 머리를 굴린 적이 없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 자신을 끊임없이 채찍질하며 내 자신에게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다고 한마디해준 적이 없었다. 주변에서 좀 쉬어가도 괜찮다 이야기해도 열정이라고 포장된 욕심을 계속해서 들끓었던 것 같다. 물론 나의 시간과 노력을 깎아내리려는 마음은 추호도 없다. 항상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하고 허투로 시간을 보내는 나 자신에게 가장 현타가 오는 사람이니 말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러한 나의 과거는 내 통제력을 과신하게 했고
오기와 자만으로 똘똘 뭉친 근거 없는 자신감을 만들었으며,
통제력의 객관화를 불가능하게 하여 '통제력 착각의 오류'를 범하게 했다.
'통제력 착각'이라는 말은 심리학에서 등장하는 용어이다. 객관적인 외부의 환경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경향을 뜻하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도박이다. 잭팟을 터뜨리는 슬롯머신은 순전히 우연의 결과인데 내가 레버를 잘 당겨서, 버튼을 세게 눌러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믿어버리는 것이다.
주식은 도박인가?
합법의 가면을 쓴 슬롯머신인가?
종목의 매수 버튼과 슬롯머신의 레버는 무슨 차이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