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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랍비 Aug 26. 2024

어쩌다 특수

진짜 어쩌다 특수교사가 되었다.

내 삶은 ‘특수교사’라는 직업을 가지기 전까지, ‘특수’하단 것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다.

평범한 초, 중, 고등학교를 졸업하여 대학교에 입학하고 여타 다른 학생과 마찬가지로 특이하다 못할 대학 생활을 했다.

물론 지원했던 대학에 다 떨어지는 바람에 재수로 지방 대학에 들어갔던 건 평범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나에겐 이마저도 평범하다는 범주 안에 넣을 만큼 아주 사소한 일이었다.

조금 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특수교사가 된 계기마저도 매우 특수해서 그 이전의 삶이 모조리 거부당한 느낌이다. 


아마 2014년 언저리였던 것 같다.

나는 특수교육학과를 졸업하며 절대 전공을 살린 직업을 택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대학 시절, 의무로 특수학교 봉사활동을 갈 때마다 나 홀로 떨어진 이방인처럼 느껴졌고 두려움과 거부감에 몸서리쳤다.

이를 비교하자면 이름조차 생소하고 아무도 모르는 나라에 홀로 떨어진 느낌이었다.

게다가 교생 실습은 또 얼마나 힘든지, 실습을 다니며 가족에게 특수교사는 절대 못 할 것 같다고 수십 번은 말했다.

이에 다른 직종을 알아보며 전전긍긍하던 나에게 친구이자 선배인 T가 전화했다.

내가 재수한 탓에 동갑이자 선배인 T는 오랜만에 웃으며 화두를 열었다.


[잘 지내? 요즘 뭐하고 지내?]

“아, T구나. 나야 잘 지내지. 너는 어때?”

[나도 잘 지내지. 난 임용 고시 준비하면서 기간제 교사 알아보고 있었어.]

“그렇구나. 나는 중국으로 한 번 가볼까 했었어. ‘W 교수님’께 추천서도 받아왔거든. 준비하는데 6개월 정도 걸리지 않을까 싶어.”

[아, 그래? 그럼 나 한 번만 도와주면 안 될까?]

“왜? 무슨 일인데?”

[사실 ‘J 교수님’이 알아봐 주신 특수교육지원센터 기간제 교사 자리가 있어. 내가 거기 면접을 봐서 일하게 되었는데, 거기보다 더 가까운 일자리가 있어서 가까운에 덜컥 가기로 해버렸거든. 그래서 ‘J 교수님’께 죄송하게도 소개해주신 자리가 갑자기 공석이 되어서 말이야…]

“난 특수교사 할 마음이 없어. 알잖아.”

[그럼 그냥 서류만 제출해 주면 안 될까? 내가 가기로 했는데, 내가 다른 곳에 간다고 해서 J 교수님 입장이 난처하게 된 거 같아.]

“그래. 알겠어. 서류만 내는 것 정도면 괜찮아.”

[아, 그래? 그럼 내가 교수님께 전화해 볼게.] 


요약하자면 T는 J 교수님의 소개로 특수교육지원센터에서 면접을 보았다.

물론 다른 교사들도 지원하였지만, 그중 T가 가장 우세하여 그를 뽑기로 결정한 것이다.

하지만 특수교육지원센터에서 이를 선정하고 공지하는 사이에 T가 덜컥 다른 곳에 면접을 보고 합격하여 기간제 교사로 일하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특수교육지원센터는 다른 지원자들에게 부랴부랴 연락해보았으나 이미 다른 교사들도 다른 직장을 잡은 터였다.

그 후 모집 공고를 내어봤지만, 아무래도 지방의 특수교육지원센터이다 보니 인력이 잘 구해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평소 친분이 있던 특수교육지원센터의 담당자가 J 교수님에게 T의 행보에 대한 하소연을 한 것이다.

 이를 듣게 된 J 교수님은 T에게 전화하여 쓴소리하였고 당황한 T는 나에게 전화한 것이다. 그렇게 전화를 끊자 곧장 J 교수님께 전화가 왔다.


[어, 잘 지내나? 내 소식은 잘 들었데이.]

“아, 예. 교수님 잘 지내셨죠?”

[그래. 그 W 교수에게도 들었다. 뭐 다른 거 준비한다켔나?]

“네. 그래서 사실 기간제 교사 서류 제출은 조금 부담이 되긴 하는데….


[아이, 아이다. 뭐가 부담되나. 그냥 서류만 낸다캤는데. 응? 서류만 내고 와도. T가 갑자기 빵꾸를 내가 그짝한테 좀 미안해서 글타. 지금 공고를 냈는데 지원자가 한 명도 없다카네? 그냥 서류만 내주고 온나. 으이? 알겠제?]

“네. 알겠습니다.”

[그래. 고맙데이. 내 다음에 맛있는 거 함 사주께.]


나는 J 교수님의 처절한 부탁에 하는 수 없이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교수님이 보내준 제출 서류를 작성하여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내고자 하는데, 이미 기간이 지난 공고인지라 따로 이메일이나 주소가 없었다.

그렇기에 멋도 모르던 나는 담당자에게 전화했다.


“저, J 교수님 소개로 서류 제출하려는데 어디로 제출하면 되나요?”

[아, 기간제 교사 말씀이시죠? 이미 서류 제출 기간이 지나서 직접 오셔야 합니다.]


사실 귀찮기도 하고 T의 실수를 내가 뒤집어쓴 느낌이 들어 꺼려지긴 했다.

게다가 해당 특수교육지원센터는 당시 살던 곳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2시간 정도 가야 했다.

그렇기에 고민을 조금 했으나, J 교수님과 T와의 약속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곳으로 향하게 되었다. 




아직도 그때의 그 공기와 분위기가 기억에 남아있다.

3월이 시작하기 바로 전 주, 유독 꽃샘추위의 매서운 바람과 스산한 하늘이 아침을 밝혔다.

오랜만에 일찍 일어나 지방으로 향하던 나는 코트를 입고 나갔다 되돌아와 롱패딩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그렇게 시외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여 약 20분을 기다리고 2시간쯤에 걸친 긴 여정 끝에 해당 특수교육지원센터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막상 그 지역에 도착하니 언제 그랬냐는 듯, 제법 포근해지고 하늘도 맑고 청량했다.

그곳은 교육지원청 산하에 있는 특수교육지원센터이기에 제법 규모가 컸다. 그렇기에 나는 쭈뼛거리며 교육청으로 들어가 서류를 제출했다.


“안녕하세요. 저, 서류를 제출하러 왔습니다.”


그러자 담당 장학사님이 나를 처음 보고 활짝 핀 봄꽃같이 웃었다.

그때는 왜인지 몰랐으나 조금 지나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아,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아이고, 서류 감사합니다. 우선 우리 특수교육지원센터 좀 보고 있으세요.”

“네? 아니, 저… 괜찮습니다.”

“우선 한 번 둘러보세요. 가서 커피 한 잔 드시고 이야기합시다. 어, 그런데 서류가 더 필요한데?”


담당 장학사님은 나를 교육지원청 뒤에 있던 특수교육지원센터 건물로 들이더니 급하게 커피를 내리셨다.

그러고는 서류를 확인하고 ‘주민등록등본’‘성범죄 경력조회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당시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J 교수님이 보내주신 서류를 내가 잘 못 봤나 싶었다.

혹은 J 교수님이 정신이 없으셨나 정도로 치부했다.

하지만 장학사님이 팀장 교사와 함께 주민센터에 가서 주민등록등본을 떼어 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무언가 수상함을 감지했다.


장학사님의 말을 들은 팀장 교사는 곧장 출장을 달고 나를 차에 태워 인근 주민센터로 향했다.

그는 나에게 이것저것을 물었고 나는 곧장 대답했다.

이어서 내가 제출 서류에 주민등록등본과 성범죄경력조회서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하자, 팀장은 곧 말을 얼버무렸다.

그렇게 10시경에 특수교육지원센터에 도착한 나는 일련의 사건을 거친 뒤, 12시쯤 등본을 가지고 다시 특수교육지원센터로 복귀했다. 그러자 장학사님은 나를 보며 식사하고 가라며 등을 떠밀었다.


“아이고, 시장하죠? 여기 옆에 해장국집 있는데 식사하고 가요.”

“예? 아니, 괜찮습니다. 그냥…”

“아이고 안 되죠. 경찰서 가서 성범죄경력조회서도 가져와야 하는데.”

“예?”


아마 그때부터 불안감이 증폭되었던 것 같다.

그날따라 맑아진 하늘이 왜 그리 높은지 수심 깊은 바다처럼 공포감을 조성했고, 포근함 때문인지 긴장감 때문인지 등골에 땀이 흘렀다.


아무리 그래도 공공기관인데, 이상한 걸 시키겠어? 그래도 경찰서에 가는 건 좀 그렇지 않나? 아니야, 경찰서라는 단어가 주는 불안감 때문에 그럴지도 몰라. 오늘은 여정이 너무 길었잖아. 피곤이 쌓여서 그런 거니 좀만 참자.


이런 오만가지 잡념 때문에 아직까지도 그때의 내가 뼈다귀해장국을 먹었는지 선지해장국을 먹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경찰서까지 다녀온 나는 특수교육지원센터의 접객용 소파에 앉아 바삐 움직이던 교사들을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아침 일찍 지방으로의 여정이 피곤한 까닭이요.

뜨끈한 해장국을 먹은 탓에 나른한 감이 들었다.

그때 장학사님이 서류를 가지고 오며 말했다.


“아이고, 선생님 오래 기다렸죠. 자, 여기 사인하시면 됩니다.”

“예?”

“우선 여기 먼저.”


장학사님은 나의 질문을 유연하게 회피하며 서류를 냅다 들이밀었다. 나는 당황하여 멋도 모르고 사인을 했다. 그리고 장학사님이 서류를 넘겨 반을 접더니 다시 사인을 시켰다. 그렇게 모든 곳에 사인을 했을 때, 나는 이게 큰일임을 직감했다.


“자, 감사합니다. 선생님, 이제 3월 2일 자로 출근하시면 됩니다. 하하하.”

“예? 출근이요?”

“네. 저희가 주로 ‘순회 교육을 하다 보니 차가 있어야 하는데, 차는 있으시죠?”

*순회 교육: 건강상의 문제나 심한 장애로 인해, 집이나 시설에 교사를 파견하여 교육하는 방법.


사인하던 그 문서는 갓 사회생활에 입문한 청년이 쓴 첫 기간제 교사 계약서였다.

나는 그 사실을 깨닫고는 사고가 마비되었다.


‘뭐야 이거? 거짓말이지? 지금 기간제 교사 계약을 한 건가? 이거 혹시 몰래카메라? 나 사기당한 건가? 혹시 이건 새우잡이 배의 노예 계약 같은 건가? 아니, 그런데 J 교수님과 T가 알려준 특수교육지원센터잖아. 게다가 이렇게 큰 건물을 가지고 고작 일반인인 나 하나 속이는 데 쓴다고? 뭐야. 장난이지? 야, T! 지금 숨어 있으면 나와라.’


하지만 주위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내가 아는 얼굴은 한 명도 없었다.

나는 당혹스러움에 몰래카메라 혹은 사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교육지원청 직원만 하여도 100명 가까이 되어 보였는데,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청년 하나 속이자고 이 많은 인원을 쓸까.

게다가 건물의 오래된 간판에는 ‘00 교육지원청’이라고 크게 적혀있었다.

그 세월과 깊이가 느껴지는 오래된 글씨체였다.


“저……. 차는커녕 여기 지낼 곳도 없는데요?”


창백하게 질린 나는 파리하게 물었다.

그러자 장학사님은 이제껏 그래왔던 것처럼 활짝 핀 봄꽃처럼 세상 밝게 웃으시며 말했다.


“아, 그래. 집! 집은 여기 관사가 있는데. 어디 선생님이 관사를 쓸 수 있나…”


그렇게 장학사님은 나를 데리고 교육지원청을 들쑤시고 다녔고, 곧 관사에 들어가 소개를 받았다.

그렇게 2월 26일, 근무 시작까지 이틀을 남기고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타지에서 특수교사라는 직업을 급작스럽게 갖게 되었다.


이후 ‘우리 특수’라고 불리며 온갖 일을 겪게 되었지만, 나는 그때의 그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

물론 나쁘게 말하자면 T와 J 교수님에게 속았다고 할 수 있으나, 나는 그들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때 일을 두고 친구들과 말하길, ‘그땐 그랬지’라고 말하며 웃긴 해프닝으로 넘기고 있다.


이게 나쁘지 않다.


오히려 그 일로 특수교사라는 직업을 겪으니 특수교사가 할 만하단 걸 깨달았다.

그리고 아이들과 같이 생활하는 것이 즐겁다는 걸 느꼈다.


내가 뭘 해야 할지 모를 때, 막연한 두려움으로 피하기만 했을 때, 어쩌다 우연히 막상 부딪혀보니 꽤 할만하다. 매우 괜찮다.



어쩌다 특수한 경우로 특수교사가 되었지만, 어쩌다 보니 특수가 즐겁다.


<여긴 어디... 난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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