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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랍비 Aug 26. 2024

그놈의 '특수'

특수라고 불리게 된 나

특수교육학에서 어떠한 행동이나 지식을 완전히 습득한 것을 ‘일반화(generalization)’라고 부른다.


이는 습득과 숙달, 유지의 단계를 거쳐 일반화가 되는데, 모든 자극이나 환경과 시간에 걸쳐 일반화가 된다면 이를 ‘유지’라고도 부른다.

이 완전한 상태가 되면 저도 모르게 몸이 먼저 반응하기 마련이다.

마치 3 더하기 4를 계산해 보지 않아도 바로 7이라고 내뱉고 보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이와 관련하여 특수교사는 대부분 특수’라는 말에 일반화되어 있다.

특수교사가 속한 환경에서는 ‘특수’라는 말이 다수의 불특정으로 긴밀히 지속해서 나오기 때문에, 그 '특수'라는 단어가 튀어나오면 모름지기 특수교사 열 중 열은 모두 다 그 말에 집중한다.

‘특수교육대상자’, ‘특수교육’, ‘특수학급’ 등등으로 시작하여 결국 모든 학교의 ‘특수교사’는 ‘특수’로 불린다.

대개의 초등학교에서는 다음과 같이 '특수'라는 단어를 여러 뜻으로 혼용한다.


"그쪽 학교 '특수'는 어때?"

"우리 학교 '특수'쌤?"

"아니, 거기 '특수' 아이들 말이야."


이렇기에 나 또한 ‘특수’의 ‘특’이란 글자만 나와도 몸서리쳤던 적이 있다.

아마 ‘특수’라는 말을 하도 많이 듣기에 그 말에 몸이 일반화되어 반응하는 것이리라.


처음 만나는 다수의 사람이 직업을 묻곤 할 때, 맨 처음으로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아, 교사에요.]

이렇게 들은 대부분의 사람은 그 질문을 그치지 않는다.

[무슨 교사요?]

이에 나는 귀찮다는 듯, 어색하게 웃으며 말한다.

[아, 초등학교요.]

이쯤 되면 대부분 사람은 멈추기 마련인데, 몇몇 이들은 내가 그렇게 궁금한가 보다. 혹은 나와 친분을 쌓고 싶은지 끝까지 묻는다.

[진짜요? 몇 학년 맡으셨는데요.]

나는 여기까지 와서야 비로소 내 ‘본 직업’을 말한다.

[아, 저 특수교사에요.]


내 직업이 부끄럽다거나 말하기 껄끄러운 것은 아니다.

그저 사람들의 일관된 반응들이 조금 지쳤을 뿐이다.


그들은 곧 특수교사가 어떤 직업인지 물을 것이며, 나는 그들에게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직업이라고 말할 것이고, 질문자는 다시금 힘들겠다며 대뜸 나를 위로하는 장면이 눈에 훤해서 답하기도 전에 지친다. 이에 나는 애써 웃으며 아니라고 다 똑같이 힘들며 그냥 평범하게 살아간다고 말한다. 하지만 곧 그래도 ‘특수’교사라며, 오히려 그들이 내 직업의 어려움을 토로한다.나는 이 직업을 얻기 위해 열심히 살아왔고 재미있게 잘살고 있는데, 나는 괜찮은데, 오히려 그들이 나를 위로한다.


그런데 이 세상 직업 중에 안 힘든 직종이 어디 있을까.

나 외의 다른 특수교사들이 힘들다고 말할지는 모르지만, 특수교사도 결국 이 세상의 수만은 직업 중 한 가지일 뿐이다.


또한 특수교사는 초등학교에서도 '주변인'과도 같다.

초등학교 교사의 분야를 굳이 묶어 분류하자면 ‘교과 담당 교사’와 ‘비교과 담당 교사’로 나뉜다.

이중 특수교사는 ‘비교과’로 분류된다.

특수교사는 일반 초등학교 교사와 마찬가지로 국어 수학 등의 모든 교과를 배우고 시험을 본다.

하지만 막상 현장에 배치되고 보면 분류는 ‘비교과’이다.

그 이유는 바로 ‘특수’교사이기 때문이다.

다른 교사들은 그냥 ‘교사’다. 하지만 ‘보건 교사’, ‘사서 교사’, ‘영양 교사’ 등 교과를 담당하지 않는 교사들의 직분 앞에는 항상 그를 일컫는 말이 붙는다.

그들은 보건학과 사서학, 영양학을 전공하여 가르치고 직분을 다하기에 그렇다.

하지만 ‘특수교사’는 어떠할까?


특수교사도 특수한 걸 가르친다면 그냥 ‘비교과’에 ‘특수’로 불리는 것에 별로 반감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특수교사도 일반 초등교사와 마찬가지로 국어, 수학 등의 교과를 가르친다.

그렇기에 특수교사 중 몇몇은 ‘특수’로 불리거나 ‘비교과’로 분리되는 것에 반감을 가지고 있다.

나와 친분이 있는 어떤 특수교사는 나와 이런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난 내가 비교과랑 같이 묶이는 게 너무 싫어. 그럴 거면 시험 과목에 국어 수학 등을 빼던지 말이야. 아니면 수업 실연을 하질 말던지. 맨날 보건, 사서, 특수로 묶여 비교과로 불리다 보니까 ‘특수’ 의 ‘특’ 소리도 듣기 싫어. '국수사과도음미체'를 죽어라 공부했는데 결국 불리는 건 비교과래.”

“그러게.”


그 당시에 나는 그의 말을 사소하게 넘겼던가.

아마 그도 진심으로 우러나온 혐오나 증오의 마음으로 말하진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특수교사는 장애를 가진 특수교육대상자가 통합학급에 잘 적응하도록 '서포트'하는 것이 그 역할이다.

그렇기에 그때는 ‘그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하며 넘겼다.


하지만 언제인가 화려한 액션이 잔뜩 나오는 ‘제이슨 본’ 영화 시리즈를 보며 느꼈다.

극 중 기억을 잃은 제이슨 본은 일반인이 갖지 못한 능력으로 사건 사고를 해결해 나간다.

결국 그가 일반인이 아닌 전직 ‘특수’요원임이 밝혀지고 복수하는 일차원적 내용이다.

그런데 이 영화의 주인공인 제이슨 본도 결국 특수가 아닌가.


아, 어려운 일을 척척 해내니까 ‘특수’라고 부르는 거지. 아, 보통의 일반인은 생각만 해도 ‘특수’교사의 일이 어려워 보이니, 내가 힘들겠다며 위로하는 것 아닐까.


꼬리에 꼬리를 문 나의 잡생각은 과대망상적 자기합리화를 이루다가도 허무한 구름 보푸라기처럼 흩어져 사라진다.

그래도 이러한 잡생각은 정신 건강에 좋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아마도.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나는 아무 생각이... 나는 아무... 난... 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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