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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랍비 Aug 27. 2024

특수한 전학생

먼지 바람과 함께 나타난 아이

학기 중에 전학생이 왔다.

4월의 미세먼지가 가득 낀 어느 날, 홀연히 내 앞에 나타난 이 아이는 아버지의 가정 폭력으로 전학을 왔단다.

전에 맡고 있던 특수교사는 그 아이 보고 ‘에이스’라고 했다.


[혜성(가명)이네 어머니는 지적 장애이고 아버지의 가정 폭력으로 시설에 가느라 그 학교로 전한 갔어요. 혜성이가 저희 반 ‘에이스’였어요. 똑똑해서 일반 초등학교 과정도 거의 다 따라갔고 다른 친구들도 많이 도와줬어요. 제가 그 중간 과정에 있느라 많이 보진 못했지만 그래도 잘 부탁드려요.]


과연 이 아이는 에이스답게 무엇이든 척척 잘했다.

받아 올림이 있는 덧셈이나 받아 내림이 있는 뺄셈을 하며 문장으로 자기 느낌이나 생각을 표현한다.

이 정도면 또래의 특수교육대상자 중 상위 10% 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나도 모르게 욕심이 났나 보다.

조금 더 많이 가르치고 알려주고 싶단 조바심에 어려운 과제를 주었고, 이는 아이에게 스트레스가 되어 곧 징징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기본적으로 아이들과 장난 섞인 말투로 잘 놀아주는 교사이지만, 기본적인 약속은 지켜야 하는 고지식한 부분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수업 시간이다.


그렇기에 혜성이가 징징거리는 것에 조용히 혼냈다.

그러자 그 아이는 얼음처럼 얼어붙어 의자에서 떨어질 줄 모른다.

사실 엄하게 혼낸 것도 아니고 조곤조곤한 말투로 ‘그렇게 행동하면 안 되지?’라고 말한 것이 전부다.

물론 평소보다 어조가 조금 낮긴 했다.

하지만 그 정도도 이 아이에겐 트라우마를 연상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나 보다.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닦지도 못하고 일으켜서 진정시키려고 해도 의자를 꽉 붙잡고 놓질 않는다.

등을 두드리며 혼내는 거 아니라고 말해봐도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아, 내 실수다.’


명명백백한 나의 실수다.

이에 대한 여러 핑계를 대보기도 하고 온갖 이론적 변명을 가져다 붙여보지만, 결국 미안함과 죄책감이 스멀스멀 밀려왔다.

그 아이는 쉬는 시간에도 의자에서 일어날 줄 모르다가 결국 통합반으로 올라갈 시간이 되어서야 의자에서 일어났다.


내일은 우리 혜성이가 좋아하는 만들기 하자. 선생님이 우리 혜성이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그러니까 혜성이 앞으로 말 잘 듣기 약속. 등등의 말로 위로를 하고 겨우 올려보내니 피곤이 밀물처럼 차오른다


내일은 좀 더 잘 해줘야지.


아, 힘들어. 기가 빨린다. 


 




이 폭풍의 전학생과는 몇 번의 씨름이 있었다.

다른 교사에게 그간 쌓인 나의 죄책감을 토로하자 그가 말하길, ‘일부러 그러는 거 아니에요? 혜성이가 선생님 교육을 잘하네요.’라는 농담을 했다.

그래. 어쩌면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되도록 이 아이에게는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일부러 아이가 조르던 ‘배추흰나비’를 사다 길러보고 평소 만들고 싶다던 만들기도 했다.

그러니 아이가 서서히 나에게 마음 문을 여는 것이 아닌가.

언제인가 수학 문제가 너무 어렵다던 아이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래도 이걸 해야 나중에 돈도 벌고 물건도 사지. 그렇지? 나중에 돈 벌어서 맛있는 음식 안 사 먹을 거야?”

 

그러자 그 아이의 장난기가 발동되었는지,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저는 맛있는 거 많이 먹을 거예요. 그리고 나중에 돈도 많이 벌 거예요.”

“그래? 뭐 뭐 먹을 건데? 치킨? 삼겹살? 얼마를 벌 건데?”

“백만 원, 아니 이백만 원이요. 과자요. 이백만 원으로 몽땅 과자를 사 먹을래요.” 


나는 피식 웃으며 맛있는 음식으로 고작 ‘과자’를 먹는다던 혜성이에게 핀잔주듯 말했다.


“에이, 이백만 원? 그리고 겨우 과자로 되겠어? 피자도 먹고 스테이크도 먹어야지.”


그러자 아이가 우물쭈물하며 웃는다.


“이번에 센터(보호시설)에서 엄마를 보러 간대요. 엄마가 돈 많이 벌어놨을 거라고 했어요. 엄마랑 같이 살려면 돈을 많이 벌어야 한 대요.”


순간 마음이 너무 아팠지만, 꾹 참고 다시 태연한 척 물었다.


“그래? 얼마나 있으면 된대?”

“몰라요. 천만 원? 이천만 원?”


아마 아이는 대충 어디서 들었던 수 중 가장 큰 수를 말했던 것 같다.

그게 고작 이천만 원이다.


“그렇게나 많이? 그 돈으로 뭐 하려고.”

“엄마랑 같이 맛있는 과자 사 먹을 거예요.”


추후에 드는 생각에, 아마 아이는 엄마랑 과자 먹던 기억이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고, 그 이유로 과자를 제일 좋아하게 된 게 아닌가 생각을 해보았다.

아이가 말하길, 엄마랑 동생이랑 텔레비전 보면서 과자 먹는 게 제일 좋았다고 했다.


“이천만 원으로 과자 사 먹으려고?”

“네. 이만큼, 엄청 많이 사 먹을 거예요.”

“그래. 그러면 우리 공부 열심히 해서 엄마랑 같이 과자 잔뜩 사 먹자.”


그렇게 이야기를 나눈 후, 나는 현장 체험학습으로 아이랑 같이 영화관에 가서 팝콘도 먹으며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줄까 하여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그러면 다음에 우리 반 친구들이랑 같이 영화관이라도 갈까?”


그러자 아이가 표정이 어두워지며 고개를 저었다.


“왜?”

어두워서요. 어두운 건 싫어요.


다시금 가슴이 먹먹해진다.

얼마나 어둠 속에서 힘들었으면.


“그럼, 우리 교실에서 환하게 밝히고 팝콘 먹으면서 영화 보자.”

“네.”

<이제 꽃길만 걸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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