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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Sep 05. 2024

글쟁이

글을 써보세요. 읽을 만할 것 같아

*

“글을 써보세요. 읽을 만할 것 같아.”


그저 ‘읽을 만’이라는 그 단어에 마음이 휘둘려 그날부터 괜히 우쭐했다.

작가가 된 것도 아닌데 그 사람이 지어 준 글쟁이라는 별명에 나는 이미 작가였다.


나이가 들면서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져 정신없는 마음을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지 분명하게 알게 해 준 순간이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내 글을 쓰고 싶었다.

그렇다고 내가 그간 일구어 온 일상에 닿은 모든 마음을 접고 글을 쓴다는 건 아니다.

그 사람을 향한 내 마음의 8할을 글쓰기에 쏟아붓기로 한 것이다.


**

사랑이 밥 먹여주나?

나는 사랑이 밥 먹여 준다에 한 표.

사랑을 만나는 날이면 이상하게 식욕이 좋아졌다. 내 인생에서 사랑은 밥을 먹여주더라.

그럼 그렇게 좋은 사랑에 모든 것을 쏟는다면 더 배불러지지 않을까 싶지만 그건 내 스타일이 아닐뿐더러 과식하다 무조건 체하고 만다.


사랑에 일상을 던지는 건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굉장히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분명 미칠 듯한 사랑을 못 해봐서 저런 말을 하는 거야.’라는 당연한 판단이 서겠지만, 그런 사랑을 하고 있기에 지극히 주관적인 입장에서 ‘비효율적’이라는 단어를 쓰고 싶었을 뿐이다.

몸도 마음도 다 놓치는 건 사랑이 아니다. 내가 올바른 판단을 하게 하고 에너지의 방향을 일깨워 주는 사랑을 해야 한다. 구닥다리 늙은이가 하는 잔소리 같이 들릴지 모르지만, 흘러가는 시간 속 어느 순간에 이마를 탁! 치는 순간이 올 것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사랑은 날 다시 일으켜야 하고 사랑은 날 다시 살아가게 해야 한다. 그게 사랑이다.

넘어지게 하고 머무르게 하는 것 또한 누군가에게는 사랑일 수 있겠지만 과연 언제까지 사랑이라 불리 울 수 있을까. 진짜 나를 찾아주는 사랑을 해야 한다. 내가 내 삶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는 사랑을 해야 한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며 내가 하고 있는 사랑이다.


***

내가 애정하는 콜롬비아 에이프릴 피치에 딱 맞는 온도의 물을 붓고 기다리면 황홀할 만큼 향긋한 커피가 잔에 차곡차곡 쌓여 오른다. 입에 한가득 물고 있다 삼키는 순간 풍겨오는 살구 향을 미친 듯이 아낀다. 커피가 내려지길 기다리는 시간만큼, 목구멍을 넘어가며 향을 풍기는 그 찰나의 순간만큼. 나에게 사랑은 딱 그 정도이다.


터질 것 같은 심장, 밤새는 설렘 이런 거 말고 용기, 도전, 다시 일어나게 하는 힘. 이런 거.


“글을 써보세요. 읽을 만할 것 같아.”

이 한 마디에 오늘도 나는 찰나의 살구향을 기대하며 글 쓰는 시간만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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