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은 Sep 09. 2024

그의 온도

그냥 둬

*

“그냥 둬.”


그의 한 마디에 모든 게 차분해졌다.


그냥 두라는 말이 그만두라는 말로 들렸기 때문이다. 자꾸만 나를 불쌍하게 만드는 감정 쌓기를 그만두라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미친 듯이 몰려오던 칼날 같던 아픈 생각들이 그의 한마디에 차분해졌다.

더 이상 나를 헤치러 달려오지 않았다.

내 감정의 표적은 더 이상 내가 아니었다.


**

그의 입술을 통해 나온 말의 온도는 차가웠다.

그의 차가움 앞에 나를 자꾸만 몰아세우던 화염 같은 생각들은 열기조차 펼치지 못하고 사그라들었다. 우습게도 냉정하기만 한 그의 말에 나는 오히려 감사했다.


그 사람이었기에 따뜻했다.


나를 지금 여기에 있을 수 있도록 해준 그였기에, 그 차가움이 매번 반가웠으리.

그렇게나 펄펄 끓는 몸에서 어찌 그리 차가운 말이 나올 수 있는지 의문이 들지만, 딱히 답을 찾고 싶지는 않았다. 답을 알고 싶지도, 찾고 싶지도 않으니 의문이 아닌 신기함이라 해야겠다.


신기하다. 그가 나에게 하는 모든 말들이 신기하다.

서로가 만나 서로에게 해주고 있는 말들이 감사하다.



그의 입술에서 쏟아지는 모든 말들을 새길 수 없음에 아쉬워 주변 모든 공기가 그가 한 말들로 가득 찬 느낌이 든다. 그가 돌아간 후에도 한참을 더 머물다 떠나오는 이유다. 그 공기 속에 아직 그의 말들이, 그가 남아있음에. 그 자리를 쉬이 돌아 나올 수가 없음이 이유다.


***

나도 그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

유독 그에게만 냉정하지 못한 나는 내가 낼 수 있는 최대의 온도로 따스함을 주려고 한다.


내가 머물렀던 공기의 온도가 그리워 그가 한참 동안 떠나지 못하도록.

이전 01화 글쟁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