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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Sep 12. 2024

손등

걷고 싶어요

*

“걷고 싶어요.”

“오늘 볼까요?”



그의 마음을 확인하기 위해 시원한 밤공기를 이유로 그를 불러냈다.


**

어깨까지 오는 내 머리카락을 넘기는 바람이 시원했던 어느 여름밤이었다. 내 머리카락만 넘기는 줄 알았던 바람은 그 사람의 마음도 넘기고 있었다.


그 사람 손등에 내 손등이 닿지 않게 걷느라 일부러 뒷짐을 지고 걸었다. 손등에 모든 감각을 집중하느라 걸음이 빨라진 줄도 모른 채 꽤 오래 걸었다.

그 사람의 가빠진 목소리에 아차 하며 발걸음을 늦추었지만, 서로의 마음은 늦추지 못했다.


여름밤을 지나는 우리 둘 사이의 물리적 거리는 한 뼘도 채 되지 않을 정도로 가까웠지만, 나는 필사적으로 그의 손을 피했다. 이대로 손등이 닿았다가는 그를 안아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마음이 자꾸만 눈에 보이는 모양을 갖추고 나올 때마다 자꾸만 내 마음이 쓰였다.

평소 내 얘기를 들어주기만 하던 그의 유난히 많은 말과 들뜬 목소리, 건장한 체격을 가진 그의 가빠진 숨소리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와 마음이 쓰였다.

쓰이는 마음이 쌓여 갈수록 나는 그의 손을 피하기에 바빴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그가 아쉬움을 붙잡았다.

“저기 잠깐 앉을래요?”


걸을 때보다는 살짝 멀어진 거리에 앉았지만, 이상하게 그의 목소리보다 두근거림이 더 크게 들려왔다. ‘풉’하며 웃음이 터져 나오려다가 화들짝 놀라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가 아닌 내 쪽에서 울린 두근거림이었다. 그가 못 들었길 바랐지만, 내 손등에 올라온 그의 온기가 이미 늦었음을 말해주었다. 두근거림이 글씨가 되어 나올 지경만큼 심장이 터질 것 같던 그 순간 그의 말이 나에게 쉼표가 되어주었다.


“굳이 아무 말 안 해도 돼요. 당신하고 있을 때 공백이 싫지 않아.”



***

“보고 싶어요.”

“오늘 볼까요?”


오늘도 우리는 서로의 이유가 되어 서로를 불러내고,

나란히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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