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 약속을 잡는다.
*
부러 약속을 잡는다. 힘껏 마음을 내어 그와 약속을 잡는다. 요일은 그가 정한다.
그가 정한 날은 곧 나에게 주말이 된다.
주말 직전 금요일을 기다리는 보통의 사람들처럼 나 또한 그와 만나기로 한 날 직전 요일을 무척이나 기다린다.
평소 불면증이 심한 나는 약속한 요일의 이틀 전 저녁부터 잠들려는 노력 없이도 졸음이 밀려온다. 그가 풍기는 낭만과 고요함은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나를 재우려 마음을 토닥인다.
**
그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부터 걱정이 밀려온다. 매일 볼 수 없음에 대한 속상함에 뒤엉킨 부끄러운 걱정이다. 밀려오는 걱정의 방향을 미리 알고 애써 외면하다 일주일을 채우지 못하고 결국 한가득 쌓여버린 감정과 충돌한다. 부끄러운 감정 더미와 사고가 나버린 나는 산산조각이 난 판단력을 핑계로 또다시 그를 찾는다.
떠올리기만 해도 머리가 시원해지는 그 사람만의 웃음소리가 핑계가 되고, 그의 밤공기 같은 달콤한 숨결조차도 핑계가 된다.
그로 인해 내가 잠들 수 있음이 가장 큰 핑계가 된다.
약속된 요일에 담아 온 그의 모든 것들로 나만의 일주일을 살아간다. 조금씩 꺼내면 일주일 넘게도 버틸 수 있을 것 같은데, 순간의 실수로 평소보다 그를 조금 더 꺼내버리면 일주일을 채 못 버티고 만다.
***
부러 약속을 잡는다.
이번에는 지나치게 이기적인 약속을 잡는다.
그의 달콤한 숨결 같은 밤공기를 핑계로 무작정 약속을 잡는다.
“목요일에 봐요 우리”
그리움에 잔뜩 엉킨 감정을 풀어내려면 그를 일주일 내내 곁에 두어야 하지만, 그럴 수 없기에 단 하루의 낭만으로 엉킨 부분의 끝자락이라도 덮이길 바라며 그를 불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