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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Oct 03. 2024

대나무숲

나의 모든 걸 들어주었다.

*

나의 대나무 숲이 되어주겠다던 그는 먹는 것, 듣는 것 모두 소화력이 좋다는 우스갯소리로 나의 걱정을 잠재웠다. 버거운 일상, 무거운 감정, 사랑 하나 없던 못된 표현, 베일 정도로 차가운 날이 선 표현도. 내 입에서 흘러나온 글자들이 그 어디로도 나가지 않을 빼곡한 대나무숲이었다.


처음에는 내 일상을 듣고 싶어 했지만, 그 속에 숨어있는 나를 듣고자 한 그였다. 남들에게는 한 번도 말 한 적 없는 ‘나’라는 비밀이었다. 다만, 어떤 모양의 비밀인지 예상조차 하지 못했던 그는 나의 일방적인 비밀 소개에 힘들어했지만, 되려 나를 위로하며 본인이 자처해 나의 비밀이 되어주려 했다.


안쓰러운 나의 비밀을 듣고도 내색 한번 없던 그의 마음은 동정이 아닌 깊은 애정이었다.



**

그의 노력이 깃든 시간 위에 시간이 쌓여갈수록

그가 애정하던 나는

이유를 만들어가며 스스로 초라해져 갔고

나를 애정했던 그는

이유도 필요 없이 여전히 내 곁을 지켰다.


그에게 드는 미안한 마음조차 버거웠던 나는

그를 어떻게든 밀어내야 했다.


나를 밝혀주던 그의 빛에 익숙해진 나는 왜 나를 전처럼 밝게 비춰주지 않느냐며 그를 탓했고, 세상 누구보다 그를 미워했다. 눈이 멀 정도로 밝게 비춰주던 빛을 향해 처음부터 저 빛이 없었더라면 내 눈도 멀지 않았을 텐데 하며 원망했다.


반복되던 어둠 속에 그저 되는대로 살았을 텐데, 그로 인해 내 하루는 빛나고 말았으며 반짝이던 무수한 날들로 인해 그가 없는 찰나의 순간에도 나는 금방이고 초라해지고 말았다.

그를 힘껏 미워하며 밀어냈지만, 깊고 깊은 그 사람은 나의 못된 발버둥에도 잔잔했으며 그저 날 가만히 두었다. 무언가를 쥘 수조차 없을 만큼 힘이 빠졌을 때, 그는 포근히 날 안았다.




“못 되게 말하지 마요. 마음에도 없는 말이잖아.”


긴 시간 끝에 그가 뱉은 한마디는 다정한 투정이었다.

‘나’라는 비밀을 알고 있는 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진심 어린 투정이었다.



***   

동화 속에 나온 대나무 숲은 바람이 불 때마다 그 숲에 털어놓은 비밀들이 바람을 타고 들려온다고 했다. 나의 모든 비밀을 알고 있는 대나무숲을 찾아가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나뭇잎이 흔들리는 바람결을 따라

나를 닮고, 나를 담은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의 전부를 사랑해.



아롱거리던 색 바랜 빛은 전보다 더 선명하고 황홀하게 그렇게 곁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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