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은 Sep 30. 2024

봉지 과자의 부정함

그의 역설

*

평소 과자를 즐겨 먹지 않는다는 그는 ‘봉지 과자의 부정함’에 대해 무척이나 진지하게 이야기했고, 묘하게 설득되는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이다 결국 큰 소리로 웃고 말았다. 봉지 과자를 왜 먹지 않는지에 대해 그토록 진지하게 이야기를 풀어놓다니.

그의 이미지와는 너무나도 상반되는 주제였기에 웃음이 나온 것도 있지만, 그 주제를 다루며 미간을 찌푸리는 그의 모습이 귀여웠음이 주된 이유였다.



**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게 생긴 그 사람은 눈물이 많았고, 눈물의 포인트도 다양했다.

사랑 노래라고는 전혀 모를 것 같은 사람의 노래방 애창곡은 풋풋한 첫사랑 노래였으며, 네모난 턱에 진한 수염을 가진 그가 즐겨 찾는 메뉴는 당도 높은 ‘돌체 라테’였다.


타고난 곱슬머리를 피고 싶어 거울 앞에 한참 머무는 모습. 입맛에 맞지도 않는 산미 있는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모습. 스피커에서 나오는 힙합 노래를 불만 없이 들어주는 모습.  모든 것들이 그가 살아온 시간 속에서 역설이었지만, 그 역설은 모두 나를 위한 것이었다.


30년 넘도록 혼자서 밥을 먹어 본 적 없던 그는 근무 중인 나를 기다리느라 매일 점심을 혼자 먹었고, 맛집이라도 알아낸 날에는 잔뜩 들떠 나에게 말해주었다. 생전 써본 적도 없는 하이패스까지 설치해 가며 매일 아침 30분이 넘는 거리를 달려와 집 앞에서 기다렸다가 내가 가장 좋아하던 가게의 에그타르트와 따뜻한 커피를 먹여 출근시켜 주던 그였다.


그는 산적 역할을 맡게 생긴 사람이었다.

측근들은 평소 듣던 나의 이상형과는 너무 동떨어진 그를 보고는 다 이유가 있겠거니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그 사람이 좋았던 이유를 떠올려 본 적이 있다.



나는 역설 그 자체인 그가 좋았다.


그 산적은 무척이나 다정했고 부드러웠으며 감미로웠다. 그를 아는 사람 중 이 글을 발견한 누군가는 당장 글 읽기를 멈추고 싶을 정도의 울렁거림이 밀려올 수도 있다. 그 정도로 그의 역설은 오직 나를 위해서만 존재했다.



***    

봉지 과자의 부정함을 이야기하던 그의 미간이 너무 깊어졌다.

‘부정함’은 바로 그가 봉지 과자로부터 받은 실망감을 표현한 단어였다.


과대포장


귀여운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를 주머니에 넣고 싶었던 나조차도 역설이었다.

나는 그렇게 큰 주머니가 달린 옷이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