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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Oct 07. 2024

귤빛계절

가을은 또 찾아왔다.

*

사랑하는 계절이 바뀌는 순간이 있었다.


여름의 모든 페이지를 덮은 이 계절은 나의 심장 구석을 간지럽혔다. 내 옆에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그의 속눈썹을 빗질하던 가을볕은 시선이 닿는 모든 곳을 가슴 벅차게 반짝거리는 장면으로 바꾸고 있었다.



**

매 순간 열심을 내다 생각의 줄이 팽팽해져 끊어지려는 순간마다 그는 나에게 노크했다. 문 건너편에서 노크에 대한 답이 없었음에도 내 생각을 비집고 들어와 의자 하나를 멋대로 두어 쉴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쉬라고 놓고 간 의자에 앉기는커녕 정리가 안 되는 생각들을 의자 위에 얹어놓기도 했고, 그가 가져갔으면 하는 짐스러운 걱정거리를 잔뜩 쌓아놓기도 했다. 때로는 그가 불쑥 찾아와 말없이 앉아 있기도 했다. 그가 불쑥 내 생각으로 찾아온 날에는 모든 생각 정리를 뒤로하고 그를 반기기에 열심을 냈다.



아, 난 그것마저도 열심을 내버렸다.



너무 열심히 하지 말고 애쓰지 말라는 말을 자주 해주던 그는, 애쓸 것 투성이인 나의 하루가 걱정되어 결국 본인도 열심을 내버렸다. 하지만 모든 것에 열심을 내는 나와 다르게 그의 열심은 오로지 나에게만 목적이 있었다.




늦도록 여름의 색을 놓지 못한 공간 속에 이미 시든 나무와 풀잎은 어질러진 느낌을 주었다. 평소 정리정돈에 예민한 나에게 가을은 볼품없는 계절에 불과했다.


그는 그런 나를 가을의 한복판으로 데려갔고, 어느덧 기분 좋은 온도까지 내려간 공기를 가슴속 저 아래에 닿을 때까지 들이마시도록 했다.


바쁘게 사느라 치우지 못한 시린 돌덩이가 담긴 숨은 내 마음에 큰 구멍을 내며 튀어나왔고, 시리다 못해 아픈 그 자리를 쉼으로 채우도록 그는 열심히 날 이끌었다.


그렇게 나는 그가 펼친 반짝이는 계절 속에서 쉬는 방법을 배웠다.



***   

옷깃을 지나는 바람에 기분이 참 좋다.

등을 토닥이는 감귤빛 햇살도 참 근사하다.

시린 손을 녹일 수 있도록 그가 전해 준 따뜻한 커피의 온기가 참 부드럽다.


구름에 부딪혀 실처럼 풀어진 노을빛에

시든 풀잎조차도 금빛으로 변하는 마법 같은 계절.

시든 나를 빛나게 만드는 노을 같은 그가 이끈 이 계절을 사랑한다.



사랑하는 가을은 또 나에게 찾아왔다.



안녕, 어여쁜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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