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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Oct 10. 2024

카페인

뜨거운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

커피를 마시는 것에도 목적이 있던 나는 뜨거운 커피를 후후 불며 마실 생각만 해도 답답했다. 난 흔히 말하는 ‘얼죽아’였다.


카페인.

내가 커피를 마시는 목적.


정신 온전한 하루를 위해 카페인은 수시로 필요했다. 바쁜 일상 속 재빠르게 카페인만 쏙 빼먹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했기에 나에게 커피는 잠깐의 여유가 아닌 끼니 같은 섭취 의미를 지닌 생존수단이었다.



**

평소 중요하지 않은 인물이나 상황에 대해서는 굳이 궁금하지 않았고 이해하려 하지도 않았다. 무미건조하게 두어 번 끄덕이고 넘어갔다. 그런 나에게 뜨거운 여름에도 뜨거운 커피를 마시는 그가 물음표를 던졌다.


일단 걸음걸이조차도 부지런한 그였기에 물음표.

지난 시간을 되감기 해봐도 그의 커피잔에 얼음이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것도 또 하나의 물음표.

내 커피에는 얼음 잔뜩 넣어주던 그였기에 마지막 물음표.


그가 궁금했다.

이해하고 싶었다.



나에게 그 사람은 중요했다.



시간이 지나도 물음표를 해결하지 못했지만, 나는 그의 커피는 언제나 뜨겁게 주문했고, 나도 그를 따라 뜨거운 커피를 따라 주문하기도 했다.


주문한 커피는 테이블 위에 그대로 두었다. 굳이 입바람을 후후 불어가며 식히지 않았다.

무게감 있는 머그잔에 담긴 커피가 주변에 온기를 뺏기며 서서히 식어가는 동안 우리는 점점 따뜻해졌고, 입술에 닿기 좋을 온도까지 내려가며 풍기는 향 속에서 우리는 행복했다. 적당하게 식은 커피가 주는 부드러움처럼 그는 뜨겁고 따뜻하고 향긋하고 부드러웠다.

    


뜨거운 커피.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


커피의 온도만큼만 허락된 시간에 대한 배려였다.

서로에게 그 순간만큼은 서두르지 말자는 무언의 약속이었다.



***   

그와 함께하지 않을 때도 나는 뜨거운 커피를 주문한다. 커피가 알맞게 식어가는 시간만큼 나는 그를 떠올린다. 주문한 커피를 천천히 건네주며 카페 직원이 말한다.


“아주 뜨거우니 조심하세요~”

“네. 감사합니다.”




아끼고 아끼는 그 사람.

이제 내가 커피를 마시는 목적.



‘뜨거울수록 좋아요.

그만큼 그 사람을 더 오래 생각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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