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비는 시절을 알고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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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사랑. 누군가의 사람.
모든 순간의 나를 아름답게 만들어 준 그 사랑을 담고 싶었다. 숨 쉬듯 자연스럽게 나에게 다가왔던 그 사람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젠 담을 수 없는 그 사람을
이젠 그릴 수 없는 그 사랑을
오직 그리움으로 남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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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비는 시절을 알고 내린다고 했다. 그는 과연 나의 필요를 알고 내린 걸까. 그가 내려준 그 순간을 내 멋대로 좋다고 단정 지은 걸까. 묻고 싶어도 이젠 의미 없는 그 시간 속에 남은 건 함께였다는 기억뿐.
빗소리만 들어도 떠오르던 사람이었다.
비 내리는 오늘. 소리가 시각화되어 빗방울로 눈앞에 떨어져도 아무렇지 않은 걸 보고 이젠 그를 놓아도 내가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맑은 날씨였다.
비 예보조차 없던 그런 날.
헤어지려던 순간, 후드득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나를 안고 놓지 않던 그는 간절히 말했다.
“이 비가 그칠 때까지만 있어 줘요.”
이슬비로 시작한 비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굵은 빗줄기가 되어 한참을 내렸고, 우리는 꽤 오랜 시간 함께 있었다. 그 후로도 그날처럼 많은 비가 내리면 어김없이 생각이 났다. 아니, 비만 내려도 생각이 났고 많은 비가 내리는 날에는 미치도록 생각났다는 게 솔직한 마음이다.
함께 했던 공간에는 그렇게 많은 비가 내렸음에도 특유의 비 냄새는 없었다.
다행이었다.
그와의 시간 속에 비 냄새까지 기억되었더라면 나는 비 오는 날에는 집 밖에도 나가지 않고, 창문이라는 창문은 모두 닫은 채 이불속에만 있었을 것이다.
***
비가 내린다. 무뎌진 그의 기억도 함께 내려간다.
사실, 무뎌지길 바라는 마음에 자꾸만 그를 잊을 수 있다며 나 스스로를 격려한다. 무뎌지지 않는다. 있었던 일이 없어지지 않는다. 달려가 그를 안고 싶었던 날이 없진 않으나, 그럼 안 되기에 무뎌졌노라 나 스스로를 속이고 또 속인다.
무뎌질 수 없는 그와의 기억을 담은 비가 내린다.
지금 내리는 비는 사무치게 그리운 그를 마음껏 떠올릴 수 있도록 내려주는 좋은 비일까.
이미 지나버린,
그가 있던 모든 시절이 나에게 좋은 비였을까.
확인하고 싶지만 자신 없어 오늘도 그가 담긴 빗방울을 굳이 붙잡지 않는다.
호우시절.
좋은 비는 시절을 알고 내린다.
단 하루라도 나에게
앞이 보이지 않는 폭우처럼 그가 잔뜩 내리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