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기유 Dec 09. 2024

여든의 배려


지난 이야기: 회사에서는 힘든 일도 있지만, 할머니의 안부를 물어주는 동료도 곁에 있다. 



중학생 때, 친구들과 교복 블라우스 세탁에 대해 열띠게 대화한 적이 있다. 목깃과 소매 끝에 때가 타면 어떻게 지우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주방 세제를 묻혀서 손빨래하면 된다, 화장품이 묻은 게 아니니까 빨랫비누만 묻혀도 된다, 어찌 되었든 손으로 하는 애벌빨래는 필요하다, 오염 방지 안감은 왜 끄트머리를 남겨놔서 때가 타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열띠게 이야기하던 친구들 중 한 명이 나에게 물었다. “기유야 너네 집은 어떻게 해?” 나는 대답했다. “난 그냥 세탁기에만 돌리는데?” 친구들은 일제히 내 소매를 뒤집어보라고 하더니 뽀얀 옷감을 보고 감탄했다. “우와, 너네 집 세탁기 어디 거야? 되게 성능이 좋은가보다!” 

집에 돌아와 그 얘기를 했더니 엄마는 놀라서 입을 쩍 벌렸다가 이내 당신 가슴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 성능 좋은 세탁기 여기 있다.” 알고 보니 엄마가 일일이 손으로 애벌빨래를 하고 세탁기를 돌려왔던 것이었고, 나는 그런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주 작은 해프닝이지만 내게는 꽤 충격적인 일이었다. 먼저, 친구들은 자기 엄마가 애벌빨래를 하고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대화가 없었다면 엄마의 애벌빨래의 수고를 언제까지고 알아차리지 못했을 수 있었다는 것이 나를 놀라게 했다.


지금 다시 그 기분을 맛보게 되었다. 외출하고 예정보다 일찍 돌아온 내가 손을 씻으러 욕실로 걸어가는데 그 안에서 인기척이 났다. 전등 스위치도 켜져 있었다. 살짝 열려 있는 문을 툭 건들어 여니 할머니가 그 안에서 자루바가지를 털고 있었다.

“뭐야, 일찍 왔네?”

“네. 친구가 돌아가는 버스를 빠른 걸로 끊어놔서 일찍 헤어졌어요. 청소 중이셨어요?”

“그래, 뭐····.”

이야기를 들어보니, 할머니는 내가 출근한 시간에 가끔씩 이렇게 욕실 청소를 해 왔다고 한다. 나는 이때까지 이 욕실을 제대로 청소한 적이 없었다. 샤워 후 머리카락을 치우고, 전체적으로 물을 쏘아 비누 거품이 남아있지 않게 관리만 해온 정도였다. 본가에서도 이 집에서도 욕실은 깨끗이만 쓰면 따로 청소할 필요 없이 깨끗이 유지가 되는 줄로만 알았다. 할머니가 나 없는 시간에 청소를 하고 계셨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렇게 해주시고 계신 줄 몰랐어요. 더러워지면 제가 청소를 했을 텐데····.”

“그렇지 않아. 청소는 더러워지기 전에 퍼뜩퍼뜩하는 거야. 뭐, 너는 회사 다니느라 바쁘니까 시간이 남는 내가 좀 하면 되는 거고.”

부끄러웠다. 어엿한 성인으로, 사회인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이만 먹었지 나는 아직 이토록 모자라는구나 싶었다. 할머니는 한 번도 욕실 청소에 대해 생색을 낸 적이 없었다. 생각해 보면 빨래도 그랬다. 내가 세탁기를 돌리는 날보다 할머니가 돌리는 날이 더 많았다. 퇴근 후 빨래바구니를 봤는데 텅 비어 있어서 베란다에 나가 보면 정갈하고 흔들림 없이 빨래가 마르고 있었다. 할머니는 늘 말했다. ‘너는 회사 다니느라 바쁘니까’

요리나 설거지도 분담하거나 돌아가면서 한다고는 하지만 규칙을 정해둔 건 없었다. 그 와중에도 ‘내가 몇 번 했는데’라는 마음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릇이나 식재료도 흔쾌히 내주셨고, 할머니의 살림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선을 긋는 느낌은 한 번도 받지 못했다. 반대로, 내가 쓰는 물건에 관심이 있을 때 할머니는 빌려달라고 안 하시고 ‘어디서 파냐, 뭐라고 말하면 통하는 물건이냐’라고 물어보셨다. 같이 쓰면 된다고 해도 한사코 거절하셨다. 그중 하나가 청소포 밀대였다. 내가 보기엔 혼자 쓰든 둘이서 쓰든 열 명이서 쓰든 상관이 없는 물건인데도 할머니는 ‘내 거는 사서 쓸게’라고 했다. 결국엔 인터넷으로 주문을 해드렸는데, 얼마 안 하는 밀대 값을 주겠다고 하셔서 말리느라 애를 먹었다. 그간 할머니께 받아 왔던 배려를 곱씹다 보니, 나도 할머니를 위해, 공동생활의 불편을 줄이기 위해 무언가를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요리를 한 번이라도 더 하거나, 저녁요리를 하면서 내일 아침 메뉴도 미리 만들어 둔다거나 하는 식으로. 아니면 가구에 쌓인 먼지를 닦거나. 먼저 배려를 받으니 경쟁심이 일었다. 다만 마음이 즐거운 경쟁이었다. 다음엔 내가 먼저 배려할 거리를 찾아내겠다는 마음.


그러던 어느 저녁, 할머니가 이전에도 여러 번 얘기했던 모녀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김경’이라는 외자 이름인 어머니 쪽이 할머니와 언니 동생 하는 사이고, 김경 씨와 그녀의 딸 모두 할머니와 자주 만난다. 무슨 일을 하는 사람들인지, 할머니와 어떻게 아는 사이인지 모르지만 할머니가 그들과 나눴던 대화를 들려줄 때면 나는 잠자코 듣기만 했다. 오늘도 그 이름이 언급되기에 긴 이야기를 각오하고 귀를 기울였는데 뜻밖의 이야기가 나왔다. 

“김경이의 딸이 아들이 하나 있는데, 그러니까 김경의 손자 말인데, 미국에서 살고 있어. 그 손자가 바빠가지고 연락도 통 못한다고 하더라고. 그래도 그렇게 잘 산다더라. 직업이 변호사거든.” 

할머니의 눈을 유심히 봤다. 아무래도 모르시는 것 같았다. 당신께서 지금과 똑같은 이야기를 당신의 아들 이야기로 내게 들려준 적이 있다는 것을. 그 뒤 구체적인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이쪽이 사실인 것 같았다. 그리고 아무리 귀 기울이고 있어도 ‘내 아들도 미국에서 변호사인데’ 하는 식의 덧붙임이 나오지 않았다. 가슴 한쪽이 아렸다. 할머니께 직계 가족이 없는 것도 그렇지만, 타인의 이야기를 빌려서라도 당신의 가족인 것처럼 내게 들려주려 하셨다는 사실이 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 외로우셨던 걸까, 아니면 멀리라도 든든한 가족이 있다고 세입자에게 면을 세우고 싶으셨던 걸까. 지금 이 순간 내가 할머니께 할 수 있는 배려는 그저 처음 듣는 얘기인 양 눈을 동그랗게 뜨고 경청하는 것뿐이었다.


*

복도에 여행가방을 내렸다. 뒤돌아보자 내 옷을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할머니의 크고 검은 맑은 눈이 있었다.

“좀 더 여며라, 얘. 춥다.”

눈을 맞추고 미소를 나눈다. 식사 거르지 말고 잘 챙겨드시라고 인사를 드린 후, 얼른 문 닫고 들어가시라고 잔소리도 남겨본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떼니, 복도에는 돌돌돌돌 가방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울린다. 얼굴에 닿는 공기가 점점 차갑고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하늘은 이미 밤처럼 어둡다. 엘리베이터를 타러 꺾기 직전, 언제나처럼 뒤를 돌아보았다. 복도 저 멀리, 할머니가 겉옷도 걸치지 않은 채 복도에 한 발을 내리고 서 있다. ‘퍼뜩 가!’라고 하듯 거칠게 손을 놀린다. 누가 할 소리! 할머니야말로 추운데 왜 그렇게 서 계시는 거냐고 소리쳐 묻고 싶다. 지체 없이 목례를 한 후 벽 뒤로 모습을 감췄다. 할머니가 빨리 따뜻한 집 안으로 들어가시라고. 다음부터는 뒤를 돌아보지 말까 싶기도 하다. 괜히 내가 돌아볼 때 복도가 비어있을까 봐 못 들어가시는 거 아닌가 싶어서. 하지만 과연 내가 뒤를 안 돌아볼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너무 매정해 보이지 않을까 싶어서.

‘배려라는 건 아무나 하는 게 아니란다’ 청량한 밤공기가 내 머리카락을 툭 건드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