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기유 Dec 16. 2024

할머니의 눈물

늦가을의 찬바람에 날린 낙엽이 11층까지 날아오르는 게 보이는 저녁이었다. 뿌옇고 약한 빛을 내는 등 하나가 비추는 식탁에 앉아 조용히 식사를 마쳤을 무렵, 할머니가 옆의 식탁의자에 올려두었던 신문을 들어 올렸다. 특정 페이지가 보이도록 뒤집어 접어 둔 모양새였다.

“이것 좀 봐봐라.”

할머니가 손가락으로 지면을 툭툭 치면서 내게 넘겼다. 신문 하단부에 책 광고가 큼직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화가 이중섭의 삶을 그린 두 권짜리 장편소설이었다. 책 이미지와 대표작 <흰 소>가 오버랩되어 있었다.

“이게 왜요? 이중섭 좋아하세요?”

할머니는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이를 드러내고 미소를 지었다. 

“응. 나는 이중섭의 소 그림이 그렇게 좋더라.”

신문을 넘겨받고 광고를 읽어보았다. 원로작가가 기록을 바탕으로 쓴 실화 바탕의 소설. 이런 소설은 어디까지 실제 사연의 재현이 가능한 걸까 생각하는데 할머니가 갑자기 스위치가 들어온 것처럼 열띤 목소리로 말했다.

“꼭 소가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지 않니? 나는 이중섭의 소 그림을 보면 기분이 좋아. 굉장히 힘 있어 보이기도 하면서 귀엽기도 하고 말이지.”

“네에.”

거친 터치로 그려진 뼈가 툭툭 튀어나온 소 그림. 학생 때 교과서에서 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역시 지금 봐도 아무 생각도 안 들어’

아직 그림을 보는 안목이나 그림에 대한 예술성이 부족한 탓이겠지만 이렇게 생긴 소가 귀여워 보이는 건 어떤 느낌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소를 가리키며 이야기하는 할머니의 눈빛은 광채가 날 정도로 살아 있었다. 사람이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면 이런 눈을 하는구나, 감탄하면서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었다. 할머니는 연신 소 그림에 대한 찬사를 쏟아내고는 이중섭에 대해서도 위대한 화가라고 엄지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함께 뒷정리를 하고 이를 닦은 뒤 방으로 들어가기 전 다시 부엌에 들러보았다. 식탁 의자에 올려 둔 신문이 그대로 있었다. 할머니가 눈을 빛내던 모습과 새로 나올 책의 예쁜 디자인 속 ‘이중섭’이라는 글자가 겹쳐 보였다. 할머니가 그토록 좋아하는 무언가가 있을 줄이야. 함께 지낸 시간 동안 처음 본 모습이었다. 



*

할머니께 묵직한 책 두 권을 내밀었다. 반듯하게 각진 예쁜 디자인의 새 책이 내 마음에도 쏙 들었다.

“이게 뭐냐?”

“이중섭 책이에요. 그때 신문에 광고 있던 거요.”

“아유!”

할머니는 눈을 크게 뜨고 입을 쩍 벌리고 가감 없이 놀란 얼굴을 보였다. 빠르게 마중 나온 손이 책을 받았다. 할머니는 이내 난처한 기색이 되었다.

“두 권이나 되는 거야? 사 달라고 보여준 거 아닌데······.”

“저도 알아요. 제가 그냥 드리고 싶었어요. 할머니 신문도 읽으시니까 이 책 정도면 읽으실 수 있죠? 글자 크기 한번 봐 보세요.”

손을 뻗어 책장을 들췄다.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곤 천천히 걸어 식탁으로 갔다. 책을 내려놓고 천천히 페이지를 이리저리 들춰보시곤 입이 귀에 걸릴 듯한 표정으로 나를 보셨다.

“고맙다. 어허허.”

가슴 안에서 몽글몽글한 감정이 피어올라 간지러웠다. 순수히 선물을 주는 기쁨을 오랜만에 느꼈다. ‘내가 받았으니까, 생일이니까, 기념일이니까’ 등 상대가 예측한 타이밍이 주는 선물이 아닌 깜짝 선물. 그리고 선물을 받은 사람이 순수하게 기뻐하는 것이 전달되는 기분. 내가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뻤다.



이후 할머니는 매일 그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식탁, TV방, 안방 등 장소를 따지지 않고 틈만 나면 고개를 숙이고 책에 빨려 들어갈 듯 독서삼매경에 빠졌다. 책갈피를 대신하여 페이지를 접는 건지, 페이지를 접은 자리가 나날이 늘어났다. 책을 방치하지 않고 곧바로 손에 들고 읽으시는 게 어찌나 뿌듯하고 기쁜지, 오늘은 어느 페이지가 접혀 있나 늘 두근거리며 곁눈질로 살펴보게 되었다. 

하루는 저녁을 먹다가 말하셨다.

“얘야, 너도 일본과 관련된 일을 하지? 이중섭이 일본 여자랑 결혼했던 거 아니?”

“그래요?”

학교 다닐 때 배웠었나 싶었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중섭이 그 시대로선 아주 엘리트였어. 집도 잘 살았고 일본에 유학 가서 미술을 했다니까. 유학하다가 아내를 만난 거야. 이름이 마사코야, 마사코.”

“오, 요즘 같으면 CC네요!”

“씨씨?”

“캠퍼스 커플이라고, 대학교 안에서 만나서 사귀는 연인을 말해요.:

“오, 씨씨? 그래, 씨씨야. 같은 미술 공부하는 사이였대.”

“전공까지 같았네요.”

그렇게 듣기 시작한 이야기는 흘러 흘러 결혼, 전쟁과 가난, 아들들의 탄생, 이윽고 가족의 생이별까지 이어졌다. 할머니는 급기야 그 좋아하는 소 그림 속 소의 눈처럼 크고 맑은 눈에서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를 이었다.

“이중섭이, 마사코랑 아들들을 너무 사랑했어. 가난해서 생이별을 한다는 건 너무 원통하지 않니? 아내랑 아들들을 그렇게 보고 싶어 했단다. 매일 보고 싶어서 편지를 쓰고······.”

할머니는 연신 티슈를 뽑아 눈물을 찍어 훔치며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그러다가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대목을 읽어 주시기까지 했다. 밥을 먹다 말고 나도 울적한 마음이 되어 숟가락질을 멈추고 얘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그의 이야기에 푹 빠져 공감하는 할머니의 입을 통해 듣는 이야기는 더 생생하고 와닿는 점이 많았다.  할머니가 눈물을 닦으면서도 눈을 빛내며 내게 이중섭에 대한 이야기를 열심히 전달하려 하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절절히 전해지고 있었다. 가슴이 아파서 밀어내고 싶을 정도로. 눈물 맺힌 눈으로 열심히 나와 마음을 나누려는 할머니의 열정이 아플 정도로 아름다워서, 그래서 두려웠다. 고개를 끄덕이며 할머니와 눈 맞추고 있는 내 눈에서도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할머니를 만나지 않고, 이 집에서 살지 않고, 그 신문 광고를 보지 못했다면 한 사람의 삶을 알게 되는 이 경험 또한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앞에서 책을 들었다가 펼쳤다가 가슴에 끌어안았다가 하는 할머니가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저녁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