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에서 건강히

by 진기유

대학교 때 같은 수업을 들으며 가까워졌던 언니와 저녁 약속이 잡혔다. 회사 일은 순조롭게 흘러갔고 무사히 정시 퇴근을 하고 청량한 초겨울 바람이 부는 밖으로 나갔다. 이제는 퇴근 시간이 한밤중처럼 깜깜하고, 불 켜진 사무실들을 보면 퇴근하고 밖에 나온 기쁨이 더 달콤하게 느껴졌다. 청계천 다리 위에서 정화 언니가 난간에 기대고 있던 몸을 바로 세우고 반가움을 가득 담아 크게 팔을 흔드는 게 보였다. 나도 팔을 교차하여 흔들며 뛰듯이 걸어갔다. 거의 2년 만에 만났지만 서로 어제 만난 듯이 배가 고프다는 둥 국물이 당긴다는 둥 얘기를 하며 식당을 찾았다.

“벌써 12월이라니, 뭘 했다고 벌써 연말이라니.”

따뜻한 식당 안 창가 자리에 앉자마자 정화 언니는 발그레해진 볼을 손등으로 문지르며 말했다. 내게는 변화가 많은 해였기 때문에 언니는 내 얘기를 들려달라고 안달이었다. 처음 다니게 된 회사는 어떤지, 업무는 어떤지, 팀 분위기는 어떤지, 사는 곳은 마음에 드는지.

“할머니? 너네 할머니 아니고 모르던 할머니라고?”

아니나 다를까 언니 역시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반응이었다. 나도 이젠 그러려니 했다. 한참 나의 생활에 대해 얘기하고 끝마치는 때를 맞춰 전골이 나왔다. 함께 후후 불어가며 맛있게 배를 채웠을 즈음, 언니는 본인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했다. 보험 일을 하다가 그만두고 호주로 가는 워킹홀리데이를 앞두고 있었다. 언니는 미래에 대한 불안에 대해 말하면서도 특유의 반달 같은 눈웃음을 지으며 호호 웃었다. 먹고 얘기하며 바쁘게 입을 움직인 끝에 포만감에 젖어 의자 깊숙이 몸을 기대앉아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웃었다.

“기유야, 그나저나 모르는 할머니랑 같이 살 수 있다니 정말 신기하다. 내가 형제가 많아서 어디 가서든 부대끼면서 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아.”

“그 정도예요? 그렇게 어려운 일 아닌데요. 할머니가 워낙 많이 배려를 해주시거든요.”

언니는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불편할 거라는 말이 아니고, 아니다, 불편할 거라는 말이긴 한데. 뭐랄까, 음. 대화를 안 할 것 같아.”

“할머니랑 대화를 안 한다고요?”

“응. 그래서 불편할 것 같아.”

“그럼 대화를 하면 되잖아요.”

“그러니까, 그게 안 될 것 같다니깐.”

내가 알던 정화 언니가 맞나 싶었다. 친한 선후배나 동기들과 성별을 가리지 않고 편하게 농담하고 호탕하게 소리도 지르던 언니인데.

“너 한번 물어봐, 친구나 주변 사람들한테. 그렇게 대화 나누고 같이 음식 만들어 먹으면서 지낼 수 있냐고.”

“그럴 수 있냐고 물어본 적은 없는데 다들 어떻게 그렇게 하냐고 신기해하긴 했어요.”

“거 봐!”

“근데 그건······. 자기는 못한다는 말이 아니고, 그렇게 한집에 같이 사는 방식이 있다는 게 신기하다는 뜻 아니에요?”

“뭐 그럴 수도 있긴 한데, 내가 말한 의미도 포함되어 있을 거야. 다음에 한번 제대로 물어봐 봐.”

언니는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물을 마셨다.

“야, 내가 보험일 할 때 느낀 건데, 가족이 건강한 것만 해도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알아야 된다? 내가 영업하면서 만난 사람들, 힘든 여건 속에 있는 사람이 많았어. 너는 네 가족은 물론이고 그 할머니도 건강하게 계시는 걸 감사하게 생각해야겠다. 가까이 있을수록 소중한 걸 잊게 되잖아. 그거, 잊으면 안 된다고!”



*

“그 언니라는 애가 좋은 이야기 들려줬네. 그래,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다 기적이다.”

아빠의 말에 엄마가 맞장구치며 고개를 끄덕인다. 모두 거실에 둘러앉아 뜨거운 고구마를 후후 불고 있다. 오랜만에 들른 본가에서 겨울 별미를 먹고 있는 참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엄마가 고구마 껍질을 까다 말고 말을 고른다.

“할머니가 심장이 안 좋으시다고 했잖아. 연세도 있으시고. 그래서 내심 걱정인 부분도 있어.”

“······돌아가실까 봐?”

엄마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그런 말을 해?”

“그러니까, 그렇다는 게 아니고 그럴 가능성도 있으니까 걱정이라는 거지.”

하긴, 나도 저번에 할머니가 갑자기 안보였을 때 방에서 쓰러지신 건지 걱정했었다. 나라고 그런 가능성을 아예 생각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되도록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생각은 떨쳐버리고 싶었다.

“돌아가시면 뭐? 뭐가 걱정이야?”

“얘는! 갑자기 돌아가시면 걱정인 게 한두 가지가 아니지.”

“왜?”

“왜는 뭐가 왜야? 너 안 무섭겠어? 돌아가신 거 발견하면 안 놀라겠어?”

“놀라겠지. 어쨌든 112나 119에 신고하면 되지 뭐가 걱정인데.”

“한동안 한집에 같이 있어야 할 텐데.”

“그런···. 고작 그런 거? 며칠 같이 있어야 한다고 해도 상관없어.”

“얘 좀 봐.”

“안 무섭다고! 그런 걱정할 필요 없다고.”

“그래, 네가 안 무섭다면 다행이고. 만약에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려는데 돌아가셨으면 어떻게 할 거야? 패닉에 빠지지 않겠어?”

“회사 사람들 내가 할머니랑 사는 거 다 알고, 나한테 할머니 안부까지 물어봐. 정말 만약에 그런 일이 있다고 해도 얼마든지 양해 구하고 112나 119에 신고하고 절차 밟으면 되는 거고.”

잠시 찾아온 정적이 텁텁하고 무거웠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 집, 엄마가 찾아낸 집이야. 걱정을 하려면 그때 했어야지. 그리고 할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실 거 생각하면, 내가 걱정인 건 할머니가 혼자 외롭게 임종하실까 봐 걱정이야. 내가 한집에 같이 사는데!”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고구마가 아무 맛도 안 나게 되었다. 울면서도 우유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기분 좋게 정화언니를 만났던 이야기를 꺼냈다가 이렇게 이야기가 흘러갈 줄이야. 내가 지금 화가 난 대상이 무엇인지도 헷갈렸다. 어쩌면 할머니의 건강상태에 대한 불안일지도, 그 불안을 무의식 중에 의식하고 있는 나 자신인지도 모르겠다.

“······그래. 네가 그런 마음이라면 됐다. 우유 더 줄까?”

고개를 저었다.

“다신 그런 말 꺼내지 마. 그런 생각하는 것도 기분 나빠.”

아빠도 엄마도 바닥으로 시선을 깔고 조용히 계셨다. 아차 싶었다. 곁에 있어서 소중함을 잊어버리는 것, 지금이 그 순간이었다. 컵을 만지작거리다가 입을 뗐다.

“걱정하는 마음 알겠고···. 그래도 걱정하지 말라고. 하고 싶은 말은 그거야.”

아빠가 웃는 얼굴로 분위기를 전환했다.

“그래, 할머니 건강하시잖아. 기유가 괜찮다면 괜찮은 거야. 네가 안 무섭고 괜찮다면 된 거지. 이 고구마 되게 맛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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