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

by 진기유

제법 어둑해진 시간, 따뜻한 빛의 조명이 내리쬐는 아파트 정문을 통과하는데 나무 사이에 높게 걸린 플래카드가 눈에 들어온다.


재건축 업체 선정의 투명성 촉구

조합장의 임시총회 강행 거부


두 건설사를 후보로 올려두고 아파트 내에서 두 갈래로 파가 나뉘었다. 나는 아무 상관이 없는 입장이니 강 건너 불구경하듯 지내고 있다. 제법 쌀쌀해진 날씨에 트렌치코트 자락을 나부끼며 울퉁불퉁한 아스팔트를 걸었다. 흔들거리는 보도블록을 지나 건물 1층에 들어왔다. 엘리베이터 안의 게시판에도 이미 몇 개월 전부터 재건축 회의에 대한 게시글이 붙어 있었고, 종이 위에 누군가가 반격의 의미로 공격적인 문장을 휘갈겨 쓰는 등 제법 살벌한 대치가 이어지고 있다. 나는 과연 언제까지 이 집에 있고 싶은 걸까, 언제까지 있을 수 있을까, 내가 먼저 방을 뺄까 아니면 재건축이 들어간다고 이주 명령이 나오는 게 먼저일까.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생각은 그것뿐이었다.

11층에 내려 긴 복도를 향해 몸을 튼 순간, 위화감을 느꼈다. 복도 저 끝, 언제나 비어 있던 그 경치 속에 사람의 형체가 있었다. 집에 들어가지도 않고 이쪽으로 걸어오지도 않고, 마치 나쁜 짓을 하다 들킨 것 마냥 엉거주춤하는 모양새가 수상했다. 잠시 놀라 발걸음이 멈췄지만 상대가 이쪽으로 움직일 기미가 없었기에 망설이다가 걸음을 떼었다.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울리며 집을 향해 걸어가자, 상대는 잠시 내 행동을 살피더니 더 뒤로 물러나 아예 비상계단으로 내려가 몸을 숨겼다. 집 현관문 앞에서 멈춰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려다가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더니 휙 숨는 머리통이 보였다. 대체 뭐 하는 사람이기에 저기서 저러고 있는 걸까. 나를, 아니면 이 집을 염탐하는 걸까? 의심이 뭉게뭉게 피어올라 열쇠를 주머니에 도로 집어넣고 발소리를 죽이고 비상계단 쪽으로 걸어갔다. 나를 피해 숨어있던 사람은 내가 나타나자 화들짝 놀라서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전혀 특이할 것이 없어 보이는 중년 여성이었다. 바람이 휙 불자 향수 냄새가 풍겨왔다. 그녀는 난감한 표정으로 자기 얼굴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돌렸다.

“여기서 뭐 하세요?”

“아, 여기 저, 그, 만날 사람이 있는데, 그······. 아, 저 여기 주민이에요!”

“주민분이 왜 집에 안 가고 복도에서 이러고 계세요?”

“저, 아,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데······. 저 수상한 사람 아니에요.”

“1101호 분 기다리는 건가요?”

“1101호? 1101호가 어디야, 아, 저 집? 아니에요.”

“그럼 왜 1101호 앞에 있다가 이젠 이 계단에 서 계시는데요?”

“저 수상한 사람 아니래도요? 아가씨는 몇 호 사는데요? 저 그냥 놔두세요, 수상한 사람 아니니깐!”

“수상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말만 듣고 어떻게 알아요? 복도에 서 있다가 계단으로 숨는 사람 보고 누가 수상하게 생각 안 하겠어요?”

목소리가 커져서 복도 벽과 층계참 사이에서 소리가 왱왱 울렸다.

“아휴, 아가씨, 나 수상한 사람 아니에요. 지금 친구 기다리고 있어요.”

“친구가 몇 호 분인데요?”

대답 없이 긴장한 얼굴로 입술을 꼬기만 한다.

“아주머니, 저랑 경비실 가실래요?”

“경비실? 경비실에 왜요?”

“주민이시라면서요? 경비아저씨가 아시는지 확인해 봐야죠.”

“아휴, 정말. 나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그러니까, 이상한 사람 아니면 같이 당당하게 경비실 가시자고요!”

그때 덜커덕 달그락 하면서 낡은 철제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기유 왔니?”

할머니 목소리였다. 돌아보니 저만치 앞에서 현관문을 잡고 선 할머니가 길을 잃었다가 엄마를 찾은 아이 같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 방향에서 집을 쳐다본 건 처음이라 제법 생경한 느낌이었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는 착각이 일었다. 다시 고개를 돌려 수상한 여자를 살폈다. 그녀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서 있었다. 나는 몸을 돌려 할머니 쪽으로 다가갔다. 할머니가 길을 비키듯 자세를 틀자, 집 안쪽에서 사람들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에 누가 있어요?”

“으응, 그게······.”

현관문을 벌컥 열자 집안에 중년 여성 두 명이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식탁에 둘러앉아서는 나갈 생각이 없이 누가 왔나 목을 빼고 보고 있었다. 할머니한테 누구냐는 눈짓을 하자 할머니가 작게 속삭였다.

“저 여편네들이 억지로 들어와서는 도통 나갈 생각이 없어.”

내가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가자 그 두 명은 앉은 채로 싹싹하게 말을 걸어왔다.

“손녀분인가 보다.”

“회사 갔다가 오는 거예요?”

내가 대답 없이 쳐다보기만 하자 둘은 눈빛을 주고받더니 다시 나를 향해 시선을 들었다.

“누구세요?”

“아, 우리도 여기 주민이에요. 할머니께 설명드릴 게 있어서 왔는데.”

바깥의 여자가 하는 말이랑 똑같았다. 뒤따라 들어온 할머니의 표정은 영 시원찮았다. 잘못을 하고 혼나기 직전의 아이처럼 잔뜩 겁먹은 표정이었다.

“할머니, 이 분들한테 설명 들으실 거 있어요?”

“설명은 다 들었어. 더 들을 거 없어.”

앉아 있는 여자들은 목소리를 높여 말하기 시작했다.

“아유, 아직 다 안 들으셨어요. 자, 여기 아까 설명하려고 했던 부분부터 말씀드리자면······.”

여자가 펼친 종이에는 아파트 조감도가 들어가 있었다.

‘조합이구나.’

나는 재건축조합이라는 것은 원래 같은 단지 주민이었던 사람들이 역할을 맡아 단결하여 일을 착착 진행시키는 성실한 모습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반기지 않는 사람 집에, 그것도 어르신 집에 밀고 들어와서 눌러앉아 강제로 설명을 하는 모습이라니.

그때, 잠그지 않았던 현관문이 열리더니 비상계단에서 실랑이를 벌였던 여자가 들어오려 했다. 등줄기로 소름이 쫙 끼치며 지나갔다. 서둘러 현관으로 달려가 팔을 뻗어 신발장을 잡고 벽을 쳤다.

“뭐 하시는 거예요?”

“네?”

“왜 들어오시는 거냐고요. 아까는 친구 기다린다고 하셨잖아요.”

여자는 고개를 빼고 안쪽의 지원군에게 눈빛을 보냈다. 부엌에 있던 여자들이 다시 소리를 높였다.

“들어와!”

“어르신, 괜찮죠? 지금 밖에 춥잖아요.”

살짝 무서운 느낌마저 들었다. 고개를 돌려 할머니를 보니 미간을 찌푸리고 바닥만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 불편하지만 아무 말도 못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다 눈을 들어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 이제는 아예 나에게 모든 걸 맡긴다는 표정이었다. 하는 수 없었다. 내가 보호자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정말 ‘보호’하는 보호자.

“다들 나가 주세요.”

갑자기 집안이 조용해졌다. 앉아있던 여자들은 별 일이라는 듯 서로 눈짓을 하기만 할 뿐 전혀 일어날 기미가 없었다.

“나가 주시라고요. 할머니 저녁 식사 하실 시간 지나고 있어요. 불편해하시는 거 안 보이세요?”

몇 초가 흘렀을까. 정적이 몇 초 흐른 뒤 여자들은 서류를 챙겨 일어나 현관으로 다가왔다. 문간에서 기다리던 여자와 세 명이 복도로 내려섰다가 다시 몸을 틀고 집 안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 그러면 손녀따님도 설명 좀 들을래요? 우리가 저기, 선물도 갖고 왔는데.”

내가 아무 말 없이 눈을 마주치고 서 있으니 여자는 곧 시선을 돌렸다. 세 명은 드디어 발길을 돌렸다.

문을 걸어 잠그고 들어오자 할머니는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어휴, 여편네들. 징그럽게도 안 가고 말이야. 내가 아주 난처했어요. 그러고 있는데 복도에서 딱 기유 구두 소리가 나는 거 있지. 그런데 한참을 안 들어오기에 잘못 들었나 했더니, 말소리가 들리길래 열고 나가 본 거야.”

“네······.”

나도 컵을 집어 들고 물을 따라 들이켰다. 잠시 보호자의 입장이 되어 굳센 척했지만, 살면서 엄마 같은 중년의 여자를 보고 소름이 끼치는 기분을 느낀 게 처음이라 적잖이 당황스러운 기분이었다. 내가 같이 안 살고 있었으면, 할머니가 혼자 계셨으면 이런 때 곤욕을 치르고 계셨겠구나 하는 생각도 스쳤다. 식탁에는 아까 사람들이 놓고 간 건설사 자료와 주방용품 선물이 놓여 있었다. 두 건설사로 패가 나뉘어 앞다투어 주민들에게 투표를 부탁하고 다니는 것이었다. 여럿이 와서 한 명이 밖에서 망을 보고 있는 건 더 이상 ‘부탁’이 아니라 ‘협박’에 가까운 게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나 혼자였다면 아까처럼 행동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할머니가 내게 ‘어떻게든 해 달라’라는 마음으로 의지하고 있는 게 느껴져서 가능했던 걸지도. 그런 생각을 하니 할머니의 행동을 짜증스럽게 느꼈던 최근의 일들이 떠오르며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저번처럼 다쳐서 오셨는데 집이 텅 비어 있다면 얼마나 외로우실까, 그런데 내 말에 귀를 닫고 고집을 피우셨던 건 정말 답이 없었다, 오늘 같은 때도 내가 없었다면 지금도 붙들려서 듣고 싶지도 않은 설명을 듣고 계시겠지, 그래도 부엌의 신문지는 제발 치워 주셨으면.


선물 받은 주방용품을 다용도실로 들고 가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으며 한없이 어깨가 처지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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