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 신문, 갈등

by 진기유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묶으며 출근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열린 내 방 창문과 현관문에는 아침의 밝은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멀리 아래쪽에서 작은 소리부터 시작한 “쌔애애액” 소리가 점점 커졌다. 반가운 나머지 화장하던 분주한 손을 멈추고 거울 속 나와 시선을 맞췄다.

‘매미 운다!’

한껏 올라간 눈썹과 입꼬리. 올해 들은 첫 매미소리다. 어젯밤, 잠들기 전 ‘매미가 울어야 여름이지, 아직은 여름보단 장마철일 뿐이야’라고 생각했었다. 마치 그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매미가 아침부터 울기 시작한 것이다. 매미소리를 들으면 초등학생 때 뛰놀던 동네가 떠오르며 추억에 잠기게 된다. 그래봤자 도심 속 아파트단지와 그 주변 일대에 불과한 공간이지만 나무가 많았고,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거나 술래잡기를 하다가 목이 말라 1층에 사는 아이 집에 우르르 몰려 가 냉장고에서 시원한 보리차나 음료수를 꺼내 마셨을 때의 환희에 가까운 기쁨이 아직도 생생히 떠오른다.


퇴근할 무렵에도 날은 밝았고, 아침보다 더 많은 매미의 합창을 들을 수 있었다. 저녁을 먹기 전, 거실 베란다에 서서 귀를 기울이고 있었더니 할머니가 다가왔다.

“뭐 하냐?”

“할머니, 매미소리 들리시죠? 오늘부터 울기 시작했어요.”

“매미?”

할머니는 옆에 서서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쌔액 하는 매미 소리가 세상을 가득 메운 것 같은 시간이 잠시 흘렀다. 할머니도 들었다는 표시로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매미 소리를 들으면 이상하게 옛날 생각이 나.”

“어? 할머니도요?”

내가 튀어 오를 듯이 놀라서 큰소리를 내자 할머니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몸을 움츠렸다.

“아유, 깜짝이야.”

“아이, 죄송해요. 할머니도 어릴 때 생각이 나세요? 매미소리 들으면?”

“그럼. 겨울이 가고 봄이 가고 이렇게 매미 소리가 들리기 시작할 때 특히 그렇지.”

그 말을 듣고 나니, 사람이라면 누구나 첫 매미소리를 듣고 어릴 적을 떠올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의 옛 기억은 어떤 배경과 어떤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을까. 할머니는 어디서 자랐을까.

“그거 아니? 매미들은 기가 막히게 정확한 시기를 알고 울기 시작하고 사라진다는 거.”

“어떤 시기인데요?”

“장마가 딱 끝나면 울기 시작해. 어제까지 장맛비 내리지 않았니? 무슨 약속이라도 지키는 것처럼 항시 저런다니까. 그리고 단풍이 시작되면 딱 그쳐.”

처음 알게 된 사실에 입술을 오므리고 감탄하게 되었다. 역시 할머니와 있으니 자연에 대해 배우는 게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

처음엔 이번만인 줄 알았다.


할머니가 식탁 위에 신문지를 깔았다. 해물탕이라도 먹는 건가 했지만 메뉴는 지극히 평범한 국과 반찬들이었다. 할머니께 신문지를 왜 까는지 여쭤봤더니 “내가 많이 흘리면서 먹잖니.”라고 하셨다. 할머니가 국물을 떠먹거나 반찬을 입으로 가져가며 많이 흘리는 건 사실이었다. 그래도 다 먹고 식탁을 한 번 닦으면 될 일인데, 행주를 빠는 것이 힘들어지셨나 싶었다. 그날 식사 후 내가 행주를 들려고 해도 닦을 필요가 없다며 호통을 치다시피 하고는 행주를 뺏어 들었다. 신문지 위에 분명 국물과 반찬 양념이 떨어졌었는데, 신문지만 치우고 닦지를 않다니,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날부터 점점 범위가 넓어져 일주일 즈음 지나자 내 밥그릇을 놓는 곳까지 신문지가 깔렸다.

“저는 신문지 없어도 되는데요. 저는 먹고 행주로 닦을게요.”

“응, 너는 별로 흘리지도 않잖아. 안 깔아도 되겠다.”

할머니는 신문지를 도로 가져갔다. 그랬다가 저편에 깔린 신문지를 1겹으로 넓게 펼치니 내 반찬 그릇이 애매하게 신문지에 걸치게 되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지나면서 신문지는 넓어졌다가 좁아졌다가를 반복하게 되었고, 한 달이 더 지나니 할머니가 신문지를 한 번 깔고는 하루 이상 재사용하기에 이르렀다. 저녁상을 차리는데 식탁 위의 신문지가 울고 있는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할머니, 이 신문 방금 까신 거예요?”

“으응.”

신문의 기사 내용을 보니 어제 본 내용이었다. 날짜는 그보다도 훨씬 이전 날짜였다. 할머니의 기억력에 문제가 생겼나 싶어 얼굴을 살폈으나, 누가 보아도 얼버무리는 모양새였다. 그 점에서는 다행이었지만 위생적으로는 전혀 안심이 되지 않았다.

“할머니, 이거 어제 까셨던 신문지 같아요. 새 걸로 바꿀게요.”

“그냥 놔둬!”

할머니는 식탁으로 다가섰다.

“네 자리 쪽에는 깔지도 않는데 왜 그러니?”

“눈에 들어오잖아요. 여기엔 양념 묻어서 굳은 자국도 있고. 이런 걸 보면서 어떻게 밥을 먹어요?”

“어디?”

따지듯 묻는 말에 그 부분을 가리켰다. 그걸 쳐다보는 할머니의 표정은 ‘이런 걸 가지고 야단이야’라고 주장하듯이 부루퉁하고 입가가 축 늘어져 있었다.

“보기 싫으면 새 종이를 그 위에 하나 깔아라? 이건 또 쓸 거니까.”

“예에?”

신문지는 차고 넘쳤다. 하루 치만 해도 몇 장인데, 매일 얼마나 쌓이는지 모른다. 아낄 것이 따로 있지! 부엌에 모아 둔 신문지를 들춰 새 신문지 한 장을 빼내어 식탁으로 걸어가는데, 식탁에 신문지를 깔고 밥을 먹는 일에 가담을 하는 듯해 유쾌하지 않았다. 신문지를 식탁에 얹으며 말했다.

“할머니, 식탁 닦는 게 귀찮으세요? 식탁 제가 닦을 때도 있잖아요. 왜 신문지를 깔 생각을 하셨어요? 너무 비위생적이에요.”

“너는 회사 가서 점심 먹지만 나는 여기서 먹으니까 하루에 세 번을 해야 하는 거야. 신문지를 깔아 두면 그만큼 안 해도 되니까 좋지.”

식탁을 닦고 행주를 빠는 게 귀찮으면, 그보다 더 복잡하고 시간이 걸리는 요리는 대체 어떻게 해 드신다는 말인지! 나는 한숨을 쉬면서 새 신문지 위에 밥그릇과 국그릇을 얹었다.


시간이 지나자 할머니는 신문지를 식탁 의자뿐만 아니라 싱크대와 조리대 아래 바닥에까지 깔기 시작했다. 부엌에 딸린 작은 방 문이 열려 있어 눈길을 돌리니, 그곳 바닥에도 깔려 있었다. 신문지 위에는 각종 곡식이 담긴 병과 밀폐용기, 쇼핑백들이 잔뜩 쌓여 있었는데 일부분에는 먼지가 소복이 쌓여 있기도 했다. 부엌에서 요리를 하려고 냉장고와 조리대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와중에, 바닥에 깔린 신문지가 미끄러져서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중심을 바로잡았다. 신문지를 들춰 보니, 그 밑에 매끈한 재질의 전단지가 있고 그 아래에 또 신문지가 있었다.

“하아······.”

신문지는 며칠 동안 깔려 있던 건지, 젖었다 말라서 우글우글 울고 있었다. 한숨을 쉬고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할머니가 왔다. 할머니께 방금 있었던 일을 알려드렸다.

“저도 위험하지만 이거 할머니도 위험해요. 애당초 신문지를 안 깔고 청소를 하면 될 일이고, 신문지를 깔고 싶다면 전단지는 꼭 빼고 까셔야겠어요.”

안전이 관련된 일이라 그런지 할머니는 맥 빠질 정도로 간단히도 ‘알겠어’라고 하셨다. 그 대답은 신문지가 아니라 전단지에 대한 것이리라. 암담한 기분을 억누르며 세입자의 신세를 되새겼다. 이 집에 오고 처음으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니, '나가야겠다'에 가까운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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