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르르르륵.
오랜만에 듣는 방충망 소리였다. 열린 방문 너머로 시선을 던지니, 햇빛 사이로 할머니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들어온 할머니가 고개를 돌리고 날 쳐다봤다.
“오랜만에 문 좀 열었다.”
벌써 이런 계절이 돌아왔구나. 일요일 늦은 오후의 나른한 집안 공기가 일순 상쾌해졌다.
“안 춥지? 추우면 닫고.”
“안 추워요.”
갑자기 그리운 공기가 바람에 실려온 듯했다. 눈을 감고 숨을 들이마셔 보았다. 멀리 아래쪽에서 들려오는 아이들 목소리와 여름이 다가오고 있는 냄새. 초등학교 시절이 그리워지는 향기였다.
악기 케이스에서 악기를 꺼내 조립하고 연주를 해 보았다. 이 소리가 복도로 무방비하게 빠져나가 이웃집까지 들릴 것이 우려되어 동작을 멈췄다. 방문을 닫으려고 몇 걸음 걸어가 문고리를 잡고 서니 부엌에서 이쪽을 바라보는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춥니? 현관문 닫을까?”
“아뇨. 악기 소리 때문에요.”
“그 소리가 어때서? 그냥 해.”
“저 아직 잘 못해서 연주가 아니고 소음이에요.”
“에이, 악기 소리 나니까 사람 사는 집 같고 좋은데 뭘.”
할머니는 씨익 웃고는 식탁 의자를 빼내 앉았다. 잠시 망설인 뒤, 방문은 그대로 놔두고 다시 악기를 들어 올렸다.
저녁을 먹는데 할머니가 옛날이야기를 시작했다.
“60년대에는 말이야, 소고기의 모든 부위가 한 근에 450원이었어.”
“부위에 차등이 없었다고요?”
“그렇다니깐? 그리고 콩나물은 한 소쿠리에 10원이었어.”
“10원······.”
할머니의 기억이 맞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물가가 크게 달라진 건 사실이리라. 내가 몰랐던 세상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상과 동일선상에 있었다는 것이 때때로 마법처럼 느껴졌다. 그 시대를 살았던 할머니가 지금 나와 같은 음식을 먹으며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있다. 이 묘한 느낌은 뭘까.
새삼 할머니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와 같이 살면서 연장자의 너그러움과 배려를 배울 수도 있었지만, 생각지도 못한 배움이 또 있었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독신의 삶이 어떤 것인지 한 공간에 살며 아주 현실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홀로 지내는 것은 고독하기도 하지만 경제적 여유가 있으니 도심 한가운데 아파트에 외따로 살고 있어도 지속적으로 연락 오는 지인이 있었다. 풍족하다는 것은 너그럽고 합리적일 수 있는 것이었고, 남이 자신을 싫어할 이유를 줄일 수 있는 것이었다. 마음 놓고 좋은 병원에 다니고 좋은 식재료로 밥을 지어먹고 몸을 돌볼 수 있는 것이었다.
내가 이 할머니와 지내며 달라진 건 무엇이 있을까. 신이 나서 말을 하려는 것보다는 잘 들어주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커졌고, 밖에서 어르신을 마주쳤을 때 해야 할 배려가 몸에 배었다. 가능하면 큰 소리로 또박또박 말하는 것, 옆을 지나갈 땐 놀라시지 않도록 속도를 낮춰서 부드럽게 지나가는 것, 어르신들의 사고능력을 무시하지 않는 것, 그들에게도 젊은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아는 것.
멍하니 음식을 씹으며 생각에 잠겨 있었더니 할머니가 안색을 살핀다.
“요즘에 회사 얘기를 별로 안 하던데, 바빠?”
미간에 주름을 잡고 크고 맑은 눈으로 심각한 표정을 짓고 나를 바라보는 할머니를 보자 갑자기 마음속에 ‘말하자’고 결심이 섰다. 할머니께는 다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숨김없이, 허세 없이. 나는 회사에서 겪었던 억울한 상황에 대해 말했다. 그와 같은 일이 길게 이어지지는 않았고 다시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간 듯했지만 억울한 일을 겪었다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었으니까. 할머니는 추임새를 넣으며 중간중간 말을 끊기도 했고, 뜬금없이 트림을 하기도 했지만 말하는 동안 응어리가 풀리는 기분이 되었다. 할머니는 한껏 감정이입하여 분개하시고는 이내 힘이 빠진 건지 무언가를 깨달은 건지 모를 조용한 분위기로 바뀌더니 양팔을 늘어뜨리고 의자에 온몸을 짓누르듯 기댄 채로 말하셨다.
“그래도 잘 참았다, 네가. 아무 말 안 하고 지나가길 잘한 거야. 너보다 윗사람 아니니. 사람들은 안다. 다 아니까 억울해하지 말고, 걱정하지 말고.”
그 말을 듣자 감정이 크게 소용돌이쳤다. 잠잠해지기 직전의 소용돌이라고 해야 할까. 내가 느꼈던 억울함과 분노가 소용돌이치며 날아가는 것 같았다. 탈무드에서 랍비를 찾아가듯, 전래동화에서 조언을 구하러 마을의 어르신을 찾아가듯 나는 그저 집에서 이 할머니께 말을 하면 되는 것이었다. 할머니께 감사한 마음을 가득 품고 웃으며 저녁을 마저 먹었다. 그 마음이 그 뒤로도 지속될 줄만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