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경멸하는 염세주의자

그녀의 이름은 세리

by 아쿠아신



당신은 누구입니까?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자, 저는 조금씩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하루에도 몇 번이고 삶의 무가치함에 대해 떠들어댔습니다. 이 세상의 부패함과 불평등에 분노했고, 탐욕과 거짓을 일삼는 인간들을 비난했으며, 심지어는 저의 존재마저 쓸모없다며 부정했습니다.


저는 그녀와 내가 분명하게 서로 다른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제지속적으로 '죽음에 이르러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교했지만, 저는 그에 반하는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저는 정말로 죽고 싶지 않았습니다. 한때의 젊음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고, 부모님을 슬픔에 빠트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죽고 싶어 환장한 사람이 있을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모든 생명체는 본능적으로 생존을 추구합니다. 이것은 진화의 메커니즘인 생명의 작동 원리이자, 자연법칙의 근원적인 흐름입니다.


그런데 그녀는 폭주기관차처럼 도무지 말을 멈추려 하지 않았습니다. 하루 온종일, 시도 때도 없이 결핍과 고통을 노래하는 그녀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녀가 쏟아내는 혐오와 비관, 죽음에 대한 충동을 억누르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는 수 없이 저는 그녀에게 저항하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내부에 사용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데, 그녀를 의식하면 할수록 우리 둘 사이의 경계는 점차 모호해져서, 저는 서서히 그녀의 사상에 동화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두려웠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그녀에게 완전히 잠식당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제겐 반드시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그렇게 찾은 결론은 역설적이게도 그녀의 존재를 정식으로 인정는 것이었습니다. 미친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저는 그녀에게 이름을 지어줬고, 그녀를 '세리'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일종의 타협이었습니다. 그녀가 자꾸만 제 영역을 침범하려 했기에, 마음 한편에 그녀를 위한 공간 일부분을 내어줌으로써 진정한 나를 지키려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야 알았지만, 이러한 방식은 저의 방어기제 중 하나인 *해리가 작동한 결과였습니다.


*해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심리적 방어기제 중 하나로, 극심한 스트레스나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이 발생할 때, 이를 의식에서 분리하여 고통을 줄이려는 무의식적인 반응을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해리 현상이 병리적으로 심각해질 경우 '해리성 정체감 장애(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 '해리성 기억상실 (Dissociative Amnesia)', '이인증/비현실감 장애 (Depersonalization/Derealization Disorder)'로 발전될 수 있다.


일단 알아차린 순간부터 더 이상 외면할 수는 없었습니다. 애써 부정하려 해도 소용없는 일입니다. 그녀는 인간의 형상을 쫓는 그림자처럼, 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저는 그녀와 대화를 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녀가 누구인지 알 수 없으므로, 직접 물어보는 편이 가장 합리적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제가 무의식을 본격적으로 탐구하게 된 시작이 되었습니다.




Part 1. 숨은 나를 찾아서

※ 지속적으로 글을 다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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