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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해인 Oct 11. 2024

8. 결혼도 중독된다.

술, 마약, 포르노, 그리고 결혼?

 #진강석 - 거울 보는 중

 면도를 마친 진강석은 화장실 거울에 다양한 각도로 얼굴을 관찰한다.


 광고에서는 최첨단 기술이 도입된 6중 날이 피부 표면의 미세한 굴곡을 따라 알맞게 밀착하여 수염을 말끔히 잘라내는 것으로 모자라 이십 대 시절 미모로 되돌려준다고 했는데 어림도 없다.


 컵라면으로 대충 배를 채운 그는 서둘러 병원으로 향한다.





 “많이 바쁘실 텐데 죄송합니다.”


 진강석이 안락하지 않은 안락의자에 자리를 잡는다.


 “아니에요. 어차피 비어있는 시간대였어요. 아침 아홉 시부터 정신과 상담을 받으러 오는 사람은 거의 없거든요.”


 오선아 정신과전문의는 온수가 담긴 투명한 텀블러를 마치 아름다운 도자기인 양 어루만지며 물끄러미 바라본다.


 평소와는 달리 커다란 렌즈가 박혀있는 금테안경을 착용한 모습이다.


 안경이 크고 길게 찢어진 매력적인 눈을 가로막는 것처럼 보여 외려 매력을 반감시키는 것 같기도 하다.


 “안경을 쓰셨네요? 시력이 원래 안 좋습니까?”


 변화를 알아챈 진강석이 가볍게 묻는다.


 “아, 아니요.”


 오선아 박사가 멋쩍게 안경을 치켜올리며 덧붙인다.


 “도수 없는 안경이에요.”


 멋으로 썼다는 말은 굳이 하지 않는다.


 “아, 네에. 그렇군요.”


 “이따 오후에 다시 출근해야 한다고 하셨던 거 같은데요?”


 박사가 업무 이야기로 가볍게 말문을 연다.


 “오늘 새벽에 근무하신 거 아니세요?”


 “맞습니다. 아까 일곱 시 넘어서 퇴근했어요.”


 “밤새 일한 사람치고는 지나치게 쌩쌩해 보이세요.”


 “매일 피곤한 사람도 있으면 매일 쌩쌩한 사람도 있어야죠.”


 “요새도 수면에 대한 욕구는 없으세요?”


 “네, 전혀요.”


 오선아의 표정이 한결 심각해진다.


 “그거 큰일이네요. 이러면 불가피하게 약물을 써야 할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처음 상담받을 때부터 말씀드렸던 거 같은데요. 수면제가 필요하다고―”


 오선아가 의도적으로 진강석을 말을 자른다.


 “파출소 업무 특성상 수면 패턴이 망가질 수밖에 없다 보니 불면 증상이 더 심해지는 것 같네요.”


 “네, 아무래도 그렇겠죠? 그래도 선생님 말씀대로 눈감고 가만히 누워있기는 해요. 그렇게 해서 얌전히 잠든 적은 손에 꼽지만.”


 진강석은 남의 일을 말하듯 무관심하게 군다.


 “잘하셨어요. 그렇게라도 해야―”


 “와, 칭찬받았다. 신난다.”


 말을 자르고 비꼬는 듯한 진강석의 태도에도 오선아 박사는 차분하고 진지한 목소리로 질문을 이어간다.


 “상담을 다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 ‘이런 모습이면 좋겠다.’ 하는 게 있으실까요? 본인이 원하는 스스로의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요?”


 박사의 질문에 진강석은 지겹다는 듯 천장을 응시한 채 무신경하게 답한다.


 “지난번 상담 때까지 세 번, 오늘만 두 번째긴 하지만, 너그러운 마음으로 한 번 더 말씀드리면요. 수면제를 두둑이 챙긴 제 모습을 바라게 되네요. 기왕이면 모스카토 다스티랑 잘 어울릴 만한 것이면 좋겠습니다.”


 은은한 단맛이 도는 모스카토 와인은 진강석의 정신건강 유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물론 좋은 쪽 안 좋은 쪽 둘 다에 해당했다.

 주로 안 좋은 쪽이긴 하지만.


 “지난번에는 위스키라고 하셨는데요.”


 오선아 박사가 발끈하며 응수한다.


 뒤통수를 의자에 기댄 채로 삐딱하게 고개만 돌린 진강석이 의사를 쳐다본다.


 그의 어조는 듣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로 모질고 날카롭다.


 “그래도 기억하시네요? 저는 그 자리에서 듣고 바로 흘려버리는 줄 알았는데.”


 “다시 한 번 말씀드리면, 수면제는 술이랑 같이 섭취하시면 절대 안 돼요. 최악의 조합입니다. 그러니 와인도 마찬가지고요. 경찰과 범죄자처럼 도저히 융화될 수 없는 두 극점 같은 존재에요. 경찰이시니 잘 아시잖아요.”


 의사는 한국말이 서툰 외국인을 대하듯 인내심 있게 말한다.


 “오, 의외로 똑똑하시네요. 바로 알아들을 줄 몰랐어요.”


 치료는 고사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상담에 진강석의 말이 곱게 나올 리 없다.


 지인의 권유만 없었다면 이런 상담 같은 건 받지 않았을 것이다.


 “모스카토가 와인 종류인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그건 그렇고, 똑똑하다는 말은 의사 면허 취득하고 처음 들어보네요. ‘의외로’ 똑똑하다는 말은 난생처음 들어보고요.”


 자칫 기분이 상할 수 있는 발언에도 오선아 박사는 너그럽고도 자연스러운 환자 응대용 미소를 만들어낸다.


 “그런 것까지 알고 계시다니. 정말 놀랍네요. 칭찬해드릴까요?”


 진강석이 그렇게 대꾸한다. 전혀 놀랍지 않다.


 “아니요.”


 “근데 왜 안 어울린다고 하는 거예요? 와인도 몸에 좋고, 수면제도 몸에 좋잖아요. 몸에 좋은 것들을 같이 먹겠다는데 그게 왜 큰일이라는 거죠?”


 잘못된 상식을 바로잡는 의사다운 근엄한 얼굴로 오선아가 말한다.


 “……지금 억지 부리고 계신 거, 알고 계시죠? 수면제는 몸에 좋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만 쓰는 최후의 수단 같은 거예요. 그리고 상식적으로 술이랑 약은―” 


 “선생님이 같이 먹어봤나요?”


 상담에 그다지 협조적이지 않은 환자가 대뜸 묻는다.


 “전 수면제를 먹지 않아요.”


 “이야, 세상에 부러워라. 좋겠네요.”


 진강석이 퉁명스럽게 대꾸한다.


 “아뇨. 그런 의도로 한 말은―”


 “와인이 뭔지는 아시죠?”


 그렇게 물은 진강석이 의자 팔걸이 부분을 검지 끝으로 톡톡 내리친다.


 “아, 정말 순수한 의도로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거니까 오해는 마세요. 너무 똑똑하셔서 까먹었을까봐 묻는 거예요.”


 “당연하죠. ……평소에 즐겨 마시진 않지만.”


 오선아 박사가 속으로 한숨을 내뱉는다.


 지난 3년 동안 나름 다양한 케이스의 환자들과 상담을 진행해왔다고 자부했지만 이렇게까지 기운을 뺏긴 경우는 처음이다.


 차라리 악을 내지르며 상담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가 나을 것 같다.


 “만약 주종이 맥주나 소주라고 하면 실망할 거 같고, 막걸리라고 하면 비명이 터져 나올지도 몰라요. 음주에 취미가 없다고 하면 상담이고 뭐고 당장 이 방을 뛰쳐나갈지도 모르겠네요.”


 진강석이 말한다.


 “……다행이네요. 실망만 하시면 될 거 같아요.”


 재미없다는 표정으로 진강석이 몸을 일으킨다.


 그러자 오선아 박사가 묻는다.


 “화장실 다녀오시게요?”


 “네.”


 “네, 다녀오세요.”


 “근데 하나 참고하시라고 말씀드리면, 저는 집에 있는 화장실만 써요.”


 “…….”


 환자의 어이없는 배변 습관에 오선아는 헛웃음이 나온다.


 “사는 게 아주 피곤하시겠어요.”


 “꼭 그렇지도 않아요. 그럼 저는 이만.”


 20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나눈 대화에 진이 다 빠져버린 오선아 박사였지만 나름 강수를 띄운다.


 “네, 들어가세요.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같은 시간에 오시면 되겠네요.”


 진강석은 의사의 지극히 당연한 요구에도 터무니없는 부탁을 받은 사람처럼 저울질하는 눈치다.


 우뚝 서서 오선아를 내려다본다.


 “그건 좀 힘들 것 같네요. 말씀드렸다시피 시간 없어서요. 오늘 내일 쭉 외근이라.”


 “내일도 오늘처럼 금방 끝나지 않을까요? 내일도 아주 비협조적으로 나오실 거잖아요?”


 상담실 문을 마주보고 서있던 진강석이 피식 웃는다.

 상대방에 대한 호의라기보다 예의상 억지로 만들어낸 웃음이다.


 “그 말, 예전에 제가 용의자들 심문할 때 자주 쓰던 말인데 직접 들으니까 되게 불친절한 것 같네요.”


 오선아도 철저히 계산적인 미소로 받아친다.


 “아니면 제가 강 소장님한테―”


 “내일 뵙죠.”


 진강석이 차갑게 대답하더니 문을 벌컥 열어젖힌다.


 그리고는 문을 닫고 상담실을 나서기 직전, 오선아의 안경을 가리키며 다시 웃는다.

 이번에는 대놓고 비웃음이다.


 “근데 선생님, 안경은 안 쓰시는 게 낫겠어요. 저보다 한 살 어리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사실 아까 보자마자 누나라고 할 뻔했어요. 뭐, 별다른 뜻은 없습니다. 그냥 그랬다고요.”





 #양태호 - 출근

 운영 중인 금은방으로 출근을 마친 양태호는 개인 사무실로 들어간다.

 

 문을 마주보고 앉을 수 있도록 체리나무 원목책상과 사무용 의자를 배치했고, 사무실 중앙에 놓은 손님접대용 책상을 빙 둘러 값비싼 천연소가죽소파를 뒀다.


 손님 자리에서는 볼 수 없도록 시야각을 각별히 신경 쓴 위치에는 스테인리스 재질의 명판과 크롬도금 핸들, 강화콘크리트 외벽을 자랑하는 BSBIS-BA720 독일제 금고가 놓여있다.


 1,443,000원(배송비 별도)을 주고 해외 직배송으로 구매한 것이다.


 60만 원을 추가하면 지문 잠금장치를 추가로 설치할 수 있다고 했지만, 사양했다.


 배보다 배꼽이 큰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양태호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금고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지갑에서 열쇠를 꺼낸다.


 면봉 크기의 열쇠를 기특한 눈으로 바라본다.


 현대 열쇠가공 기술의 집약체라고 할 수 있는 이 열쇠로 말할 것 같으면, 현존하는 기술로는 복제가 불가능하며 티타늄과 금을 3대 1 비율로 배합해 만든 금속으로 제작된 것이다.


 여기에다 그는 15만 원을 추가하여 열쇠 옆면에 본인 이름을 양각으로 새겼다.


 금빛 열쇠를 동원해야 열 수 있는 금고에는 일일이 설명하기도 벅찰 만큼 많은 금은보화와 그것들보다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거래장부가 보관되어있다.


 25년 경력을 자랑하는 마약 사범인 양태호는 장부에 그간의 거래내역을 빠짐없이 기록했다.


 그 기록을 열람하는 것만으로 자사 제품이 누구의 코와 입과 혈관 속으로 들어갔는지 파악할 수 있도록 상세하게 작성하는 꼼꼼함도 잊지 않았다.


 다른 자영업자들이 세금 납부에 투자할 시간을 모조리 장부 정리에 투자한 만큼 가히 완벽한 수준의 기록물이었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려온다.


 “사장님, 중근입니다.”


 “어, 잠깐만!”


 양태호가 훑어보던 장부를 제자리에 놓는다.


 “들어와.”


 사무실 문이 열림과 동시에 금고가 굳게 닫힌다.


 황중근은 성큼성큼 양태호 사장의 개인 책상 앞에까지 걸어가 공손히 묻는다.


 “준비 다 됐습니다. 영업 시작할까요?”


 “어, 그래. 또 하루를 시작해봐야지?”


 여느 때처럼 상쾌한 아침에 양태호가 기분 좋은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린다.


 반면, 어찌된 영문인지 끝날 기미가 안 보이는 하루에 서서히 정신이 혼미해져가는 황중근은 죽을 맛이다.


 “오늘 예약 손님은?”


 사장의 질문에 스케줄 관리를 도맡아 처리하고 있는 황중근 이사가 힘이 다 빠진 목소리로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오전에 두 팀, 오후에 다섯 팀 있습니다. 그중에 재혼 커플도 두 팀 있어요.”


 “……그래?”


 대뜸 양태호가 궁금해 죽겠다는 얼굴로 부하 직원에게 묻는다.


 “근데 결혼 그거, 좋으니까 그렇게들 기를 쓰고 하는 거겠지? 두 번, 세 번, 몇 번씩 하는 사람들도 있잖아.”


 “……아무래도 그렇지 않을까요?”


 결혼은커녕 3년째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못 해본 황중근이 시무룩하게 대답한다.


 그는 내심 결혼을 포기한 상태다.


 몇 안 되는 그간의 연애 경험을 통해 그는 곰처럼 듬직한 체형의 남자가 이상형이라는 여자들의 말이 순 개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황중근은 곰 중에 곰이었다.


 “가만 보면, 이 마약도 그래.”


 갑작스레 시작된 양태호의 깨달음 때문에 해외출장까지 다녀온 직원의 퇴근이 늦어진다.

 사장의 혼잣말이 이어진다. 


 “한 번 해본 놈들은 약에 뇌가 절여지거나, 핏줄이 다 터질 때까지 하는 거 보면 마약이라는 게, 참 끊기 어렵나봐?”


 이윽고 양태호는 ‘마약은 결혼이다.’ 라는 다소 괴상한 결론에 다다른다.


 “처음이 어렵지, 그다음은 쉽다는 점에서요?”


 황중근이 나름대로 그 의미를 유추해본다. 비약이 심한 감이 있지만, 의미 자체로만 보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조금이라도 서둘러 대화를 마치고 퇴근하고 싶다는 욕구가 지배적이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근데 내가 봤을 때, 마약보다 더 끊기 힘든 게 바로 야동이야.”


 급진적인 주제 변경에 황중근은 당황한다.


 “……야, 야동이요?”


 “중근이 너는 그런 적 없냐? 하루 종일 밖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진짜 열심히 일하고 진이 다 빠진 상태로 집에 왔어. ‘와, 나 오늘도 정말 열심히 살았다. 장하다!’ 이런 생각이 막 들어. 이제 깨끗이 씻고 잠만 자면 아주 깔끔하고 보람찬 하루가 되는 거지. 근데! 꼭 그 타이밍에 야동을 본다니까? 나만 그런가?”


 방콕 출장 당시 하루 일과를 들킨 것 같아 황중근은 조금 부끄러워진다.


 “뭐, 좋아. 자위행위가 범죄도 아니고, 충분히 할 수 있지. 근데 이게 적절한 시간에 딱 기분 좋게 마무리되면 얼마나 좋아. 근데 그게 아니거든. 워낙에 매일매일 야동을 보다보니까 눈은 쓸데없이 높아져서 만족이 잘 안 되는 거야. 그러면 뭐야? 기나긴 여정을 시작하는 거지. 조금이라도 내 취향에 맞는 영상 찾겠다고 요리조리, 시간은 시간대로 잡아먹고, 기운은 기운대로 쏟아내고. 컨디션 다 망가지는 거야. 나만해도 야동 찾다가 늦게 잔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니까?”


 “……근데 사장님, 요새도 야동을 보세요?”


 차마 호기심을 참지 못한 황중근이 질문한다.


 예순다섯이라는 지긋한 나이에 만족스러운 음란 영상을 찾아 인터넷을 방황하는 모습이 도저히 상상되지 않는다.


 “그럼 안 봐?”


 양태호 사장이 그런 우문()은 마약 사업 시작하고 처음 듣는다며 상무이사를 나무란다.


 “그렇구나…….”


 황중근은 30년 후의 모습을 미리 보는 것 같아 우울해진다.


 “분명 오늘 밤에도 아무런 생각 없이 보게 되겠지? 지겹다 지겨워.”


 양태호가 다 부질없다는 듯이 한숨을 찍찍 뱉는다.


 “자자, 돈이나 벌자.”


 오전 10시, 종로3가 한적한 골목에 위치한 <태양금은방>이 영업을 시작한다.


 주업은 결혼 예물이나 기타 귀금속 세공 제품 판매, 부업으로는 마약 수출입과 알선 및 거래ㆍ운반이 되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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