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해인 Oct 24. 2024

21. 과거가 우리에게 바라는 것(完)

나를 잊으세요

 #질의응답 중

 마약배달원1과 2는 조직원들과 다른 유치장에 감금되어 있다.


 배달원2가 말한다.


 “내가 얼핏 들었는데, 우리들은 잘하면 징역까지는 안 살 수도 있대. 아무리 마약 관련 범죄여도 변호사 잘 쓰고 하면 징역 대신 사회봉사로 대체할 가능성도 있다더라. 게다가 우리 둘 다 초범이니까.” 


 “그래? ……하, 씨발, 얼마나 잘해야 될까? 존나 잘하고 싶다!”


 “그러게. 잘 풀려야 할 텐데.”


 “근데 최소 봉사활동은 해야 된다는 거네. 귀찮긴 하겠다. 씨발!”


 배달원1은 긴장과 걱정을 덜어내는 나름의 방법인지 연신 욕을 지껄인다.


 “욕은 하지 말고……, 뭐가 됐든 감옥 가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사회봉사 그거,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할 것도 없어. 그냥 일주일에 몇 번 지정된 곳으로 가서 뉘우치고 있다는 의미로 얼굴 비추고 대충 일하는 척만 하면 돼. 나 고등학생 때 해봤잖아.”


 “너 이 새끼, 어려서부터 열심히 살았구나?”


 배달원1이 감탄한다.


 “보통 일주일에 몇 번씩 가야 되는데?”


 “음……, 일곱 번?”


 “씨발!”


 사무실을 지키고 있던 경찰이 유치장에 갇힌 범죄자들을 향해 외친다.


 “밥 먹어! 다들 짜장면 좋아하지? 밀가루 알레르기 같은 거 있는 사람?”


 다행히 마약특별법 위반으로 검거된 범죄자 중 밀가루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는 자는 없지만, 애석하게도 밥을 제대로 먹을 수 있는 자가 몇 없다.


 다들 빠짐없이 한쪽 팔이 부러져 부목을 대고 있기 때문이다.


 우연인지 고의인지는 당사자만 알겠지만, 범인 검거 과정에서 오른손잡이는 오른손을, 왼손잡이는 왼손을 부러트리는 섬세함을 보였다.


 그동안의 묵언수행으로 말이 그리웠던 김종수가 손을 번쩍 든다.


 “저 형사님, 사무실에 혹시 포크는 없을까요?”


 “저희 나중에 후유증 같은 거 생기면 어쩝니까?”


 조직원12가 걱정과 짜증이 한데 섞인 톤으로 중얼거린다.


 “경찰한테는 고소 같은 거 못하나?”


 유치장 내에 있는 다른 조직원들이 한 마디씩 거들며 바짝 열을 올린다.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자들이 태반이지만 기본적인 눈치는 있는지 현재 머물고 있는 장소에 맞게 수위가 한층 약해지고 단어 선택이 보다 순화된다.


 그렇지만, 조직원들의 기대와는 달리 어찌나 기술적으로 패는지 여태 진강석에게 얻어맞고 부상 후유증을 겪는 범죄자는 단 한 명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예정이다.


 오히려 부러진 팔다리뼈가 전보다 훨씬 튼튼해지는 효과를 봤단다.


 “형사님? 집에 전화 좀 해도 될까요?”


 유일한 양손잡이였던 조직원3은 멀쩡한 손으로 일찌감치 식사를 마친 상태다.  


 “집에?”


 “저녁 같이 못 먹는다고 알려주려고요.”


 “집에 누가 있는데? 어머니?”


 “이 친구 어머니는 어렸을 때 돌아가셨어요……. 뇌종양을 앓으셨거든요.”


 옆에 있던 조직원5가 안타까운 얼굴로 대신 설명한다.


 “아, 미안합니다.”


 형사는 재빠른 사과 후 되묻는다.


 “그럼 누구? 혹시 결혼하신 건 아니지?”


 “……예? 제가 기혼이면 뭐가 달라질까요? 혹시 교도소에서 월드컵을 한 번만 봐도 되나요?”


 “형량은 제가 결정하는 게 아닙니다.”


 그 문제만큼은 논의의 여지가 없다는 듯 형사가 단언한다.


 “그럼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 교도소로 가나?”


 벽에 기대어 무기력하게 비닐을 뜯지 않은 짜장면을 응시하던 양태호가 불쑥 묻는다.


 그는 화려한 범죄 경력이 무색할 정도로 겁과 걱정이 많은 편이고, 지금까지 교도소에 수감된 적이 그리 많지 않았다.


 엄밀히 따지자면 한 번도 없었다.


 사무실 구석에 앉아 꾸역꾸역 조서를 작성하던 진강석이 끼어든다.


 교도소 생활에 대해서는 어떤 경찰보다 상세히 알고 있는 그는 한마디로 요약한다.


 “새로 입학한 학교만큼 적응이 어렵고, 군대만큼이나 생활하기 빡빡한 곳이지.”


 “전학 간 학교에서 적응 잘하고 군대 생활도 수월하게 한 사람은요?”


 어릴 적부터 적응이라면 이골이 난 조직원11이 묻는다.


 “그래도 교도소는 쉽지 않을 거야.”


 “밥은요? 진짜 콩밥 나와요?”


 좌중의 적극적인 질문세례에 진강석은 내심 흐뭇해하며 교도소의 식사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한다.


 물론 교도소라는 곳은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가게 되는 장소이지만, 엄연히 국가에서 운영하는 곳이기 때문에 철저한 관리 속에 숨 쉬고 있고 꼼꼼한 운영방침에 의거한단다.


 그렇다 보니 식사 또한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단다.


 보통 오전 7시에 아침식사를 하게 되는데 사람에게 영양학적으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아침은 주로 콩밥이 나온단다.


 점심은 오전 11시 30분, 점심 직후에는 직업훈련이나 각종 종교행사, 또 체육활동처럼 많은 움직임이 요구되기 때문에 수감자들의 원활한 컨디션 관리를 위해 특별히 콩밥이 제공된단다.


 마지막으로 저녁시간은 오후 5시 30분.

 수감자들은 오후 9시라는 비교적 이른 시간에 잠을 취하기 때문에 수면의 질을 높이는데 탁월한 효능을 보이는 콩을 이용한 밥을 섭취할 수 있게 한단다.


 “…….”

 “…….”

 “…….”

 “…….”

 “…….”

 “…….”

 “…….”


 전직 교도관의 입을 통해 들은 전문성 있는 답변은 정상 참작을 넘어 무죄를 꿈꾸던 마약범죄자들의 전망을 암흑상태로 만든다.


 양태호 사장이 이끄는 조직에게 좋은 소식이 있다면 그들이 저지른 마약범죄에 대한 형량이 비교적 가벼울 것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교도소에서 월드컵은 한 번만 보면 되었으니, 그 이유는 초범이었기 때문이다.


 사업 규모와 수법에 비해 그들의 전과는 예상외로 깨끗했고, 민중의 지팡이에게 세게 얻어맞아서인지 반성의 기미가 아주 잘 보였다는 게 판사의 판단일 것이다.


 또 그들은 감방생활을 하는 것으로 천정부지로 올라가는 주거비용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다가 덤으로 식비와 사계절마다 드는 의류비용까지 아낄 수 있는데, 그 모든 것을 제공해주는 대가로 대한민국 정부가 그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오직 시간뿐일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단 한 명.

 양태호 사장은 민중의 지팡이에 이어 판사가 휘두르는 법의 철퇴를 직격으로 얻어맞게 되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방배3파출소 소속 강신영 파출소장과 진강석 경장, 신원을 밝히지 않은 제보자의 진술을 통해 낱낱이 밝혀진다.


 그 결과, <태양금은방>과 <카사블랑카>라는 술집의 실소유주였던 양태호 사장은 전(前) 사장이 되고, 앞으로 개최될 4번의 월드컵 중계방송을 교도소에서 보게 된다.       


   



 #이수광 - 작업 마무리 중

 이수광이 연신 쩝쩝대며 이쑤시개를 세워 이를 후빈다.


 틈에 낀 음식물을 탐색하기보다 날카로운 것으로 잇몸을 간질이는 쾌감을 목적으로 하듯 이쑤시개가 정처 없이 입안을 배회한다.


 이내 이쑤시개 끝에 부추로 추정되는 기다란 초록 잎이 내걸린다.


 그는 흐뭇한 웃음과 함께 야식으로 먹은 만두와의 추억을 되새기는 차원에서 부추찌꺼기를 입속에 넣는다.


 그 모습을 정면에서 지켜본 장물아비 장 씨가 애써 모른 척하며 큼직한 더플백을 책상에 올려놓는다.


 “여기, 아까 준 것까지 말끔하게 정리한 거.”


 “벌써 됐어?”


 이수광이 트름을 컥 내뱉는다.


 “일 대충 한 거 아니야?”


 “마지막 일을 대충 하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랴?”


 장 씨는 은퇴 경기를 마친 운동선수처럼 감상적인 얼굴이다.


 “내 몫은 내가 따로 챙겼으니까 형님은 이대로 가져만 가쇼.”


 “전부터 은퇴를 하네, 마네, 그 난리를 피우더니 드디어 하는 거야?”


 “나도 이제 예순다섯인데, 더 늦기 전에 해야지. 형님도 이번 일이 마지막 아니었수?”


 “도벽 그게 마약만큼 끊기 힘들다는데. 나도 잘 모르겠어.”     





 #진강석, 홍준영 - 친해지는 중

 “괜찮대?”


 홍준영이 걱정스런 얼굴로 상태를 묻는다.


 진강석은 왼쪽 어깨를 부여잡으며 대답한다.


 “의사말로는 별 문제없대."


 "……그래? 다행이네."


 사전에 계획한 모든 일들을 무사히 마친 두 제자는 자연스레 스승님의 다음 행보와 관련된 회의를 진행한다.


 회의는 금방 끝난다.


 역시 한 곳밖에 없다.


 국가적으로나 개인적―교도소장 외 직원일동―으로나 그게 가장 평화로운 결론이다.


 물론, 이수광과 같은 방을 쓰게 될 수감자들에게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할 소식일지도 모르겠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과도한 외부활동으로 이수광의 비염 증세가 더 심해졌기 때문이고, 그 여파로 코골이가 더욱 끔찍해졌기 때문이다.


 “이제 뭐하면서 살려고? 손 씻는다며.”


 진강석이 무심코 묻는다.


 “아직 생각 안 해봤어.”


 진강석은 때리지 않고 누군가를 건드리는 데 익숙하지 않지만 어찌 됐든 같은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은 나름대로 각별한 사이이니만큼 특별한 주의를 요하기로 한다.


 손에 힘을 있는 대로 빼고 홍준영의 어깨를 툭 건드려본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세 번, 위로의 의미를 담아 어깨를 토닥인다.


 “뭐야, 갑자기.”


 괜스레 민망해진 홍준영은 다른 건 모르겠지만 돌아오는 올겨울 크리스마스 때만큼은 옆구리에 여자친구를 끼고 느긋하게 와인을 홀짝이고 싶단다.


 그것도 넉넉하게 서너 명쯤은 확보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단다.


 전과자 동생의 남자다운 크리스마스 계획을 들은 진강석은 여자친구를 아내로 만들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답게 현실적인 조언을 해준다.


 “그러면 싸움 날 텐데?”


 “지들끼리 알아서 싸우라고 하지 뭐. 싸움에서 이긴 두 사람만 내 옆구리를 차지할 수 있는 거야.”


 “그중에서 너는 가장 먼저 사라지지 않을까?”    

      





 어느 날,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산하에 있는 중독재활센터에 의문의 기부금이 도착한다.


 그 막대한 돈은 출근할 때 신을 구두를 꺼내기 위해 신발장을 열었는데, 전날 밤 야식으로 먹다 남은 치킨이 들어있는 것처럼 생뚱맞게 찾아온다.     





 #양태호 - 법적 상담 중

 양태호는 어렵사리 고용한 변호사에게서 슬픈 소식을 듣는다.


 양태호 이름으로 된 모든 계좌에 있는 돈은 국고로 환원될 예정이고, 그가 금고에 따로 보관한 현금과 수표와 금은 물론이고, 집에 숨겨놓았던 온갖 보석―오나홀 안에 숨겨둔 다이아목걸이와 반지는 그의 수집품 중 최고가를 자랑하는 것이었다―들도 모두 사라졌단다.


 골드바의 경우 각 제품에 고유하게 부여되는 시리얼번호를 통해 그 출처를 추적해보려 했으나, 장물아비 솜씨가 어찌나 좋은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단다.


 의뢰인께서 아주 제대로 감긴 것 같단다.


 양태호는 생존을 위해서는 거세라도 해야 한다는 처방을 듣기라도 한 듯한 굴욕적이고 심각한 표정으로 일관하며 변호사의 다음 말을 기다린다.


 “저어, 선생님. 근데 아직 수임료 절반이 입금이 안 됐습니다.”


 변호사가 그렇게 말하고 돌연 말을 멈춘다.


 더 자세한 소식을 알고 싶으면 유료결제가 필요하단다.


 변호사의 지나치게 현실적인 얘기에 양태호는 삶의 의욕이 점점 흐려져 가고 있음을 느낀다.


 돌연 그는 불쾌할 정도로 요란한 웃음을 터뜨린다.


 똥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농담을 했을 때 꺄르르 좋아하는 초등학생한테서나 볼법한 반응이다.


 호탕한 폭소는 이내 음량이 작아지더니 허탈한 헛웃음이 된다.


 원래 근사한 건물을 새로 올리려면 철거부터 하는 거잖아?


 오히려 잘된 건지도 모른다며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을 이끌어 가보지만……


 어림도 없다.


 양태호는 뜻밖에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변호사와의 자리를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좆 됐네.”


 양태호 의뢰인이 입장을 표명한다.


 변호사는 별 대꾸 없이 의도적으로 입을 다문다.


 뒤따르는 긴 침묵이 수많은 법적조언을 대신해준다.


 듣는 이로 하여금 굴욕적인 패배감을 느끼게 하는 기나긴 침묵이다.


 의뢰인이 썩어가는 얼굴로 믹스커피가 담긴 종이컵에 손을 가져가려 하자 그는 선심 쓰듯 말한다.


 “한 잔 더 뽑아드릴까요?” 

    




 서울북부교도소 정문을 따라 쭉 내려오다 보면 거대한 삼나무 한 그루가 보이는데, 그 나무의 역사를 자랑하는 팻말을 등지고 서서 200미터 정도 걸으면 작은 편의점이 하나 보인다.


 그곳에서 평일이고 주말이고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는 양태준 군은 핸드폰 알람을 확인한다.


 계좌로 돈이 입금됐다는 알람이다.


 알바비가 들어오려면 일주일은 더 기다려야했기에 양 군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설치해놓은 은행 어플에 접속해 거래내역을 확인한다.


 가장 최근 내역은 다음과 같다.     


 원금(이수광): +100,000원    

 

 알람이 이어서 도착한다.  

   

   이자(이수광): +900,000원  

   

 죄수복을 입은 할아버지에게 빌려준 십만 원이 나흘 만에 백만 원이 되어 돌아온다.


 할아버지가 다녀간 날, 재고가 맞지 않아 사장님께 잔소리를 들어야했지만 그때의 악감정이 싹 사라진다.


     




 #이수광, 진강석, 홍준영 - 진솔한 대화 중

 이수광의 두 제자가 이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게 어떤지 묻는다.


 제자들의 질문에 그는 생각지도 못한 대화주제였는지 어리둥절한 얼굴로 술잔을 내려놓는다.


 “나 아직 칠십도 안 먹었는데?”


 이수광이 재깍 대답한다.


 그의 엉뚱한 대답에 진강석은 당황하고, 홍준영은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설명을 줄줄이 늘어놓는다.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는 말이 아니라, 영감님이 계셨던 교도소로 돌아가라는 말이었어요. 엄밀히 따지면 영감님은 아직 죗값도 다 안 치르고 나온 거니까. 다시 들어가서 깔끔하게 죗값 받고 다시 나오시는 게 어떨까, 싶은 거죠.”


 “아하.”


 이수광이 고개를 찬찬히 끄덕인다.


 비교적 직선적이고 엉킨 부분 없이 말끔한 인생관을 가지고 지내온지라 단번에 해석하기에는 퍽 난해한 감이 없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있었단다.


 이수광은 잔을 입가로 가져가기 전에 한결 느긋해진 표정으로 부드럽게 말한다.


 “가야지. 안 그래도 가려고 했어. 내친김에 지금 바로 갈까?”


 “절대 안 돼요. 방금까지 술 마셨잖아요…….”


 진강석은 철없는 아버지를 상대하듯 질색하는 얼굴이다.


 “내가 직접 운전해서 갈 것도 아닌데, 왜!”


 홍준영은 터지는 웃음을 가까스로 참으면서, 기왕 이렇게 나온 김에 오늘까지는 푹 쉬고 내일 이른 아침에 가라고 개선안을 내놓는다.


 “그러지 뭐.”


 이수광이 진강석의 빈 술잔을 채워주며 말한다.


 “맞다, 강석이 네가 나 직접 데려가! 잘했다고 특진시켜주지 않을까? 운 좋으면 상사한테 엉덩이 토닥토닥도 받고.”


 “……오히려 징계받을 거 같은데요.”


 잠시나마 강신영 소장의 손길을 상상했던 진강석이 고개를 좌우로 마구 흔든다.


 “왜 징계를 받아? 탈옥수를 잡았는데?”


 이수광이 묻는다.


 “탈옥수랑 같이 밥도 먹고 술도 먹고, 같은 집에서 잠도 자서?”          





 #진강석 - 정신과 상담 중

 상담실에 들어선 진강석 경장이 웃음부터 터트린다.


 “오늘은 안경 안 쓰셨네요?”


 비웃음의 효과가 제대로 발휘되도록 그는 잠시 틈을 두었다가 말을 잇는다.


 “오늘은 저 상담 진짜 열심히 할게요.”


 “이야, 정말요? 신난다.”


 오선아 박사는 의도적으로 빈정거리는 투로 이렇게 말한다.


 “안 그래도 어제 강 소장님이랑 통화했어요. 소장님이 그러던데요? 진 경장 오늘 상담도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당장 총으로 쏴버리라고. 권총도 빌려주신데요. 총을 그렇게 못 쏘신다고? 1등은 강 소장님, 꼴등은 진 경장님. 이렇게 두 명은 항상 정해져 있다면서요.”


 “……저 준비됐어요. 얼른 질문하세요.”


 진강석 경장이 민망하게 헛웃음을 흘리며 안락의자에 앉는다.


 “오늘은 조금 어려운 얘기를 꺼내볼게요.”


 “여태 쉬운 얘기라고는 없었던 거 같은데, 아닌가요? 기준을 다시 정하셔야겠어요.”


 진강석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엄살을 피운다.


 “아내 분 얘기를 해볼게요.”


 “……굳이, 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드네요.”


 진강석이 과장해서 반응한다.

 약점을 들킨 사람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로 오선아 박사가 묻는다.


 “그날 이후의 일상, 기억하시나요? 그게 환자분께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요?”


 기억의 한 장면이 진강석의 머릿속을 번뜩 스친다.


 그날 이후 진강석은 칩거 생활에 들어갔다.


 집에서 그가 하는 일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술을 마시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술을 토하는 것이었다.


 그 두 가지 일을 열심히 반복하다가 그는 몇 가지 특이점을 발견했다.


 첫째는 허기가 찾아오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길게 잠들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사람은 이런 식으로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상태가 하루만 더 지속됐더라면, 진강석은 그 길로 아내를 만나러 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내를 만나지 못했다.

 대신 아내는 꿈에 나타났다.


 장례식을 치르고 처음 나타난 아내의 모습에 진강석은 더없이 기뻤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꿈에 등장한 아내는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남편에게 욕을 내뱉었다.


 아내의 분노에 당황한 진강석은 아무 말도 못 했다.


 매사 순하고 웃는 얼굴이었던 아내가 눈을 부라리며 화를 내는 모습이 생경했다.


 이윽고 아내는 손찌검까지 하기 시작했다.


 요령 없이 허우적대는 매타작에 불과했지만 진강석은 큰 충격을 받았다.


 아내가 왜 이토록 화를 내는 것인지, 왜 폭력을 휘두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본인 화를 못 이긴 아내는 급기야 남편의 멱살을 부여잡았다.

 그리고 진강석은 잠에서 깨어났다.


 죽기 전 단 한 번, 아내를 볼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기꺼이 내다 바칠 각오가 있었지만 이런 식의 재회는 바라지 않았다.


 부둥켜안은 채 서로의 안녕을 묻는 감격스러운 순간을 기대했던 진강석은 조용히 눈을 감고 꿈속에서 보았던 아내의 얼굴을 되새겼다.


 아내는 죽기 전 얼굴 그대로였다.

 반듯한 얼굴에 오밀조밀 귀엽게 박힌 눈과 코와 입이 사랑스러운.


 “…….”


 진강석은 눈을 감은 채로 눈물을 흘린다.


 그동안 아껴놓은 것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듯이 눈물은 끊임없이 흘러내려 그의 얼굴을 뒤덮는다.


 “아내 분 얘기를 진작 할 걸 그랬네요.”


 오선아 박사가 환자의 갑작스럽지만 솔직한 감정변화에 가냘픈 희망을 느낀다.


 침묵 속에 듣기 민망한 흐느낌이 간헐적으로 점을 찍는다.


 “제가 이 방에서 처음으로 운 역사적인 사람은 아니죠?”


 진강석이 눈물을 보인 것이 부끄러웠는지 머쓱하게 웃는다.


 “당연히 아니죠. 저도 가끔 우는걸요?”


 오선아가 환자의 민망함을 덜어간다.


 “힘내세요. 설마 이 세상에 박사님 짝 하나 없겠어요?” 


 “……저 다음 달에 결혼하는데요?”


 “제가 결혼을 한 번 해봐서 잘 아는데요. 결혼은 혼자 못하는데요.”


 진강석이 안타까움을 수북이 얹어 말한다.


 오선아가 장난은 이만 됐다는 듯 능숙하게 질문을 이어간다.


 “아내 분을 다시 만날 수 있게 된다면, 무엇을 가장 먼저 드리고 싶으세요? 함께 하면서 주고 싶었는데 못 줬던 것이 있을까요? 간단한 선물도 좋고, 말 한마디도 좋고―”


 “제 전부요.”     





 #홍준영 - 손 씻는 중

 화장실에서 방금 막 깨끗이 손을 씻은 홍준영은 내친김에 다른 쪽으로 내밀었던 손도 씻어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동안 살면서 배운 게 국영수와 도둑질뿐이다.


 그중 돈벌이수단으로 쓰이는 게 국영수도, 도둑질도 아닐 테지만 당장은 굶어 죽지 않겠다, 싶다.


 스승님이 남겨주신 돈으로 차근히 앞으로의 인생 계획을 차분히 세우면 될 일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홍준영은 방금 자기가 잘못 생각했다는 걸 인지한다.


 여태 그가 배운 건 국영수와 도둑질이 아니다.


 걷는 법, 말하는 법, 인사하는 법, 젓가락질하는 법, 등본 떼는 법, 수영하는 법, ppt 만드는 법 등등 참 많이도 배웠다는 생각이 든다.


 “와, 뭐야, 나 고학력자였네.”


 홍준영은 낄낄대며 그동안 배운 수많은 것들로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겠다고 다짐한다.     





 #강신영

 “소장님? 사무실로 웬 편지가 왔네요?”


 강신영 파출소장은 박승태 경위가 내미는 편지를 받아 든다.


 발신인의 이름을 확인한 강신영이 가볍게 웃는다. 광(光)이라는 글자만 삐뚤빼뚤하게 적혀있다.


 탈옥수의 편지를 읽어내려가던 강신영의 시선이 편지 마지막 문장에 머문다.


 그는 하염없이 그곳을 응시한다.


 고맙다는 단어가 잔치국수 위의 지단 고명처럼 예쁘게 곁들여진 문장이다.   


   



 #진강석

 “수고하세요.”


 인사를 하고 상담실을 나서는 진강석을 향해 오선아 박사가 대뜸 말한다.


 “과거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게 딱 하나 있는데, 뭔지 아세요?”


 “딱 하나만 요구하던가요? 되게 양심적이네.”


 진강석이 피식 웃는다.

 어느 때보다 편안한 얼굴이다.


 “그래서, 과거가 뭘 요구하던가요?”


 “나를 잊으세요.”     





 #이수광 - 복귀 중

 이수광이 현판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말끔히 세탁을 하고 다림질까지 한 죄수복을 다시 입으니 마음가짐부터 달라진 듯하다.


 “수감번호 6789 이수광, 복귀.”


 이수광이 탈옥을 결행했을 때처럼 선언한다.


 복귀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은 감이 있으나 어찌 됐든 탈옥수 이수광이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온다.


 “똑똑똑, 실례합니다.”     





 #교도소장

 “큰일 났습니다!”


 보안과장이 부랴부랴 교도소장실에 들어선다.


 “왜왜!”


 이수광의 탈옥 이후 불면, 신경쇠약, 변비 등의 증세로 시름시름 앓고 있던 교도소장이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말한다.


 “제발 탈옥이라고만 하지 마. 부탁이야.”


 “저, 탈옥은 아니고, ……뭐라고 해야 되지? 입옥? 암튼 누가 찾아와서는 자기를 좀 가둬달랍니다.”


 교도소장이 한숨을 내쉰다.


 “당장 꺼지라고 해. 아님 무시하던가. 가끔 노숙자들이나 전과자들이 그래. 바깥 생활 힘들어서 다시 들어오고 싶어 하지. 세금도둑들. 본격적으로 날 추워지면 더 그럴 거야.”


 “아니요! 그게 아니고, 자기가 여기 수감자였는데 잠깐 외출을 했었다고…….”


 다행히 교도소 직원은 이수광이 출입문 개폐 장치의 메커니즘에 대해 심도 깊은 사유를 마치기 전에 문을 열어준다.


 5분만 더 늦었다면, 탈옥에 이어 교도소에 수감자가 몰래 침입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을 것이다.


 그날 오후, 교정국과 인근 경찰서와의 공조수사를 통해 무사히 탈옥수를 붙잡았다는, 사실과는 다소 괴리가 있는 뉴스보도가 이어지고 이내 처벌 수위가 전해진다.


 이수광은 한 달 동안 독방신세를 지게 되고, 보안과장을 비롯한 교도소 직원들은 감봉 3개월, 교도소장은 정직 1개월 처분을 받는다.


 파면이나 해임 같은 중징계를 예상했던 교도소장은 평생 치의 행운을 미리 끌어다 쓴 기분으로 자기 할 일만 마치고 돌아와 수감자로서의 본분을 지켜주어 고맙다고 이수광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별말씀을!”


 이수광이 웃는다.


 아들의 복수를 마친 그는 아주 크게 웃고 아주 크게 운다. 

         



―이수광의 이럴수광, 마침

이전 20화 20. '다음에'가 다음에도 있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