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해인 Oct 22. 2024

19. 모든 이가 총 앞에 평등하다

 #강신영 - 딸과 통화 중

 통화가 다섯 번째 시도 만에 연결된다.


 “신혜야! 너 어디야 지금?”


 강신영 소장의 목소리가 갈라진다.


 “……왜요.”


 돌아오는 건 차가운 대답뿐이다.


 “어디냐고! 대답부터 해.”


 강신영이 잠시 말을 멈추고 귀에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한다.


 “친구들이랑 놀고 있어요…….”


 강신영은 차마 확신할 수는 없지만, 분명 어딘가에 남아있을 부녀 사이의 애정을 이용할 계획이다.


 평소처럼 무턱대고 지시하고 끝내 윽박지르기보다, 그 편이 더 확률이 높을 것 같다.


 그의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진다.


 “저, 신혜야 일단 집으로 가. 어, 아니! 그러지 말고 친구들이랑 근처 카페에라도 가있을래? 그래, 저녁은 먹었어? 아빠가 맛있는 거 사줄까?”


 “…….”


 딸아이가 선사하는 그 철저한 침묵은 강신영이 온전히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가혹하다.


 “나 지금 클럽에 있어요. 애들이랑 조금만 놀고 갈게.”


 강신혜는 고해성사라도 하듯 우물쭈물 중얼댄다.


 클럽이라는 말에 강신영 소장이 붙잡고 있던 이성의 끈이 끊어진다.


 “강신혜 너 당장 거기서 나와! 당장! 어딜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그런 위험한 곳에서 놀아!”


 “……끊어요. 조심히 놀게요.”


 “강신혜! 너 아빠 말 안 듣지? 당장―”


 강신혜가 강신영의 말을 끊는다.


 “아빠, 그거 과보호에요.”


 딸의 주장에 반박하고 싶다. 반박하고 하나하나 따지고 들고 싶다.


 그건 말도 안 되는 궤변이라고 천하의 개소리라고 소리 지르고 싶다.


 혹여 제 언니 때 일을 떠올릴까 두려워 마약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에 그간 지나친 우려를 해왔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 강신영 소장은 결국 사실대로 말하기로 한다.


 “신혜야, 지금 네가 간 클럽에서 마―”


 전화연결이 끊어진다.

 다시 전화를 걸어보지만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간다.     





 #이수광 - 잠입 중

 이수광은 바닥에 찰싹 붙어 포복 자세를 유지한 채 어딘가로 열심히 기어가고 있다.


 그는 그대로 가게 중앙 홀을 가로지른다. 그리곤 벽 뒤에 숨어 제자의 멋진 활약상을 강아지 시점에서 지켜본다.


 ‘저 놈은 경찰이 아니라 격투기 선수를 해야 됐어. 미친놈 같으니라고.’


 아무리 봐도 직업을 잘못 택한 제자를 응원하며 흐뭇한 미소를 머금은 채 이수광은 다시 열심히 바닥을 긴다.


 그의 목적지는 가게 내 사장실, 타깃은 마약거래장부 사본과 중절모를 쓴 험프리 보가트가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영화 <카사블랑카> 포스터, 그리고 다발로 쌓여있을 현금이다.


 사전 답사 때부터 탐이 났던 물건이다.


 집주인이 뻔히 있는 곳에서 시도하는 빈집털이만큼 짜릿한 것도 없다.


 누군가의 눈동자에 건배를 하는 것보다 훨씬 더 기분이 좋다.


 이수광의 등장을 눈치챈 홍준영은 머릿속에 있는 대본을 확인한다.

 분명 대본에 없는 내용이다.


 이수광의 애드리브에 홍준영은 더없이 당황스럽지만 애써 침착하게 눈앞의 상대역에게 집중해본다.


 그로부터 30초 후, 진강석의 주먹에 얻어맞아 마약조직원 세 명이 더 혼절하고, 그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놓치지 않고 지켜본 인원 중에 두 명의 자수자가 나온다.


 한 다스였던 범죄자들은 순식간에 줄어들어 이제는 한 손으로도 셀 수 있을 숫자가 된다.


 처음에는 수중에 권총을 소유하고 있고 자동차에는 삼단봉, 테이져건까지 가지고 있는 사람이 왜 주먹만을 고집하는지 홍준영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유야 어찌 됐든 주먹 두 개로 범죄자들을 씹어 먹은 경찰을 보자 대한민국 공권력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생긴다.


 더없이 듬직하다.


 일개 경찰에게 조직이 괴멸 위기에 빠지는 꼴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던 황중근 이사가 드디어 진강석 앞으로 나선다.


 진강석은 황중근의 거대한 풍채를 보고 긴장은커녕 외려 기뻐한다.


 표면적이 저리 광활한 사람은 또 처음이다.


 불리한 체급을 고려하여 이번만큼은 주먹이 아니라 총기 사용을 고려해볼까도 했지만, 그는 기존의 전략을 고수하기로 한다.


 전략은 퍽 간단하다.

 두 주먹으로 열심히 때려잡는 것이다.


 왕년에 유도로 이름 좀 날렸던 황중근 이사는 오랜만에 들끓는 운동인의 피가 반갑다.


 난데없이 펼쳐진 빅매치에 좌중의 시선이 집중된다.


 황중근은 간담을 서늘케 하는 괴성을 토하고 자세를 잡는다.


 선수 출신답게 앞서 부하들이 보여준 형편없는 움직임과는 달리 침착하다.


 상대를 관측하고 전략을 세운다.

 수 싸움을 한다.


 몇 대를 얻어맞아도 한 번만 잡으면 된다.

 딱 한 번만.


 여태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손아귀에 잡혀 바닥에 꽂히곤 했다.


 그의 업어치기에 당한 사람은 모두들 삶의 의욕을 포기하거나 병원신세를 지기 마련이었다.


 진강석은 황중근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단번에 알아보고 한층 더 진지해진다.


 옥타곤에 마주 선 선수들처럼 둘은 일정거리를 유지하며 전열을 가다듬는다.


 타격을 내세워 싸우는 상대방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황중근이 올가미를 조이듯 서서히 거리를 좁힌다.


 두 눈은 진강석의 어깨에 고정되어 있다.

 어깨를 읽으면 주먹이 어디를 노리는지 파악할 수 있다.


 그에 반해, 조금씩 거리를 좁혀 들어오는 상대방을 가만히 기다리는 건 총을 함부로 쏘는 것만큼이나 멍청한 짓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진강석이 자세를 낮추고 몸을 좌우로 비트면서 주먹에 체중을 싣는다.


 황중근은 제 발로 품으로 들어오는 경찰의 무모한 움직임을 비웃는다.


 상대방이 휘두르는 주먹의 궤적이 눈에 훤하다.


 하지만 보이는 것과 회피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진강석의 주먹이 황중근의 아래턱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꽃을 의자 삼아 휴식을 취하는 나비처럼 부드러운 착지다.


 그 이후의 과정은 앞선 범죄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황중근의 몸무게 때문에 바닥에 엎어질 때 다소 묵직한 소리가 울릴 뿐이다.


 “…….”


 양태호 사장은 이쯤에서 상황을 한 번 짚고 넘어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현재 부인할 수 없는 사실.


 하나, 역전의 용사처럼 느닷없이 등장한 경찰이 깽판을 치고 있다.


 둘, 그냥 몸 좀 좋은 경찰인 줄 알았는데, 싸움을 존나게 잘한다.


 셋, 아무래도 좆 된 것 같다.


 마지막 넷, 다시 생각해도 좆 된 게 분명하다.


 조직의 품격이 대리석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모습에 양태호의 눈앞이 흐려진다.


 이대로라면 오늘 밤 집에서 보내려했던 느긋한 혼자만의 시간이 사라질 게 빤하다.


 양태호는 머릿속을 마구 휘젓는 불안감을 잠재우려 온갖 긍정적인 메시지를 떠올려보지만 소용없다.


 그러다 이내 마지막 남은 비장의 카드를 떠올리는데 성공한다.


 “종수야!!”


 양태호는 돌연 가게가 떠나가라 외친다.


 “김종수!!!”


 용케 아직까지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고 있던 조직원10이 사장님의 의도를 알아채고 호응한다.


 “종수야!”


 바닥과 하나가 되어 생명의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힘겹게 들숨과 날숨을 내쉬던 부하들도 남아있는 힘을 쥐어짜내 소리친다.


 “종수야아아아!”


 “종수야! 도와줘!!”


 “김종수우우우!”


 잠귀가 어두운 김종수는 그렇게 고용주와 직장동료들의 필사적인 부르짖음에 겨우겨우 잠에서 깨어난다.  

   

 그 사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이수광은 유유히 뒷문을 통해 혼란의 현장을 빠져나간다.    

 

 진강석은 가게 가장 안쪽 방에서 어깨를 쫙 편 당당한 자세로 성큼성큼 걸어 나오는 남자를 본다.


 마약소굴에서 용케 순결을 지켜냈는지 제법 강인한 눈빛을 장착하고 있는 것으로 모자라 올바른 영양섭취와 운동도 꾸준히 했는지 탄탄하고 균형 잡힌 상하체가 눈에 띈다.


 독립투쟁에 나서기라도 하듯 결연해보이기까지 한다.


 무자비한 경찰이 저지르고 있는 합법적인 대학살을 잠재울 해결사가 될지도 모른다는 헛된 희망을 품고 있는 게 분명해 보인다.


 “너 아주 건강하구나? 머리도 풍성하고. 머리도 크고. 얼굴은…….”


 진강석이 진심으로 칭찬한다.


 김종수라 불리는 사내는 가공할 만한 크기의 대가리를 가졌을뿐더러 숨이 멎을 만큼 못생긴 감이 있다.


 “…….”


 김종수는 말이 없다. 경찰의 친근한 대화시도가 부끄러운 걸까.


 “나랑 말 섞기 싫은 거구나? 얼굴보자마자 다짜고짜 몸부터 섞으면 민망해서 그랬던 건데.”


 장난처럼 말했지만 진강석은 연이은 주먹질로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상태다.


 아무리 신나고 재밌는 일이라도 쉬지 않고 계속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슬슬 숨이 차고 목도 마르고 배도 고프다.

 오줌보도 삼분의 이쯤은 찬 것 같다.


 “종수는 지금 묵언수행 중이다. 네가 그런 심오한 수련에 대해 알 리가 없지.”


 양태호 사장이 장성한 아들을 보듯 흐뭇하게 말한다.


 “…….”


 김종수는 표정 하나 바꾸는 법 없이 정장 재킷을 벗어 바닥에 휙 던진다.


 “야야, 양복을 그렇게 바닥에……, 너 위생관념이 형편없구나?”


 진강석이 옷 주인처럼 안타까워한다.


 “그렇게 촐싹대는 것도 끝이야. 종수한테 살려달라고 비는 게 빠를 거다.”


 왼쪽 중지와 약지가 골절된 조직원10이 설명을 자처한다.


 “종수는 어려서부터 안 해본 격투기가 없다고. 주짓수, 킥복싱, 무에타이, 게다가 특전사 출신이야.”


 해본 운동이라고는 복싱뿐인 진강석도 이번만큼은 움찔한다.

 쉽지 않은 상대인 것 같다.


 게다가 특전사라니.


 남자로서의 자신감이 아주 살짝 떨어진다.

 진강석은 의경 출신이다.


 “저 친구가 그렇게 싸움을 잘해?”


 “우리 조직이 이렇게 서울에서 굳건히 자리를 보전할 수 있었던 것도 전부 종수 저 놈 덕이지.”


 양태호도 한마디 거든다.


 “……그래?”


 “김종수 파이팅!”


 조직원10이 외친다.


 “조져버려!”


 “죽여!”


 “팔이랑 다리 하나씩만 부러트려줘!”


 바닥과 하나가 된 범죄자들이 입을 모아 소리친다.


 진강석은 졸지에 악역이 된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아무래도 힘 조절에 실패한 듯하다.

 이렇게들 금방 깨어나다니.


 직장동료들의 응원에 힘을 입었는지 김종수가 손목을 몇 차례 돌리고는 줄넘기를 하듯 제자리에서 가볍게 뛰어오른다.


 무심한 눈으로 응원을 보내는 동료들을 본다.

 죄다 얼굴이 터져서는 온전한 사람의 모습이라고 보기 어렵다.


 “…….”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거라지만, 김종수는 왜인지 오늘따라 대보고 싶지 않다.


 가게 인테리어 소품마냥 바닥에 박혀있는 직장동료들을 보니 의욕이 싹 사라진다.


 생일을 기념해 전날 집 근처 식당에서 포장해 온 소고기미역국으로 든든하게 속을 채우고 출근길에 올라 본격적인 업무에 임하기 전에 낮잠까지 잤건만, 일진이 영 좋지 않다.


 내키지는 않지만 일자리와 잠자리까지 제공해 준 사장님께 보은하는 마음으로 김종수는 마음을 다잡는다.


 곧장 발을 세차게 굴러 진강석에게 황소처럼 달려든다.

 황중근 이사와는 또 다른 무시무시한 위압감이다.


 진강석은 안주머니에 넣어뒀던 권총을 꺼내 들어 망설임 없이 발포한다.


 코앞에서 번개가 떨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천둥 같은 총소리가 울려 퍼진다.


 마치 투우사를 향해 달려드는 황소 같던 김종수는 졸지에 소스라치게 놀라 나자빠지는 시골 똥개로 전락한다.


 두 팔을 번쩍 들어 저항 의지가 전무하다는 속마음도 꺼내 보여준다.


 진강석이 총구를 겨눈 채 말한다.


 “자, 이제는 실탄. 할 말 없어?”


 “……잘, 잘못했어요.”


 김종수의 묵언수행은 38구경 앞에 좌절하고 만다.


 잊고 있던 총기의 도입은 불씨처럼 피어오르던 양태호의 결사항쟁 의지를 똥구덩이로 처박아버린다.

이전 18화 18. 총보다는 주먹이 낫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