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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해인 Oct 21. 2024

18. 총보다는 주먹이 낫지

 #강신영 - 딸 소식 듣는 중

 진강석의 범인 검거 소식이나 탈옥수 이수광의 신병을 확보했다는 소식을 기다리고 있던 강신영 파출소장은 의외의 소식을 전해 듣는다.


 출처는 금일 야간근무를 마치고서도 탈옥수 수색 때문에 제대로 쉬지 못한 박승태 경위로, 강신영 소장의 연락을 받고 못마땅해하며 사복 차림 그대로 집을 나선 그는 번화가를 활보했다.


 졸음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담배를 피워야 하는데 담배는 흡연구역에서만 피울 수 있으니 흡연구역을 벗어날 수 없었던 박승태 경위는 흡연구역에서 죽치고 앉아 담배만 뻐끔뻐끔 피워댔다.


 마지막 남은 담배에 불을 붙이던 그는 그곳에서 20대 여성 무리를 발견하는데, 그 속에 끼어있는 익숙한 얼굴을 알아챈다.


 다름 아닌 강신영 소장의 딸 강신혜였다.


 박승태 경위는 혹시 몰라 강신영의 메신저 프로필사진을 확인했다.


 화장법의 차인지 전체적인 인상은 미묘하게 달랐지만, 분명했다.


 박승태는 담배를 뻑뻑 피우며 낄낄대는 학생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하러 가는데, ○○으로 갈까? ✩✩?”


 생경한 단어에 박승태 경위는 그 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 이후에 쭉 이어진 대화도 별반 다를 건 없었다.


 다만 그런 그가 온전히 알아들은 단어가 하나 있었는데, 그건 클럽이었다.


 다음 행선지가 정해진 듯 학생들은 다시 낄낄대며 흡연구역을 벗어났다.


 그 말을 들은 박승태 경위의 첫 번째 생각은 탈옥수―이수광의 죄목까지는 전해 듣지 못했다―가 어디에 숨어있을지 모르는 지금 같은 상황에 클럽은 너무 위험할 것 같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 생각은 자식을 가진 아버지로서, 자녀 문제는 학부모 상담이 효과 직빵이라는 것이었다.


 하여, 그는 직장상사이기 전에 한 자녀의 아버지인 강신영 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장님, 신혜 이제 시집보내도 되겠어요?


 “갑자기 웬 신혜?”


 강신혜의 아버지, 강신영은 당연히 그렇게 되물었다.


 ―아니, 방금 내가 밖에 돌아다니다가 신혜를 봤네?


 흡연구역에서 봤다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친구들이랑 있더라고요?


 “아, 그래?”


 박승태 경위가 뜸을 들이고는 이렇게 말했다.


 ―근데 저기 뭐야, 제가 일부러 엿들은 건 아니고 우연히 듣게 됐는데, 신혜가 클럽을 갈 거라네요? 그 아시죠? 내방역 근처 세무서 뒷골목에 있는 거?


 “…….”


 강신영 소장은 클럽이라는 단어에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그, 클럽 갈 수도 있지. 이제는 다 컸는데 뭘.”


 ―소장님, 되게 쿨하시구나?


 강신영 소장은 요란하게 지지직거리는 무전기 소리에 통화를 마무리한다.


 “조금만 더 돌아보다가 들어가서 쉬어. 고생했다.”


 ―예, 고생하십시오.


 그때, 사전에 약속한 것처럼 무전기 속 112상황실 직원이 전파한다.


 ―상황 발생, 상황 발생. 반포세무서 인근 □□클럽에 마약신고 접수. 인근 대원 출동 바란다.


 강신영 소장은 자리를 박차고 파출소를 달려 나간다.     





 #진강석 - 범죄자 검거 중

 범인 검거에 있어 남다른 철학과 형편없는 사격 실력을 가지고 있던 진강석은 권총을 그리 애용하지 않는다.


 그 점이 범죄자들로 하여금 일말의 희망을 품게 할지도 모를 일이지만, 주먹으로 총의 파괴력을 낼 수 있는 경찰을 무슨 수로 상대할 수 있으랴.


 어설픈 동작으로 휘두르는 도끼질을 능숙하게 피한 진강석이 주먹을 내지른다.


 진강석의 주먹이 복부에 착륙하자 조직원5의 입에서 요란한 소음이 터져 나온다.


 “……우억!”


 조직원5의 다리가 풀린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호언장담해 놓고 막상 뜯어보니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사람의 표정을 하고 있다.


 복부를 이리저리 만져본다. 몸 전체가 꿰뚫린 듯한 느낌이다.


 다행히 몸은 멀쩡하다. 그대로 정신을 잃는다.


 순식간에 부하 두 명이 바닥과 하나가 되고 전투원의 수가 한 자리로 줄어들 위기에 직면한 양태호 사장은 동요한 것으로 모자라 호흡을 멈춘 듯하다.


 방금 막 샤워를 마친 듯 개운한 얼굴을 하고 있는 진강석을 보는 홍준영은 범죄자의 신체에 물리적 손상을 주지 않고도 현 상황을 원만히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겠냐며 제안할 참이었지만, 그 생각을 곧장 지운다.


 때론 대화보다는 주먹이 효과적일 때가 있다던데,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인 것 같다는 느낌이 아주 강하게 들기 때문이다.


 진강석의 시선은 바닥에 떨어진 무시무시한 흉기에서 그보다 몇 배쯤은 더 흉측하게 생긴 범죄자의 얼굴로, 다시 흉기로 옮겨간다.


 이내 증거물을 담을 비닐 팩을 챙겨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범행증거물 수집은 언젠가 올 지원 병력에 요청하기로 하고, 지금은 하던 일이나 마저 해치우기로 결심한다.


 그전에 만전을 기하는 차원에서 진강석이 혼란에 빠진 범죄자들을 향해 말한다.


 “거기 계신 분들 전부 약에 찌든 거 맞으시죠?”


 “전 아닙니다!”


 양태호 뒤쪽에 서서 똥폼을 잡고 서있던 남자가 똥이 쏙 들어갔는지 즉시 부정하고 나선다.


 진강석은 무표정한 얼굴로 상대방의 모습을 살핀다.


 별안간 느껴지는 냉철한 눈빛에 별생각 없이 그저 흘러가는 대로 인생을 살아오다 보니 어느새 마약 운반을 업으로 삼게 된 남자는 사뭇 긴장한다.


 남자의 외관으로 말할 것 같으면, 거울을 보다가 어지간히도 심심했는지 미간을 출발점으로 해서 눈썹 삼분의 일 지점에 대뜸 2차선 도로를 낸 것으로 모자라, 눈썹이 끝나는 부분에는 좁쌀 크기의 피어싱을 박아 넣었고, 화룡점정으로 양쪽 손등에는 덩굴장미 틈에서 부릅뜬 거대한 눈동자 문신을 하고 있다.


 이중에 어느 것 하나 그의 무결함을 입증하는데 긍정적으로 작용할 요소는 없어 보인다.


 어떤 상황에서도 편견은 안 좋은 것이고 누구나 편견을 깨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해야 한다지만, 경찰의 머릿속에 박혀있는 편견을 깨기란 특히 어려워 보인다.


 “저, 저! 저는 무고한 시민입니다. 아무것도 몰라요!”


 무고한 시민 호소인 겸 마약 운반책이 외친다.


 “그럼 왜 여기 계실까요? 낮술 하러 오신 것 같지는 않은데요.”


 “전 그냥 심부름꾼이에요!”


 “이를 테면 어떤 심부름이었을까요? 담배 심부름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요.”


 진강석이 한걸음 다가서며 묻는다.


 “양 사장님이 부탁하신 물건 배달만 했습니다!”


 “방금 말씀하신 양 사장님이 제 앞에 계신 양태호 사장님이 맞으실까요?”


 “네네, 맞습니다!”


 마약배달원1이 희망에 들뜬 목소리로 대답한다.


 “양 사장님이 마약이라면 종류를 불문하고 이것저것 취급하시는 것도 알고 계셨고요?”


 “네네! 그럼요! 그런 것들 모아서 정해진 장소에 가져다 두기만 했어요! 치킨 배달이랑 다를 게 없었다니까요?”


 경찰의 질문에 성실히 대답하는 것만으로 죄가 조금씩 벗겨지는 것 같았는지 배달원1의 표정이 서서히 밝아진다.


 경찰은 ‘마약’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무죄 호소인은 ‘배달’에 방점을 찍어댄다. 


 “예, 그냥 거기 쭉 계시면 될 거 같네요.”


 진강석은 어처구니없다는 투로 말한다.


 단호한 경찰의 말에 배달원1과 함께 옆에서 대화를 유심히 듣고 있던 배달원2의 표정에도 희망이 사라진다.


 마약운반책들은 위기감에 이어 절망에 빠진다.


 길을 거닐 때 도로 위의 순찰차를 보면 저도 모르게 겁을 먹게 되는 아쉬운 점이 있긴 하지만, 짭짤한 돈벌이가 되어주던 일자리를 잃게 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모든 물건(마약)은 양태호 사장을 통해서만 입수된다.


 서울 강남 일대의 총책이나 다름없던 인물의 부재는 치명적일 것이다.


 ‘마약’ 운반책들에게 운반할 마약이 없다면 단순한 배달라이더들과 다를 바가 없다.


 “사장님, 이제 어쩌죠? 저 새끼, 장난 아닌데요?”


 양태호의 귀에 대고 황중근이 소곤거린다.


 너무 바짝 다가와 말을 걸어 오소소 소름이 돋아난 양태호는 정신을 바짝 차리려 두 주먹을 불끈 쥔다.


 그러자 오른손에 들려있던 담배가 뚝하고 두 동강이 난다.


 딱 견적을 내보니 저쪽은 이미 다 알고 온 것 같다.


 양태호는 별 수 없다는 듯 짧은 한숨을 내쉰다.


 “저기 경찰아저씨?”


 “응?” 진강석이 대답한다.


 “네, 라고 해야지. 그래도 내가 연장잔데.” 양태호가 투덜댄다.


 “네?”


 상대방이 최소한의 예의를 차려준 것에 고마움을 느끼며 양태호가 질문한다.


 “우리들 이대로 잡혀가면 징역 오래 살까?”


 “아무래도 그렇지 않을까요?”


 진강석도 진지하게 답변해준다.


 “현행범인데다, 특히 대한민국에서 마약은 좀 큰 문제여서……. 저도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최소 월드컵 두 번 정도는 교도소에서 응원해야 되지 않을까요? 운이 안 좋으면 세 번째까지 봐야 할 수도 있죠.”


 “월드컵 시즌에 중계방송은 보게 해주나요? 감방에 TV 있어요?”


 곰과 흡사한 체형을 한 조직원8이 불쑥 끼어든다.


 “물론, 교도소 사정마다 다르겠지만 제가 있던 곳에서는 보게 했습니다.”


 “감방생활도 하셨나요? 전과자도 경찰 할 수 있어요!?”


 조직원9의 눈이 휘둥그레 커진다.


 진강석의 대답여하에 따라 무사히 수감생활을 마치면 경찰공무원 시험이라도 준비할 기세다.


 진강석이 가게에 들이닥친 이후로 묵묵하게 있던 조직원3도 귀를 쫑긋 세우며 반응을 보인다.


 조직원3은 조직원8과 조직원9를 반반 섞어놓은 듯한 생김새다.


 “아, 저는 전과가 있는 게 아니라, 교도관으로 근무했어요.”


 전 교도관, 현 경찰관 진강석이 예비 수감자들의 불타오르는 헛된 희망에 물을 들이붓는다.


 “아…….”


 조직원3, 8, 9가 동시에 탄식을 내뱉는다.


 “아까 했던 말을 이어서 하자면. 내가 평소 운이 썩 좋은 편은 아니라서 그런데, 적어도 10년은 살게 된다는 말씀이네?


 양태호는 부하들이 대화 중간에 끼어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봐주기로 한다.


 “아무래도 그렇겠죠?”


 진강석이 범인을 자극하지 않도록 최대한 순화된 단어를 골라 말한다.


 “워낙에 그, 활동을 다방면으로 열심히 하셔서 어쩔 수 없을 것 같네요.”


 “청춘을 갈아 넣었지.”


 양태호는 자신의 바쁜 지난날을 알아주는 경찰이 마냥 원망스럽지는 않다.


 과거를 회상하듯 눈을 지그시 감은 양태호가 계산을 마치고 말을 덧붙인다.


 “이렇게 된 이상 나도 어쩔 수가 없겠네.”


 양태호가 바지를 잡아당겨 엉덩이 골을 파고드는 속옷을 떼어놓는다.


 “어쩔 수 없다뇨?”


 진강석이 그렇게 묻자, 양태호가 부하들을 둘러보며 지시한다.


 “얘들아, 경관님이 우리 얼굴 못 보게 눈이라도 뽑아드려라.”


 “그런 거라면 뇌를 뽑는 게 낫지 않을까요? 이미 다 봐버렸으니까 기억을 없애는 편이 낫잖아요.”


 조직원8이 큼지막한 주먹을 내세우며 말한다.


 “그럼 사람이 죽잖아. 살인하면 축구는 평생 교도소에 있는 TV로만 봐야 될걸?”


 조직원9가 나무란다.


 가게 안에 있는 유일한 경찰이 설명을 보충한다.


 “경찰을 죽이면 가중처벌이라 TV도 없는 곳에 갇히게 될 겁니다.”


 “거봐. 살인은 안 돼.”


 양태호의 만류에 조직원3이 나선다.


 “사장님, 그러면 연장으로 머리를 세게 때려서 여기에 왔던 일 자체를 잊게 만드는 건 어떨까요? 눈이 없으면 너무 불편하잖아요. 축구도 못 보고.”


 “그렇긴 하지.”


 양태호가 시인한다.


 “근데 그게 조절이 되겠어? 자칫 잘못하다가 기억이 통째로 날아갈 수도 있잖아. 과하면 죽을 수도 있고.”


 “……자신은 없는데요.”


 “그냥 연장으로 대충 여기저기 그으면 되지 않아?”


 “아니, 대가리라는 게 그리 쉽게 깨지는 게 아니라니까?”


 “그럼 오토바이 탈 때 헬멧은 왜 쓰냐? 워낙에 잘 깨지니까 쓰는 거 아니야.”


 “뭔 말이 많아. 그냥 우르르 몰려가서 밟아.”


 “저 새끼 아까 주먹 봤어? 난 구경도 못 했어. 분명 두 눈 다 뜨고 있었는데 아예 안 보였어. 솔직히 연장 안 쓰면 자신 없어. 그냥 깔끔하게 연장 쓰자. 요 앞에 대학병원 응급실도 있잖아. 바로 죽지는 않겠지.”


 갑자기 양태호가 이끄는 조직의 내부회의가 시작된다.


 얼핏 들으면 한심하고 자세히 들으면 섬뜩한 대화를 계속 들어줄 정도로 강심장은 아니었던 홍준영이 진강석을 툭툭 건드린다.


 “아까 신고 안 했다는 거 거짓말이지? 그리고 경찰은 원래 2인 1조로 움직이잖아? 다른 분은 어디 갔어?”


 “경찰 여기 왔잖아. ……아까부터 왜 이렇게 난리야? 그리고 2인 1조. 너랑 나. 경찰과 도둑.”


 태평스럽게 다시 공무원증이라도 꺼내줘야 하나, 고민하는 표정의 진강석을 보자 홍준영은 속이 터진다.


 “아니, 그럼. 다른 경찰들은 진짜 안 온다는 소리야?”


 “응.”


 “왜?”


 “……자꾸 했던 말 반복하게 할 거야?”


 경찰이 눈앞에 있는 상황에서 애타게 경찰을 찾고 있는 시민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진강석이 의아한 눈초리를 보낸다.


 큰일이 난 것으로 모자라 남성의 성기가 됐음을 직감한 홍준영이 전략을 바꿔 논리적으로 접근한다.


 “그래, 경찰이 등장했지. 짜자잔, 하면서. 근데 쟤네들 머릿수를 봐. 아까처럼 한 명씩 덤빈다는 보장도 없잖아.”


 “그러게. 생각보다 규모가 작긴 하다. 그래도 나름 이 지역에서 유명한 마약조직인데.”


 “한 명이서 열댓 명을 어떻게 상대해?”


 “너는 왜 빼? 영 신경 쓰이면 너라도 거들던가. 사이좋게 다섯 명씩만 눕히면 되지.”


 진강석이 대뜸 홍준영의 어깨를 만지작거린다.


 “그나저나, 사람 때려본 적은 있어?”


 “사람을 왜 때려? 나는 순수한 도둑이지 강도가 아니야. 물건만 훔친다고.”


 “어깨 만져보니까 없겠네. 무슨 어깨가 이렇게 얇아? 2차 성징이 많이 늦나봐?”


 “아, 저기!”


 양태호 사장이 불쑥 말을 꺼낸다.


 “두 분, 많이 바쁘시면 나가셔서 계속 말씀 나누시죠? 저희들은 좀 바빠서요. 급히 갈 곳도 있고.”


 “어디 가시게요? 수갑도 차셔야 되고, 경찰서 가서 조사도 받으셔야 되는데. 앞으로 할 일이 한두 개가 아니에요.”


 진강석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한다.


 진강석과 양태호 사장이 계속해서 서로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한쪽은 눈치를 살살 살피며 도망칠 기회를 엿보는 눈빛이고 다른 한쪽은 어느 정도로 패야하나 고민하는 눈빛이다.


 어찌 됐든 둘의 마음이 하나로 통하지 않는다는 건 확실해 보인다.


 경찰과 도둑이면 몰라도 경찰과 마약범은 아무렴 가까워지기 어려운 법이다.


 게다가 그 둘 사이에 사연이 껴있다면 더욱이 힘들다.


 옆에 있던 도둑이 한마디 거든다. 거의 속삭임에 가깝다.


 “지랄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그냥 총으로 쏴버리는 게 어때? 그 편이 훨씬 간편하잖아. 안 그래?”


 “절대 안 그래. 총 한번 쏘면 얼마나 귀찮아지는데. 차라리 몇 대 맞고 말지. 몇 대 맞고 우리도 같이 때리면 돼. 그 편이 훨씬 깔끔해.”


 “칼로 몇 대 맞으면 깔끔하게 뒤지는데 무슨 그런 끔찍한 소리를 해.”


 경찰의 해이한 마음가짐에 홍준영은 질색한다. 지름길을 놔두고 왜 길을 빙 둘러갈 생각부터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다.


 게다가 칼날이 여기저기 박혀있는 길이라는 게 빤히 보이는 상황에서.


 “회의 다 끝났으면 이제 슬슬 시작할까요?”


 진강석은 연장으로 무장한 범죄자들 앞에서도 태평한 얼굴이다.


 쾨쾨한 냄새가 풍기는 지하 술집에서 경찰과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운 술병만이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조져!”


 경찰과의 불가피한 충돌을 피할 수 없게 됐음을 직감한 양태호 사장이 악을 지른다.


 그의 외침에 조직원들이 일제히 경찰에게 달려든다.


 가장 먼저 조직원11과 12가 나란히 진강석을 향해 달려든다.


 11의 손에는 장도리가, 12는 너클을 쥐고 있다.


 진강석은 그 둘이 연장을 제대로 사용하기도 전에 먼저 득달같이 달려들어 때려눕힌다.


 고통 섞인 신음과 함께 연장이 바닥에 떨어지고 조직원11과 12는 극심한 통증에 몸부림친다.


 이후 흘러가는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진강석은 자신의 뼈가 다치지 않도록 유의해가며 한 주먹 한 주먹에 진심을 담아 눈앞의 범죄자들에게 주먹을 선사하고, 그 행위에서 그는 늦은 밤 퇴근 후에 하는 온수 샤워 수준의 상쾌함을 느낀다.


 하루 피로가 싹 달아나는 것 같고 전신에 신선한 피가 공급되는 것처럼 소름이 돋을 때도 있다.

 거의 광기에 잡아먹힌 얼굴이다.


 그런 진강석의 모습에 홍준영은 외려 안심한다.


 폭력에 매료된 인간의 주먹이 범죄자들에게만 향한다는 게 천만다행이다.


 종횡무진 맹활약하는 선봉장을 지켜보는 심정으로 진강석의 움직임을 멍하니 본다.


 이토록 맹렬한 폭력을 직면하고 있다는 사실이 어딘지 모르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폭력이 아니라 학살에 가깝다.


 진강석의 널찍한 등에는 악마가 내려앉은 것처럼 역동적으로 꿈틀대고 그 등이 움직일 때마다 쾅― 쾅― 쩍― 쩍― 무거운 추가 나무로 된 가구를 때려 부수는 소리가 이어진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울 만큼 엄청난 재능을 목격하는 순간 사람은 감탄하지 않고 공포에 가까운 감정을 느낀다고 한다.


 그런데 그 엄청난 재능이 폭력의 재능일 경우 느끼게 되는 공포란 제곱이 된다.


 홍준영은 범죄자 검거가 아니라 멸살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 진강석의 퍼포먼스에 입을 떡 벌린다.


 폭력의 대척점에서 지내온 사람이라는 점과 초연이라는 특이사항을 고려하더라도 빈집털이 전문 도둑이 아연실색하기에 충분한 수준의 공연이다.


 이건 그야말로 예술에 가깝다.


 강철 같은 주먹 하나에 철저히 붕괴되는 악의 세력. 범죄액션영화 속 화려한 액션 신을 감상한 기분이다.


 때리고―피하고―때리고―피하고―때리고


 그 정교한 반복이 아침에 먹는 뜨뜻한 된장국과 9첩 반상처럼 더없이 든든하다.


 마약시장을 군림하던 잔뼈 굵은 베테랑의 자존심상 양태호는 본인도 직접 전선에 나설까 생각했었지만, 진강석의 기세에 곧바로 생각을 고쳐먹는다.


 아무렴 나이차는 극복하기 힘들다.


 부하들이 하나둘씩 바닥에 나가떨어질 때마다 양태호는 구제의 문이 서서히 닫히고 있음을 직감한다.


 반면 유치장 철창은 물론이거니와 교도소 철문은 활짝 열리고 있음을 뼈저리게 느낀다.


 실로 오랜만에 원초적인 공포를 경험한 양태호 사장은 호신용으로 들고 다니는 주머니칼을 그대로 바닥에 내려놓는다.


 아무리 봐도 이 칼로 저 주먹을 이길 자신이 없다.


 적어도 권총 정도는 필요할 듯싶다.


 근데 그 총도 저 사람이 들고 있다.


 의욕이 눈 녹듯 사라진다.


 때리고―피하고―때리고―피하고―때리고


 “야야! 막내야! 애들 좀 더 불러와!”


 양태호와는 달리 아직 의욕이 남아있던 황중근 이사가 지시한다.


 그러자 죽은 눈을 하고 있던 양태호 사장이 황중근을 똑바로 쳐다보며 고개를 미세하게 끄덕인다.


 얼핏 보면 긴밀히 암호를 주고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황중근은 사장님의 메시지를 해독하지 못한다.


 ‘나대지 말고 구석에 찌그러져있어, 등신 같은 놈아’라는 의미인지 옳다구나, 어서 나서서 뭐라도 해보라는 뜻인지 도저히 모르겠다.


 “네!”


 그 사이 오른쪽 다리와 오른쪽 팔이 부러진 조직원12가 힘겨운 자세로 뒷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든다.


 그 말은 진강석이 듣기에 재즈 선율처럼 감미롭게 들린다.


 아무래도 본래 업무로 복귀해야 할 성싶다.


 예전에 하던 일에 비해 파출소 근무는 너무 평화롭다.


 쩍― 하고 수박이 쪼개지는 소리가 들린다.


 진강석의 주먹을 겁도 없이 턱으로 받아낸 배달원2는 일격에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그 과정을 VIP석에서 관람하던 홍준영은 인체공학적으로 불가능한 자세로 엎어져진 채로 핸드폰을 조작하고 있는 조직원12에게 조심스레 다가가 왼손에 들린 핸드폰을 빼앗는다.


 그리고는 진강석을 고갯짓으로 가리키며 말한다.


 “저 미친놈 잡으려면 총은 있어야 될 것 같네요. 저도 저렇게 미친놈인지 몰랐어요. 미안합니다.”


 그렇게 말한 홍준영의 시선이 우연히 가게 입구 쪽에 닿으면서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의 등장을 감지해낸다.


 이수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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