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먹이 어린 것
입술 끝 슬쩍 닿았을까
핑그르 젖물 돌듯
왈칵, 눈물 쏟았건만
폐경기
그 무렵부터 눈물샘조차 말랐나
뜨듯하니 뭉클한
선지덩이 울컥해도
목구녕 저 너머로
꾸역꾸역 되삼키며
성대가
잘린 개처럼 헉헉거리다 말뿐
찰박찰박 차올라
둥글게 고인 눈물로
말갛게 씻겨내어
금단추 반짝이듯
제 맘껏
실컷 우는 건 얼마나 부러운 거냐
*피카소 그림 「우는 여인」을 모티브로 함.
「우는 여인」 은 피카소의 다섯 번째 연인 도라마르를 모델 삼아 여인의 슬픔을 상징화한 작품.
*모바일 화면을 고려하여, 실제와는 다르게 시조의 행 배열을 변경했습니다.
피카소의 「우는 여인」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언제 울어봤을까?’ 아무리 떠올려봐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중년 여성의 삶은 늘 ‘참음’의 연속이었다. 엄마는, 아내는, 눈물을 보여선 안 된다는 듯 '울음'은 사회적 금기가 되어버렸다. 아이를 키우고, 가족을 챙기고, 일하며 버티는 동안 내 기분은 늘 뒷전으로 밀려났다. 감정 같은 건 말라붙은 채 일상 속에 묻혀만 갔다.
그러다 문득, 가슴 한켠이 뜨겁게 차오를 때가 있다. 말로 다할 수 없는 서운함과 외로움, 지나온 시간에 대한 그리움이 한꺼번에 밀려와 목이 메인다. 눈물샘이 마른 게 아니라, 너무 오래 참아온 탓 아니었을까? 맘껏, 실컷 울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부러운 일인가. 그냥 한 번 푸지게 울어도 괜찮지 않을까?
눈물은 슬픔의 표현이 아니라 '자기 회복의 언어'다. 막혀 있던 속이 뻥 뚫리고, 마음이 말갛게 씻기는 기분이다. ‘맛있게 운다’는 건 결국 나를 돌보는 일이다.
울자. 울자. 콧물 팽! 풀며 실컷 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