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가는 대로 살기보다 마음먹은 대로 살기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이 있겠냐만은, 개관 복지관에서의 업무강도는 생각보다 훨씬 높았다.
업무능력을 떠나 주어진 업무를 처리하기 위한 물리적인 시간 자체가 부족했고, 직원들은 물론이고 관부장님 역시 꼼꼼하고 철저한 일처리 방식으로 유명해 그들을 만족시키기도 쉽지 않았다.
조금 과장해서, 내 인생 마지막 회사라는 생각으로 입사한 만큼 어느 정도 힘듦과 업무과중은 각오했고, 그곳에서의 경험과 경력이 나중에 나를 더 성장시킬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그토록 바라고 원했던, 한때 내 커리어의 최종 목표였던 개관하는 노인복지관에서의 생활은 1년 6개월 만에 막을 내렸다.
한 기관에서 3년도 버티지 못하고 퇴사한 경력은 이력서에서도 삭제하는 게 유리할 만큼 짧은 경력이지만 지금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그 이상 더 그 기관을 다닐 힘도, 의지도, 이유도 없었다.
입사한 직후, 가장 먼저 닥친 어려움은 예상했던 대로 업무량이었다.
사업팀 직원은 단 3명.
하지만 3명이 해내야 하는 사업의 종류는 직원 20명의 복지관과 동일하다. 기본적으로 노인복지관에서 수행해야 하는 기본 사업(상담, 사례관리, 건강생활지원, 평생교육, 지역조직화, 사회참여, 돌봄) 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규모는 작지만 사업별로 구색을 맞추는 것 자체가 3명의 직원이 완벽히 수행하기엔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해냈었다.
차근차근 하나하나 정리하고 매뉴얼을 만들고 운영규정을 만들면서 착착 계단을 밟아나갔고, 시간이 부족해서 야근에 야근을 더했지만 우리끼리 재미있게 일을 했었다.
외부의 고난은 내부의 결속을 다지는데 기여한다 했던가.
분명 너무 힘들고 지치는 시간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그때만큼 내가 무언가에 몰두하고 열심히 마음을 쏟았던 적도 없다.
우리가 해야 하는 공동의 목표는 사업팀의 결속을 다지게 했고, 네 일, 내 일을 따지지 않고 머리를 맞대며 일한 결과 복지관 개관 초기 빠르게 자리 잡았다.
하지만 그 정도의 성과와 안정을 이루기까지 당연히 직원들의 노력과 희생이 들어갈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신체적, 정신적 소진을 막을 수 없었다.
함께 으쌰으쌰 응원하고 다독이는 것만으로 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면서 출근하는 길이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일이 점점 많아지면서 9 to 6가 원칙이었던 근무시간은 자연스럽게 8 to 2로 늘어났다.
아침 8시쯤 출근해서 새벽 2시까지 쉬지 않고 일하기.
누군가는 무슨 IT업계도 아니고, 복지관 종사자가 새벽 2시까지 일할 일이 뭐가 있어?라고 말하겠지만 실제로 그랬다.
정규 운영시간인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는 이용자인 어르신들로 기관이 북적였고, 이용자들이 많을수록 처리해야 하는 민원과 사업, 프로그램 관련 업무가 매일매일 새롭게 생겨났다. 그날의 업무를 마무리하고 내일을 준비하다 보면 어느새 밤 12시가 훌쩍 넘는 시간이다.
정말 화장실 가는 것도 깜빡 잊을 만큼 바빠, '아 맞다, 화장실 가야 하는데?' 생각이 든 적도 있었고, 한 시간이라도 빨리 퇴근하고 싶어서 저녁은 먹지 않고 일하는 날이 태반이었다.
그즈음 내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은 '내 휴대폰 어디 있지?'였다.
1층 사무실에서 2층 사무실로, 상담실에서 프로그램실로, 프로그램실에서 강사대기실로 정말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며 종일 종종거리며 온 기관을 누비다 보니 항상 휴대폰을 어디 두고 왔는지 깜빡깜빡하기 일쑤였다.
동료들은 보통 약속을 깜빡하고 휴대폰을 잃어버리고, 집에서 리모컨을 찾는 것처럼 큰일이 아니라 했지만, 그즈음 정말 우리 팀원들은 하루에 세 번 이상은 내 휴대폰을 찾으러 온 기관을 뒤졌을 정도로 자주, 빈번히, 걱정스러울 만큼 건망증이 심해졌다.
당시, 젊은 층에서도 많이 발생한다는 조기치매에 대한 뉴스가 자주 보이던 때였는데 문득, 나도 치매인가?라는 걱정이 들었다. (한번에 많은 일을 처리하다보니 뇌에 과부하과 왔나 싶을정도로 자주 까먹고 잊어버렸다.)
모두들 너무 바쁘고 정신이 없어서 그렇다고 했지만 점점 심해지는 나의 건망증에 무서워졌다.
당시, 복지관에서는 자체 사업뿐만 아니라 복지관 부설 노인주간보호센터 운영도 병행했었는데 노인주간보호센터는 특성상 어르신들의 송영서비스까지 함께 제공되었다. 문제는 주간보호센터 직원 중 운전원을 아직 채용하지 못한 채 이용자 등록이 먼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하는 수 없이 몇 안 되는 복지관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아침저녁으로 운전을 하게 되었고, 복지팀 직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르신들의 집을 돌면서 한분 한분 모시고 오고, 마치는 시간에 맞춰 또 한분 한분 데려다 드리는 게 잠시 짬을 내면 가능한 일인 것 같지만, 중요한 건 모두들 하던 업무를 중단하고 다녀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업무 스케줄을 짤 때 송영 시간을 고려해야 하고, 일을 하던 중간에 다녀오는 게 실제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전날에도 새벽까지 일을 하다 다음날 아침 일찍 주간보호센터 어르신들을 모시러 갔을 때 사고가 났다.
마지막 어르신을 태우고 다시 돌아가려는 찰나, 후진 기어를 넣는 걸 깜빡하고 바로 액셀을 밟았다. 다행히 벽에 부딪히면서 앞쪽 라이트가 깨졌고 인명사고는 없었지만, 그 순간 겨우겨우 붙잡고 있던 정신이 혼미해졌다.
가벼운 접촉사고였지만 그때 도미노가 무너지듯 정신이 와르르 무너졌다.
중요하게 챙겨야 하는 일들이 매일매일 있고, 항상 24시간 긴장한 채로 1년여를 살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스트레스에 매우 취약해진 상태였다. 사소하고 작은 실수들이 반복되면서 스스로를 자책하는 일들 또한 빈번해져 있었다.
차는 정비소에서 금방 고치고 새 차가 되어 나왔지만 나의 마음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치명적인 실수는 아니지만 사소한 실수 자체가 더 스트레스였다.
이런 것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다고?
그거 완전 신규일 때나 하는 실수잖아?
휴대폰을 왜 자꾸 잃어버리는 거야? 진짜 치매야?
항상 긴장한 채로 하루를 살다 보니 신경이 예민해지고 매 순간 날카로워졌다.
나의 실수를 용납할 수 없는 만큼, 팀원들의 사소한 실수에도 관대하지 못했고, 배움이 필요한 신규 직원에게도 내 기준을 들이대며 날카롭고 엄격하게 몰아붙였다.
그러던 어느 날 사무실에서 팀원에게 온갖 짜증을 내고 있는 팀장을 발견했다.
간담회 시간을 잘못 안내해서 참여 어르신들이 예정보다 30분 먼저 복지관에 도착한 것이다.
어르신들을 맞이할 준비가 미처 끝나지 않았지만 마침 회의실이 비어 있었고, 예정보다 조금 빠르게 간담회를 진행한다고 문제 될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시간을 잘못 안내한 그 실수에 꽂혀서 직원에게 질책을 쏟아내고 있었고 점점 업무 지도를 넘어 짜증을 퍼붓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저 팀장, 지금 그냥 자기 화풀이하고 짜증 내는 거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팀장이 바로 나였다.
한바탕 화풀이를 하고 난 다음 뒤늦게 공허함이 밀려왔다.
내가 제일 싫어했던 상사의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이었다.
당시 함께 근무했던 부장님은 철저하고 완벽한 업무처리로 존경을 받았지만 직원들을 향한 막말과 무시, 이간질로 악명이 높았는데 이것 역시 내가 제일 싫어하던 상사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그녀와 닮아가고 있었다. (그녀를 탓하는 것은 아니다.)
24시간 중 꼬박 15시간을 매일 함께했고, 그녀의 결재를 받기 위해서는 좀 더 완벽하고 철저하게 일했어야 했다. 팀장이 되고 나서는 나 혼자만 잘해서 될 일이 아니라 팀원들 모두를 다독이고 함께 잘해야 한다는 게 문제였다.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고, 팀원들이 잘 따라오지 못하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제일 쉬운 방법으로 직원들을 괴롭히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제일 싫어했던 무시와 폭언으로.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었다.
일이 힘든 것뿐만 아니라 이러다간 내가 정말 원하지 않는 모습으로 나이가 들 것 같았다.
과중한 업무 속에서 평정심을 유지하고, 시간이 부족하더라도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팀장의 모습으로 팀원들을 이끌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그러지 못할 것 같다.
그럴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곳에 남아서 말 그대로 버틴다면 다시 취업시장에서 전전긍긍할 일은 없을 것이다. 조금 더 시간이 흘러 과장이 되면 개관멤버라고 알게 모르게 대접(?)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 용납할 수 없는, 이상한 사람이 될 것만 같았다.
'쟤 왜 저래 진짜~'라고 생각했던 바로 그런 사람.
직장 상사로서 정확하게 업무지시를 내리고 명확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길잡이가 되어 주는 대신, 팀장인 내가 원하는 방향을 강요하고, 팀원의 능력을 발휘하기도 전에 무시와 한숨으로 능력을 꺾어버리는 빵점자리 팀장 말이다.
혹자는 자신이 원하는 이상적인 팀장, 과장, 선배의 모습을 포기하고 현실을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 지금 일이 너무 바쁘니까, 인력이 없으니까, 직원이 진짜 능력이 없으니까,,
갖가지 핑계를 만들어내면서 내가 원하지 않던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을 합리화할 수도 있다. 그 편이 오히려 편한 사람도 있으니.
하지만 그러자니 하루하루에 눈을 뜨는 것부터가 고난이었다.
잠들기 전에는 하루가 후회스럽고 다음날 같은 일상이 반복된다. 매일이 괴롭고 미안하고 화가 난 채로 하루를 보내자니 그런 부정적인 감정들로 가득 한 그때의 나의 시간이 무엇을 위한 것이었나 하는 생각에 까지 이르렀다.
그렇게 나는 온전히 나를 위해서 퇴사를 결심했다.
사실 직장을 그만둔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이다. 더구나 내가 원했던 곳에 몸담고 있었다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었다면, 어려움은 더 할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누가 봐도 부정적인 방향으로 변해가는 나의 모습을 직면하는 것보다 오히려 퇴사를 결심하는 편이 더 쉬웠다.
퇴사한 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조금 더 버텨볼걸..이라는 후회를 한 적은 없다. 재직 중에 정말 최선을 다했고, 평생을 이어가고 싶은 배울 점 많은 동료도 만났고, 내 한계를 스스로 직면하고 극복하기 위한 노력도 해 봤다.
개인적으로 중요한 시점에 '퇴사'라는 어려운 결정을 결단력 있게 내린 내가 오히려 대견하기도 하다.
그리고 퇴사한 후부터 지금까지 더 이상 휴대폰을 어디 뒀지? 깜빡하는 일은 없다.
나의 모자람과 한심함을 반성하며 잠드는 일도 없고, 자책으로 나의 시간을 허비하는 일도 없다.
이것만으로도 그때의 퇴사라는 나의 선택이 가장 합리적이고 옳은 선택이었음이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