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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찬민들레 Nov 28. 2024

잘 굴러가던 톱니바퀴의 반란

더 이상 부품으로 살지 않겠다는 다짐.

정신없이 일에 파묻혀 살던 어느 날, 갑자기 최대한 멀리 그리고 아무도 없는 곳으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출근해서 퇴근하는 순간까지 끊임없이 나를 찾아대는 직원들과 복지관 어르신들.

매일을 ’분‘단위로 쪼개 잡혀있는 업무 스케줄표.

매 순간 발생하는 돌발 이벤트가 지뢰처럼 터지는 와중에 그날그날 직원들의 고충과 안위를 보살피는 일까지.

정말 전쟁 같은 하루를 보내다 보면 오히려 머릿속이 하얗게 적막이 흐르는 순간이 온다.

그날이 바로 그런 날이었던 것 같다.     


더 이상은 못하겠다.


특별할 것 없는 하루였지만 그동안 쌓인 피로로 체력적 한계와 정신적 소진이 함께 찾아온 날이었다.

하지만 퇴사를 결정한 후 그만두는 것도 시기도 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었다.

복지관에서 나름의 주요 업무를 맡고 있는 사업팀의 팀장이었고, 그래도 아직 애정이 남아있는 곳이었던 것만큼 몸만 쏙 빠져나온 채 나 몰라라 등돌릴 수는 없었다.

어렵게 어렵게 퇴사 결정을 알리고 다음 후임자가 올 때까지 자리를 지키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퇴사결정을 통보하고 퇴사한 그날까지 거의 3개월이 걸렸고, 그 3개월이 가장 바쁘고 힘들고 지친 시간이었던 것 같다.     

사실 누구도 예상치 못했으리라.

사업팀 팀장이 갑작스럽게 그만둔다니. 그즈음 갓 입사한 신규직원들의 입퇴사는 몇 차례 있었지만 사업의 중심을 맡고 있는 개관멤버 팀장의 퇴사 결심은 내가 처음이었던 터라 모두 당황하고 술렁이는 분위기였다.     


퇴사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퇴사하기로 한 그 회사에서 남은 시간을 보낸다는 게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일은 이미 진절머리가 나는데 대충 할 수 없고, (뒷말을 안 들으려면 오히려 더 철저해야 한다.) 직원들의 원망과 부러움(?)을 뒤통수로 느끼며 일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곧 퇴사할 사람'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채 일하는 것도 어려운데 더 어려운 난관은 바로 상사였던 부장님이었다. 아직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의 퇴사는 곧 본인을 향한 배신이라고 생각했던 그녀는 왜 퇴사를 하는지 퇴사하고 무엇을 할 건지 캐물었고,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퇴사하려는 건지 물으며 나의 결정을 되돌리려 매번 다그쳤다. 

처음에는 한 달 뒤 퇴사하기로 했지만 기관의 사정상 한 달만 더 있어달라는 관장님의 요청에 그러기로 했다. 그랬더니 부장님은 나에게 본인에게는 한 달 뒤에 퇴사한다더니 왜 관장님이 더 있으라니까 그러기로 했냐며, 왜 본인 말은 안 듣고 관장님 말씀만 듣는 거냐고 쏘아붙였다.     


그녀에게 인간적인 연민이나 동료애는 사실 애초에 없었던 터라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기는 찰나 이번에는 업무 보복이 시작되었다.

복지관 사업에는 연간 사업 시즌이 정해져 있다. 연말이 되어야 사업보고회를 하고, 10월 즈음되어야 나들이를 가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퇴사하기 전에 큼직큼직한 사업들을 모두 끝내버려야겠다고 선언했고 진짜 11월에 예정되어 있던 나들이를 10월로, 평생교육프로그램 친선대회를 9월로 바꿔버렸다.

아직 시기가 도래하지 않은 일까지 처리하느라 진짜 신체적 정신적으로 지쳤지만 어쩔 수 없었다. 

부장님은 미웠지만 남은 동료들이 너무 좋았고, 미우나 고우나 온 정성을 쏟았던 복지관인만큼 좋은 기억만 가져가고 싶었기 때문에 문제 삼지 않았다.


하지만, 남은 힘을 끌어모아 그곳에서의 마지막 회원 나들이를 준비하던 어느 날 결국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현수막을 수령하는 일정이 꼬인 것이 발단이었다. 며칠 뒤 있을 나들이에 필요한 간식을 구입하러 복지관 카드를 가지고 출장을 나왔는데, 현수막 업체에서 약속시간보다 일찍 복지관으로 현수막을 가지고 온 것이었다.

다시 기관으로 복귀해서 현수막을 결제하고 나오기엔 시간이 빠듯해 업체에 양해를 구하고 나들이 종료 후 귀가하면서 결제를 해 드리기로 했다.

일을 하다 보면 흔히 발생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날따라 부장님은 왜 결제를 바로 해 주지 않았는지 다그치며, 약속시간을 제대로 잡아야지 허술하다는 둥, 퇴사를 앞두고 마음이 떴다는 둥, 원래 그런 식으로 일하던 사람이었냐는 둥 누가 봐도 제멋대로 억지를 부리며 나를 몰아세웠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한마디를 덧붙였다.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르겠지만, 너 이런 식으로 일하는 거 다른 기관에서도 다 알게 할 거야. 절대로 다른 데 가서 이런 식으로 일하지 마.'


이런 식? 도대체 어떤 식을 말하는 걸까? 굳이 안 해도 될 일은 기꺼이 떠맡은 내게 왜 자꾸 시비를 거는 걸까?

너무 억울하고 분하고 화가 나서 두 눈이 순식간에 눈물로 가득 찼고, 그 길로 화장실 맨 마지막칸에서 한참을 나오지 못해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두근두근거리고 눈물이 날 것 같다.

한때는 나도, 회사에서 눈물바람 날리는 자기 관리 안 되는 직원을 한심하다 생각했고 눈물 하나 컨트롤 못하는 신규직원들에게 혀를 쯧쯧 찾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내가 흘린 눈물은 그동안 참아왔던 그녀의 횡포에 대한 분노와 상급자라는 이유로 본인 마음대로 나를 평가하는 잣대에 대한 억울함이었다. 

퇴사를 앞두고 평소보다 더 바쁘게 일하고 있던 내게 예전 직장 동료들은 거기서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냐고 물었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다고. 

함께 근무했던 복지관 직원들은 내게 말했다. 본인들이 오히려 미안하다고.     


이대로 퇴사할 수는 없었다.

남은 직원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퇴사하는 내가 하고 가야겠다 마음먹었다.     

사실, 여러 번 언급했듯이 당시 부장님은 업무능력은 뛰어났으나 인간으로서, 상사로서, 동료로서는 정말 최악이었다. 그녀에게 업무적으로 많이 배웠지만, 안타깝게도 배우고 싶지 않은 것도 자연스레 스며들어버린 것도 사실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당시 모든 직원들은 부장에 대한 불만이 머리끝까지 차오른 상태였고 일부는 순응으로, 일부는 외면으로 대응하고 있던 터였다.

난 이미 떠날 사람이었지만, 떠날 사람이기 때문에 남은 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가야겠다 마음먹었다.

분노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생각했고, 감정을 배제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사실만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


한바탕 눈물바람 후 오히려 말끔해진 정신으로 다음날 관장님과 독대했다. 

직원들이 왜 힘들어하는지, 내 퇴사의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신규직원들의 이직률이 왜 높은지, 소속 직원의 입장이 아닌 제삼자의 입장에서 신랄하게 말씀드렸고, 내 가슴속에 남은 복지관에서의 좋은 추억과 기억을 그녀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곳, 꺼려지는 곳,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간으로 망쳐 놓았다는 사실에 매우 속상하다 말씀드렸다.       

감정적이지 않은 마음으로, 최대한 객관적으로 나와 직원들의 입장을 대변한 후 돌아온 관장님의 말씀은 날 놀라게 했다.     


'많이 힘들었지? 먼저 챙기지 못해서 미안하다. 대충 알고는 있었는데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다 알고 계셨다고 했다. 하지만 닥친 업무들을 당장 처리하기 위해서는 실무를 이끌어줄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했고, 리더십과 카리스마(로 포장된 강압일지라도) 있는 부장의 자리를 횡령이나 비위처럼 대형사고가 아닌 이상 당장 쳐내기엔 오히려 기관의 위험부담이 큰 상태라 알고 있지만 묵과했던 것이었다.

앞으로는 점점 더 나아질 거라 말씀하셨지만 사실 믿지 않았다.      

퇴사 당일 어르신들을 모시고 인근 지역으로 나들이까지 다녀온 나는 야근과 나들이 평가회를 마지막 업무로 그곳에서의 일정을 마무리 지었다.

전 직원이 모여 앉아 나들이 평가회를 진행하다가 갑자기 진행된 나의 송별회.

워낙 바쁜 시기라 따로 송별회를 챙길 겨를이 없어 간단히 직원 파티로 대체했다. 


모두들 돌아가면서 좋은 말 아쉬운 말을 전하며 하나둘씩 눈시울이 붉어졌고 이내 주룩주룩 눈물바다가 되었다. 그 와중에 제일 눈물을 많이 흘리며 아쉽다 말하는 부장을 보며 경악했지만, 저 눈물이 거짓눈물일지언정 나 스스로를 위해 아름답게 마무리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퇴사한 직후, 잇따라 행정팀 팀장님의 퇴사 소식이 전해졌고, 그 후에도 꽤 자주 신규직원 채용공고가 올랐다 내렸다 반복되더니 곧 그 복지관 이직률이 너무 높아~ 뭔가 있나 봐~라는 발 없는 소문이 종사자들에게 돌기 시작했다.     

퇴사 직후 나는 원하던 대로 좀 더 멀리, 아무도 없는 곳으로 숨어버리고 싶었던 제주도로 무작정 향했고 그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위해 디딤돌을 다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제일 좋았던 시기를 꼽으라면 바로 그 시기.

제주도에서의 1년이다. 육지에서 힘들었던 나를 포근히 안아주고 처음으로 아무런 부담감이나 압박 없이 놀고먹고 일하며 생활했던 그 시간.

제주도에서의 시간을 한참 즐기고 있을 때 몇 차례 관장님께 전화를 받았지만 고민할 필요도 없이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복지관에서의 그 힘든 시간이 없었다면 제주로로 훌쩍 떠나버려야겠다 생각하지도 못했을 테니 오히려 고마워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잠깐 스치기도 했다.    


당시에도 이미 10년 가까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회사에서 직원은 부품 같은 존재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어찌 보면 식상하다 느낄 수도 있는 부품의 존재.

하지만 그 사실을 직면하는 상황에서는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이 너무 낯 뜨겁고 꼴사나워 저절로 눈이 감아진다.

모두의 고충과 힘듦을 알지만, 올바르게 바로잡기에는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이 너무 많고, 눈을 감고 덮어버리자니 당장 나는 편하고 기관은 운영되지만 내홍은 쌓이게 된다.


기관장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실버인력뱅크에 근무할 때도 그랬다. 당시에도 한 명의 직원이 모두를 힘들게 했지만 그 직원이 하는 업무를 대체할만한 다른 인력이 들어오기까지 시간과 품이 너무 많이 들었다. 그때도 당시 기관장님은 그녀를 품는 쪽을 선택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어려움의 원인을 기관장님은 품기로 하셨고 그 결과 그 복지관은 근속기간 평균 1년 안팎이라는 오명을 가지게 되었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다를지도)

뿐만 아니라 그 부장님은 이후 퇴사하는 직원들에게도 온갖 악담과 심지어 저주를 퍼부었고, 정작 본인은 남은 직원들의 뒤통수를 치듯 비겁한 방법으로 퇴사했다.

내게 의미 있고 소중했던 그곳에서의 시간을 그녀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악몽 같은 곳으로 만들어버렸고, 퇴사 후 몇 년간은 정말 근처에도 가기 싫을 만큼 치가 떨렸다.

하지만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진짜인지.

10년이 지난 지금은 어느덧 열 번째 생일을 맞은 그 기관에 내 흔적이 아직 남아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심지어 그녀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그러한지 생각하며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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