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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정원 Dec 13. 2024

06. 책방을 지키는 마음에 관하여

반딧불이 반짝이는 시골 책방



그리고 또 많은 동네책방을 구경했다.

     

어린 시절 기억과 옛 시간을 붙잡고 싶은 듯 부모님의 시골집을 책방으로 만든 서귀포 위미의 <북타임>     


2년간 손수(남편의 손으로^^) 지은 집을 갤러리 같은 그림책방으로 꾸며놓은 송당의 <벨벨왓>     


구름인 듯 구름 아닌 ‘먼지’ 캐릭터가 밤새 책장 사이사이에 내려앉아 모든 이야기를 읽고 다닌다는(^^) 송당의 <동당서림>     


등등...


더불어 크고 작은 북콘서트에서 만난 작가들과 책방지기, 낭독가들, 독자들이 생각난다.

그들의 사뭇 진지하며 수줍음이 배어있는, 잠깐씩 다른 세상에 다녀오는(?) 내밀한 표정들이 떠오른다.          


세상에는 혼란의 시기마다 대두하는 거대담론이 있는데, 그것은 기존의 세상을 유지할 것인가, 새로운 시대로 들어설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런 커다란 의문과 화두는 개인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기존의 세상을 지키려는 마음과 새로운 시대로 뛰어 들어가려는 마음이 곧 개인의 태도와 삶의 형태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생각난다.

미디어와 숏츠의 시대에 여전히 글을 ‘읽고 쓰는’ 사람들 말이다.     


이들에 대해 말하자면,

기존의 세상을 지켜나가려는 고집스러운 마음을 지닌 자들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와 동시에 그 누구보다도 새로운 시대로 우선 뛰어 들어가는 유연한 자들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문득, 스웨덴 출신 언어학자 헬레나 노르베르 호지의 「오래된 미래」라는 책 제목이 떠오른다.     


이 화려하고 눈부신 미디어 시대에 크기 조절과 움직임의 기능이 없는 하얀 종이 위 까만 글자 읽기를 기꺼워하는 사람들.

질서 있게 배열된 글자들을 통해 시대를 주행하고 세상을 경험하며 타인을 이해하는 사람들.

어쩌면 이들은 가장 오래된 방식으로 현재를 살아가며 미래를 맞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강 작가는 노벨문학상 수상소감에서

“언어는 우리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묻고, 이 행성에서 사는 사람의 관점에서 상상하기를 고집하며, 우리 서로를 연결한다”고 말했다.          


동네에 작은 책방 하나 열면서, ‘오래된 미래’와 노벨문학상 수상소감까지 언급하는 게 근래 유행하는(?ㅠㅠ) 과대망상일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여전히 언어의 힘을 믿고 언어를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


나는 읽는 사람을 사랑하고, 쓰는 사람을 지지한다.

나와 타인, 존재와 세상에 대해 (두려움이 아닌) 사랑의 언어를 건넬 줄 아는 사람을 신뢰하고,

이미지와 침묵 속에서 언어를 길어 올릴 줄 아는 사람을 동경한다.     


세상과 연결되기 위해 쓰는 사람,

자신과 연결되기 위해 읽는 사람,

서로를 연결하기 위해 존재하는 작은 책방을 사랑한다.          


동네책방을 돌아다니며 만난 책방지기들에겐 하나같이 두 가지가 있었다. (네 가지였다면... ^^)     

동네에 대한 애정과 책방에 대한 자부심이 그것이다.     


내가 사는 곳 - 삶터를 애정하는 마음 없이는 그 동네에 작은 책방을 열 수 없다.

내가 일하는 곳 - 일터에 자부심이 없이는 ‘돈도 안 되는’ 작은 책방을 해나갈 수가 없다.          


‘내 것’을 하고 싶은 열망의 실타래를 따라 더듬거리며 걸어 들어가, 작은 마을의 골목 골목에서 만난 책방지기들에게 내가 배운 것.

그것은 책방을 지키는 그들의 마음이었다.     


책방으로 들어서며 얼굴이 환해지는 한 명의 독자(물론 여러 명이라면, 음, 고맙습니다!),  맘에 드는 문장 하나를 가슴에 품고 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기 위해, 책방지기는 오늘도 책방을 지키고 있다.

책방 가득, 애정과 자부심을 장착하고서 말이다.     


그들의 의연한 마음을 간직하기 위해, 여기에 적어둔다.

책방을 시작하는 내 첫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서도.



- 다음 주에는 ‘독자’의 마음에 대해 쓰려합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옛 시간을 간직한 동네책방 '북타임' (서귀포 위미)
제주의 아름다운 그림책방 '벨벨왓' (제주 송당)
제주 (동)쪽 송(당)리, (서)경숙 기다(림) - 제주의 너무 예쁜 동네책방 '동당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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