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바윗돌을 깨부수고 있을 때, 그 옆에는 내가 있었다. 그의 이마를 닦아주고, 그에게 시원한 음료를 건네주면서 말이다. 소설가가 창작의 압박감으로 거의 쓰러졌을 때, 여전히 나는 옆에 있어주면서 그의 더러운 셔츠를 벗기고, 깨끗한 옷을 가져다주고, 그가 팔을 집어넣을 수 있게 도와주며, 단추를 잠가주고, 그가 격려를 필요로 할 때면 용기를 북돋아주고, 밤에는 그의 옆을 지켜주며, 그에게 당신은 할 수 있어,라고 말해준다.
사람들은 여자들이 어떻게 힘든 일을 헤쳐 나가는지, 여자들이 어떻게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청사진과 묘책과 아이디어들을 생각해 내는지 알고 있다. 그리고 가끔 그것들을 한밤중에 아기 침대로 가다가, 스톱 앤 숍에 장 보러 가다가, 또는 목욕을 하다가 잊어버리는 것도 알고 있다. 여자들은 그것들을 그들의 남편과 아이들이 무탈하게 나아갈 수 있도록 앞길에 기름칠을 하다가 잊어버린다는 것도.
모두에게는 아내가 필요하다. 심지어 아내들도 아내가 필요하다, 아내들을 돌보고, 그들은 날아다닌다.
메그 월리처의 『더 와이프』
내 가정생활의 리듬이랄 것도 공고하게 굳어져버려서 서서히 바뀐 것인지 시작부터 그랬던지 이제 불분명해졌다. 얼핏 보면 대부분 가정생활의 주도권은 여자들이 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자들의 목소리가 더 크고, 그들이 많은 것들을 결정하며, 다른 구성원들은 일사불란하게 그녀의 지시를 따르는 것처럼. 실제로 조금이나마 가정을 이루어 생활을 해 본 여자들이라면 알게 된다. 힘들고 번거롭지만 선뜻 누군가 맡으려 하지 않기에 '우리가 함께 하는 삶'이라는 애정과 체념을 담아 조금씩 무언가를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와버렸다고. 애초에 그럴 마음의 준비를 한 건 아니었다고. 여자들 또한 가정이 잘 굴러가고 가정에 속한 이들을 온전하게 돌보는 무수한 과업들을 척척 해낼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나지 않았다고. 하지만 나는 어느새 그가 가정생활을 영위하는 데 있어 모든 지침과 설명이 안내되어 있는 '친절한 매뉴얼'이 되어 있었다.
나 또한 시작은 그러했을 것이다. 그가 들어온 곳 또한 내 삶의 영역이기에 애정을 담아야 하는 일들이 하나 둘 늘어갔다. 버거워지면 그에게 요청을 했고, 나와 뜻이 다르거나 나의 노력에 미치지 못한다는 판단 하에 체념하는 일들도 하나 둘 늘어갔다. 결국 그 체념하는 일들은 다시 나에게로 돌아왔다. 사회적으로도 나보다 남편의 자리가 우선적으로 잡혀야 했고(그의 불안정이나 힘듦은 우리 행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여겼다), 그런 그를 위해 온 힘을 다해 돕고 지지하는 것이 당연하고(왜 그런지 남편을 돕는 아내의 역할에 대해 떠밀리는 듯한 압막감을 느꼈었다), 집이라는 공간이 어수선하고 더럽지 않도록 세심하게 신경 쓰고(누구에게나 정돈된 집은 안정된 생활의 필수적인 환경인데 내가 손을 놓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어가고 지병이 생길수록 건강한 식사와 영양을 고민하고(나라도 나와 식구를 돌봐야 문제점들이 해결될 거라는 조급함이 들었다), 원가족과의 관계에는 의무와 최선을 고려해 신경을 곤두세우고(이상하리만치 결혼은 둘의 만남이 아니었다는 진실은 무겁게 뚜렷해져 갔다), 등등. 정말 등등.
제마 하틀리는 『남자들은 항상 나를 잔소리하게 만든다』에서 가정 내 여성이 떠맡게 되는 감정노동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한다.
"나는 남편에게 내가 언제나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책을 고민하고, 가능한 한 명랑 발랄한 목소리로 누군가에게 부탁을 하는 것이 얼마나 지치는 일인지, 내가 왜 다른 사람들의 심리적 짐을 덜어주기 위해 모든 집안일을 관리 감독해야 하는지 설명했다. 처리해야 할 일을 가장 먼저 발견하는 사람은 항상 나고, 나의 선택권은 제한되어 있다.
가정 안에서 진을 빼게 하는 정신적·감정적 노동―그 노동에 의해 가장 이익을 얻는 사람들에게는 대체로 간과되는 종류의 노동―을 보통은 여자들이 모두 감당해야 한다는 기대가 당연시되면서, 우리 여자들은 너무나 쉽게 이 해로운 기대에 멋모르고 끌려간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기에 그 안에 발을 딛고 살아간다."
아내라면 살림과 요리, 청소 등 기본 생활을 뒷받침하는 노동은 가뿐히 넘겨야 하다. 더 어렵고 복잡한 문제는 그 뒤의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에 있다. 여자들을 정신적으로 지치게 만드는 온 가정의 비밀. 가정의 일상을 영위한다는 것은 주어진 하나의 과업을 해결하면 목표가 완수되는 분절적인 특성의 것이 결코 아니다. 일종의 길이가 무한대인 정신적 스펙트럼이다. 오늘 저녁 식사의 메뉴, 그렇다면 냉장고 속에 남아 있는 재료들과 추가로 구입해야 할 것들, 장을 보는 장소 혹은 방식, 일을 마친 후 그의 컨디션 확인, 대략 며칠간 식단의 균형 정도, 이 선택이 그에게도 괜찮았는지 의견 묻기, 끝나지 않고 연속되는 일련의 과정이다. 이 작은 예시는 사소한 티끌 같은 것이라 절대 중요해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남아 있는 식재료와 앞으로의 식탁을 고려해 마트에서 재료를 속속 바구니에 담는 일은 일어나지 않고, 내가 골머리를 쓰지 않으면 건강하고 신선한 음식의 필요성을 앞서 알려주지도 않는다.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다. 식사에 한정된 일도 아니다. 많은 영역에서 계속 반복되는 일이다. 가정의 온전한 삶이 지속되도록 누군가는 육체적으로, 심리적으로, 하나, 둘, 셋, … 아홉, 열, 모든 부분을 해낸다. 혹은 해내야 한다는 불편한 감정에 시달린다. 그 누군가는 대부분 아내이다.
나도 아내가 필요하다. 이 이기적인 마음.
누가 내 기본적인 생활을 돌봐주고, 기분이 괜찮은지 걱정해 주고, 내가 하고 싶은 조금 더 해볼 수 있도록 자신의 시간과 헌신으로 날 지지해 주었으면 좋겠다.
날 위해 기꺼이 해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그렇듯이.
잭, 이 한심한 새끼
내 모든 걸 주었더니 단 한 개도 들고 오지 않았다
비유, 비유가 하고 싶다면 해주지
이깟 콩!
하면서 내던져 버린 나의 맘에 대해서
악취를 풍기는 이 뚱뚱한 식물 줄기에 대해서 말이다
정당한 거래를 할 수 없는 이번 생애엔
네가 가져올 수많은 자루라도 상상하며
살아야 해 그게 왜 잘못이야
나에게는 아직도 하다 만 리모델링과
애들 교육 문제가 남아 있어 안 그래 안 그래?
잠든 남자에게 물었다 검어진 엉덩이에 대고
<정다운의 시 '잭보다 콩나무'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