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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하 Aug 28. 2024

텍스트 에피소드 7

아이를 낳는 다는 것, 누가 좀 알려줄 수 있나요. 아주 자세히요.

그녀도 임신했다. 하지만 그녀는 출산을 하러 병원에 가는 게 아니다. 왜냐하면 그 말, 그 단어들은 그녀가 곧 하게 될 경험과는 너무나도 달라서 사용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밤색과 갈색 체크무늬 코트를 입고 머리에 스카프를 둘렀다. 제니는 전에도 그 여자를 본 적이 있지만 그녀가 임신을 원하지 않았고 이렇게 자기 자신을 둘로 나누기를 선택하지 않았고 그 어떤 고난과 새로운 시작도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 외에는 그녀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 그녀에게 다 잘될 거라고 말하는 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제니는 긴 기다림을 준비하며 자리를 잡는다. 지금 그녀는 애초에 아기를 낳고 싶었던 이유가 기억나지 않는다. 그 결정은 다른 누군가가 한 것이고, 지금은 그 사람이 그렇게 결정한 이유가 분명치 않다. 제니는 아기를 낳은 여자들이 서로에게 비밀스러운 미소를 짓던 것을 기억한다. 마치 제니는 모르는데 그들은 알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듯. 그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들의 기준에서 제니를 배제해 버렸다. 그 지식, 그 미스터리는 무엇인가. 아기를 낳는 것은 정말 차 사고나 오르가슴보다 더 자세히 설명할 수 없는 걸까?


제니는 아이 없는 여자 앞에서 그런 암호와 배제에 동참하는 짓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제니는 충분히 나이를 먹었다. 그러한 배제를 충분히 오래 겼어왔고, 그게 성가시고 잔인한 행동이라는 걸 깨달았다.


잠깐 동안 제니는 그 여자에 대해 생각한다. 그 여자의 동기도 분명치 않다. 왜 그 여자는 아이를 낳길 원하지 않을까? 강간을 당한 걸까? 애가 이미 열 명 정도 있는 걸까? 돈이 없어서 굶고 있나? 그렇다면 왜 낙태를 하지 않았을까? 제니는 알지 못한다.


문 밖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린다. 제니는 생각한다. 분명 그 여자일 거야.

분명 곁에서 지켜보며 제니가 무사한 것을 확인하고 다음 타자를 찾으러 도시의 거리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출산>*


나는 아이를 '원하지' 않습니다. 아니, 아이를 '원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니, 아니.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 내게도 시간이 조금 더 있지 않을까요? 나는 도저히 선택할 수가 없습니다. 무엇을? 선택? 죄송하지만, 이쪽과 저쪽이 있는 선택의 문제……아닌가요? 나는 선택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한 여자입니다. 아이를 원하지 않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지요. 그런데 애초에 아이를 원한다는 것은, 무엇인가요? 내 몸을 통해 새로운 존재를 밖으로 끌어내는 일은 너무도 거대하잖아요. 내게도 누가 좀 알려줄 수 있나요. 아주 자세히요.


보기 드물게 아이를 많이 낳은 어느 여작가는 자녀를 낳고 기르는 일에 대해 '인간이 마땅히 살아야 하는 삶'을 살아냈다고 얘기했다. 그 글 속에는 아이들과 살아가는 일상을 통한 삶의 이야기들이 있었고, 그녀는 지쳐있었고, 그녀는 행복했다. 그리고는 담담히 말하고 있었다. '마땅히 살아야 하는 삶'이라고. 나는 왜인지 슬펐다.


임신과 출산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는가. 적당한 때에 결혼을 한 것도 사실이고 흔히들 말하는 생물학적 한계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내 인생에 대한 결정에서라면 물 흐르듯 당연한 일은 없었는데. 지나치게 곱씹고 눈앞에 놓인 선택의 문제를 쥐어뜯고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납득하고 입장이 다르다면 기어코 나의 입장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번거로움을 기꺼이 감수하며 살아왔는데. 임신과 출산에서는 설명할 수 없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언제쯤부터였는지 보이지도 않는 시선과 목소리들이 내 주변 어딘가에 항상 있었다. 그 시선과 목소리에는 '나도 모르는 또 다른 나' 조차 있었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에 대해, 그 주체가 바로 나여야 한다는 것에 대해, 질문하고 또 질문했다. 이 장면에서 옮긴 텍스트 이외에도 무수히 많은 글조각들을 찾아 나섰다. 읽고 또 읽고도 혼란스러워 주변의 가까운 이들에게 물을 때면, 어려워지는 표정 만이 진실되게 돌아왔다. 그녀들도 누군가에게 듣지 못했었고, 설명해 낼 수도 없었던 것이리라. 그 누구도 면밀히 모르는데. 그녀들은 수행한 자, 나는 수행하지 못한 자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두려움의 파도에 치이는 중에 죄책감이라는 무게까지 떠안으려는 내가 한심했다.


"마치 꿈속에 있는 것처럼 나는 도와달라고, 인간으로서 지금 보이는 것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을 내게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퉁명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겐 안 돼. 너는 너무 작아. 내가 그 능력을 주면 너는 부서져버릴 거야."


메리 겟스킬의 <여성의 특권>** 



위안. 이 짧은 텍스트는 나에게 무한한 위로를 건넸다.

해낼 수 있는 능력이라는 건 애초에 공평하지 않다.

나에게 있는 것이 다른 이에게 없고, 다른 이에게는 쉽게 주어진 것이 나에게는 오리무중일 수 있지. 그럴 수 있지.



"나는 한 번도 아이를 낳고 싶었던 적이 없다.


난 작가로서 커리어나 독립성 같은 것을 위해 출산을 거부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본능적으로 아이 낳기가 싫은 뿐이었다. 사실 아이를 낳고 싶은 욕망이 얼마나 없었는지 가끔은 그게 역겹기까지 했다. 대학 다닐 때 출산 중인 여성의 슬라이드를 본 적이 있다. 놀랍고 당황스럽게도 나는 존경과 흥미를 느끼는 대신 메스꺼움과 공포를 느꼈다. 그런 기분을 느낀 게 미안했지만 오히려 그 경험으로 내 생각은 더 견고해졌다.


지금 나는 마흔넷이다. 여전히 아이를 낳고 싶진 않지만 내 생각과 감정은 더 복잡해졌다. 최근에는 임신한다는 생각에 더 이상 역겨움을 느끼지 않게 되었고 심지어 고려해보기까지 했다. 하지만 바로 멈칫하면서 근본적인 거부감을 느꼈다.


내가 처음에 임신을 역겨워했던 것은 임신했을 때 발생하는 극단적 신체 변화를 두려워하는 원초적 반응이었을 수 있다. 역겨움 아래에는 두려움이 있을 때가 많다. 하지만 내가 임신과 엄마 됨을 어떠한 감정의 스펙트럼과 연결시켰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엄마와 아이 사이에서 예측 불가능하게 발생하는 압도적이고 무질서한 욕구의 파도 같은 것. 때로는 위험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그 감정의 스펙트럼이 나는 너무나도 불편했다."


메리 겟스킬의 <여성의 특권>**



투명하다. 아, 투명해. 안갯속의 빛줄기처럼 속이 선명하잖아.

이렇게 명쾌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거야.

그러면 안돼!라는 건 없는 거야.

어떤 이야기라도 선명한 것은 진실에 가깝다.

다만 내가 임신과 출산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본능적이지도 원초적이지도 않지만 훨씬 더 복잡한 문제라고 느낀다. 나는 매듭이 풀릴 때까지 이것을 한 번 풀어보고 싶다.  




*모이라 데이비 엮음 『이등시민』, 마거릿 애트우드의 <출산>

**모이라 데이비 엮음 『분노와 애정』, 메리 겟스킬의 <여성의 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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