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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리보이 - 사랑이었나 봐

by STONE

2020년 12월 23일에 발매된 기리보이의 8번째 정규앨범인 [9컷]의 1번 트랙이자 타이틀곡. 앨범 제목처럼 9곡이 담긴 앨범에, 연말의 쓸쓸함을 담은 앨범. 모든 곡이 다 쓸쓸하고 아프지만 그 가운데서도 이 앨범을 가로지르는 감성을 가진 곡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랩/힙합 장르 치고는 많이 느린 템포를 가지고 있지만 기리보이만의 쓸쓸함이 잘 묻어 나오는 오늘의 곡, '사랑이었나 봐'에 대해서 바로 소개해보도록 하겠다.


이 곡을 처음 들었던 시점은 2024년 12월 초 정도였다. 발매가 되고 4년이 지나서야 제대로 음악을 찾아서 듣게 됐는데, 이 곡도 다른 곡들처럼 일하다가 우연히 듣게 된 노래다. 매장 태블릿으로 랜덤재생을 해서 캐럴을 듣다 보니, 어느 순간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작년 겨울도 힘들었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이 곡을 듣는 시점에 너무 힘들었어서 그랬을까. 퇴근 한 시간을 남겨두고 마음마저도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작년 겨울 내가 퇴근하던 시간대에는 하늘이 딱 저런 색이었다. 4시 반이 조금 넘어가는 시간. 차가운 공기가 차가운 바람을 만나 칼처럼 나를 베고 지나갈 때, 두꺼운 패딩 하나에 의존해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던 내가 기억이 난다. 두 손은 주머니 깊이 찔러 넣고, 두 귀는 에어팟으로 틀어막은 채 바닥만 쳐다보며 집으로 돌아가던 그때 그 날들 속에 흐르던 기리보이의 음악은 쓸쓸했지만 한편으로는 위로도 됐다.


이 곡은 이별 후에 후회하는 마음을 여과 없이 그대로 녹여낸 곡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정제되어 있는 단어들과 겉으로 보기에는 그 시절을 추억하면서 '만약 이랬다면 우리는 어땠을까' 하는 느낌의 가사들이지만, 그 사이로 비집고 나오는 깊은 후회의 마음들은 감출 수 없었던 것 같다. 어쩌면 기리보이는 이 곡을 씀으로써 그런 마음이 잘 돋보이도록 곡을 썼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정박의 드럼이 나오고 기타 소리가 깔리면 기리보이 특유의 말하는 듯한 곡 전개가 시작이 된다. 이 곡은 곡의 분위기를 따라서 느린 템포와 가성을 섞은 보컬 등, 싱잉과 랩을 적절히 잘 활용한 곡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곡에서 유독 겨울느낌이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을 해보면서 자세히 곡을 들어보니까 후렴구에 깔리는 '우우-' 하는 하이톤의 코러스와 그와 반대되는 따뜻한 기타 리프가 만들어내는 느낌이 아닐까 싶다.



'사랑이었나 봐 그땐 몰랐지만 전부 다 지나고 나서 깨달았어'

'둘 중 하나 누구 한 명만 한 번만 져줬었다면 우린 어떻게 됐을까'



이 곡의 후렴구를 적어봤는데, 사실 이 곡을 관통하는 내용이 아닐까 싶다. 수많은 연인들이 헤어지는 이유 중 하나인 '성격차이'라는 것은 비단 생활패턴이나 생각하는 것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큰 이유는 어쩌면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의 차이가 아니었을까. 나는 이게 사랑이라고 생각해서 너에게 나의 방식대로 사랑을 주었고, 너는 너의 방식대로 사랑을 준 거였는데. 서로 본인의 사랑 표현 방법만 맞다고 생각해서 이별이라는 결말을 맞이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봤다.


이 곡을 들으면 따뜻한 방 안에서 편안한 의자에 앉아서 지나간 시절을 추억하며 차가워져 버린 이 시간들을 후회하는 느낌이 든다. 실제로 노래를 들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따뜻한 노란 톤의 조명 아래, 그 조명 덕에 노랗게 물든 방, 따뜻한 옷을 입고 따뜻한 차 한잔을 든 채 편안한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이 생각난다. 앨범 커버 속의 기리보이는 완전히 뒤틀린 채 앉아있지만 말이다.


혹시나 지금 연인과 많이 힘든 상황이라면, 이 노래를 들으면서 지나간 시간들과 추억들을 한 번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 끝에 어떤 결정이 오든, 모두의 결정을 존중하지만, 붙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것저것 다 시도해 보자는 게 본인의 생각이라서 오지랖을 한 번 부려봤다. 겨울에 어울리는 노래를 여름에 들고 오면서 오지랖까지 부리다니, 이 사람 감 다 떨어졌네- 싶을 수도 있지만 작가는 모든 노래에 진심이라는 점만 알아줬으면 좋겠다.


다가온 6월도 행복하시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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